“ 폭력이나 학대가 있는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는 사랑으로 가득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보다 안타깝게도 건강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자녀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선택한다. 자녀의 배우자 선택뿐 아니라 자녀의 건강도 부모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자녀의 건강과 행복과 불행도 부모의 삶과 비례한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폭력이나 학대가 있는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는 사랑으로 가득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보다 안타깝게도 건강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좋은 부모와 자녀 건강의 상관 관계
하버드 대학교 연구원들이 건강한 남자 126명을 선정하여 그들이 부모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리고 35년 뒤에 그 남자들의 건강기록부를 검토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어머니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 중 91퍼센트가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십이지장궤양, 알코올중독 같은 심각한 질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힌 사람 중에서는 45퍼센트만이 이와 같은 진단을 받았다. 연구 참가자 가운데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다고 보고한 이들 중 82퍼센트가 질병을 앓고 있었다. 이에 비해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50퍼센트만이 질병을 잃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모두 친밀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고 평가한 남자들도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부모 모두와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응답한 남자는 47퍼센트만이 질병을 잃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자란 자녀 대부분이 훗날 질병에 노출되었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해 준다. 매우 건강한 사람은 행복한 부모 곁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자녀의 건강은 부모의 행복한 삶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은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녀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자녀는 대체로 어머니보다 아버지에게 상처를 더 많이 받는다.
자녀는 모든 면에서 부모를 닮는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의 모습이고, 자녀는 부모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다. 또한 한 인간의 삶은 자녀뿐 아니라 반드시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자녀와 이웃을 가꾸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바로 세우기를 힘쓴다. 자기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자기를 고스란히 닮을 자녀를 바르게 가꾸는 길이다. 나아가 그것이 세상을 바로잡는 시작임을 알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은 부모 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상처가 많은 부모는 좋은 부모 되기가 더 쉽지 않다. 심지어 부모의 상처는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의 치유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 상처의 치유 없이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 자기 스스로 부모에게서 입은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자녀에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다. 마음에 상처가 가득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부모가 되려고 힘써도 자꾸만 자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역으로, 마음이 건강한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많이 애쓰지 않아도 자녀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부모가 어린 시절에 받은 ‘내면 아이’를 치료하는 것이다.
좋은 부모의 시작과 자기 치유
부모로서 자신의 내면 아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모가 비춰 준 왜곡된 거울을 깨뜨리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비벌리 엔젤,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 244-88). 예를 들면, 부모에게 방치당하거나 유기당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 방치나 유기를 당한 경험이 있는 부모는 공격 및 분노 지수가 다른 사람에 비해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부모는 먼저 분노 표출의 건전한 방법을 배워야 하며, 자신의 가치와 사랑스러움에 대해 일깨움을 받아야 한다.
부모가 과잉보호했거나 부모와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밀착된 삶을 살았다면, 삶 속에서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만성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부모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정서적 근친상간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서적 근친상간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분화되어야 할 시기에 분화되지 못한 희생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부모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과 태도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과도하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먼저 이런 부모는 자신이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의 경계선을 누가 침범했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조용히,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지나치게 비판적인 부모나 수치심을 주는 부모, 완벽주의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 즉 부모는 수치심 지수가 다른 사람에 비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부모는 자신의 내면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수치심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고 그들에게 분노함으로써 자신의 수치심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분노는 자신의 수치심을 알려 주는 중요한 신호라는 것이다. 특히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분노나 격한 분노에 휩싸일 때는 자신의 무의식에 깊이 도사리고 있는 수치심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수치심이 밖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내면화되는 경우도 있다. 수치심이 내면화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기 비난으로 가득하게 된다. 이런 부모라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삼가야 한다. 또한 비난과 판단하기를 좋아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피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좋다. 특히 이런 부모는 사랑을 기꺼이 주고받는 일에 훈련이 필요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해 주거나 좋은 일을 해 주면 부담을 갖거나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받고 기뻐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좋은 부모를 위한 영적 공동체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장 중요한 공동체다. 건강한 교회가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보다는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교회를 만든다. 이 원리를 간과할 때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중요한 공동체인 가정을 돌보는 사역에 소홀하기 쉽다. 교회가 건강한 가정에 대해 힘쓸 때다.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 공동체가 건강할 수 있다. 교회는 건강한 가정의 시작은 부모의 치유로부터 시작한다는 원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교회는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라는 원리와 지혜를 복음으로 해석해 낼 수 있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상처를 유발하는 수평적 문제와 수직적 관계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구체적으로 해석해 내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댄 알렌더·트렘퍼 롱맨 3세, <감정, 영혼의 외침>, 50). 교회가 가정의 중요한 사역자인 부모에 대한 관심, 특히 부모의 상처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간과할 때 결국은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는 문을 닫아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교회는 좋은 부모는 자신의 상처를 깨닫고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건강한 부모와 건강하지 못한 부모의 차이는 상처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상처에 대한 태도와 상처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는 것을 현명하게 지도해야 한다. 교회는 부모가 자신의 상처를 건강하게 치유할 때 더 좋은 부모가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 상처를 다룰 줄 아는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시 86:14). 자신의 상처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토설한 시편기자처럼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드러내며 간구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하며, 자신의 상처를 바르게 인식하는 방법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신의 상처에 대한 인식 없이 하나님께 공급하시는 힘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처는 무의식의 그림자로 남아 있어서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부모가 자신의 상처를 바르게 보도록 도와야 한다.
아프다고 느낄 때 의사를 찾듯이, 상처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이다.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상처 입은 부모가 나아올 때 그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지혜와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복음기도신문]
“ 교회는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드러내며 간구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하며, 자신의 상처를 바르게 인식하는 방법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
최창국 | 최창국(PhD, University of Birmingham, UK)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과 기독교전문대학원에서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기독교 영성’, ‘해석과 분별’, ‘설교와 상담’ 등 다수의 책을 저술.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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