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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헤르만 바빙크: 100년간 이어진 그의 발자취

▲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사진: 위키피디아

그의 영혼은 아름다운 관용을 품고 있었다. 그는 격론 가운데에서도, 절대 호감을 잃는 적이 없었다. 그는 상대편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100년 전 7월 29일의 이른 새벽에 위대한 신칼빈주의 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1854~1921)가 세상을 떠났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의 업적은 교회와 학계 전반에 걸쳐 주목할 만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의 영향력은 네덜란드 개혁의 출발점을 능가하고 있다.

왜 국제적으로 그의 삶과 업적에 매료되는 것일까? 바빙크는 확실히 뛰어난 신학자였다. 2021년,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기독교 정신을 간직한 삶에 대한 고전적 이상향을 기대한다. 즉, 우리는 성경과 고대 언어에 능통하고, 엄밀한 해석이 가능하며, 교리상으로 유창하고, 문화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통찰력이 있으며, 설명에서도 명확하기를 갈망한다.

바빙크의 경우, 그러한 고전적 본능이 거의 사라진 전통적 양육 및 교육과 접하게 되면서 그는 우리 대부분이 한 번쯤 소망하는 바인 신학적인 기초를 쌓아 가게 되었다. 그리고 덤으로 그의 영혼은 아름다운 관용을 품고 있었다. 그는 격론 가운데에서도, 절대 호감을 져버린 적이 없었다. 그는 상대편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식으로 그는 신학적 진영의 경계를 넘어서서, 심지어 서구 세계 너머에서도 계속해서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바빙크는 성스러운 학문적 지식이 혼합된 이전 시대의 신학자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100년이 지나도 그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는 것은 단순히 순수한 의미에서 그의 업적의 질적 탁월함 때문뿐 아니라, 그의 업적이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시기의 시작과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20세기 초 말년에 바빙크는 21세기 초 서구의 삶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이 큰 문제들을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오늘날 그의 글이나 그에 관한 글을 반복해서 읽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영향력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이 네덜란드인이 어떻게 그리하였는지 명확히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참신함

2년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누가, 어디서, 왜 신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학문을 소개하는 학부 신학 수업을 가르친다.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는 기독교인 신학자, 즉 그들이 왜 신앙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구별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신학적 내용과 주장을 다루는 사람들의 예를 살펴본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개인의 신앙은 없지만, 기독교 신학에 대한 저술이 서양 문화에 미치는 영향과 동양에서의 문화적 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편승하는 중국의 ‘문화적 기독교인’을 먼저 연구한다.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비서구적, 비기독교적 문화의 옹호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보통 이러한 경향이 흥미롭지만 매우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는 놀라운 일일 것이다. 수업 시간에, 나는 종종 “문화적 기독교인”들이 아마도 기독교인 신학자들이 신념을 가지고 따르는 실질적인 신학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들의 놀라움에 더해, 톰 홀랜드(Tom Holland)가 저술한 ‘도미니온’(Dominion)의 충격적인 성공,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을 둘러싼 논란, “기독교인 무신론자”라고 하는 더글러스 머레이(Douglas Murray)의 광범위한 영향, 그리고 가장 최근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이 그의 성장 배경인 무신론에서 벗어난 사실 등을 설명하며, 비슷한 노선을 이야기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에 대한 견해가 훨씬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기독교가 필요하다고 과감하게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묻곤 한다.

그렇게 함으로 나는 제자들에게 역사의 참신함을 보여준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문화 전쟁’ 아래 살고 있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때론 모호하거나 1인칭 믿음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의 집단화된 문화적 필요성을 펼치는 지식인들의 주장을 추종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세상을 탐구하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대부분의 중요한 질문들이 기독교에 의해 형성된 문화에서 우리의 위치를 다루고 있지만, 이제는 단지 수동적인 무관심일 뿐 아니라 우리 세상에 대한 믿음의 역사적 영향력을 취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자생하고 있는 “문화적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영향력을 갖게 된 배경이다.

칼 트루먼(Carl Trueman)은 그의 저서 ‘근대 자아의 부상과 승리’(The Rise and Triumph of the Modern Self)에서 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위해 그는 뛰어난 유대인 사회학자인 필립 리프(Philip Rieff)의 작품을 소개한다. 리프는 서구의 역사는 세 단계 세계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초자연적으로 충만한 기독교 이전의 이교도의 세상으로 삶과 죽음이 운명에 의해 지배된 단계이다.

이것은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으로 재형성된 두 번째의 세계에 자리를 내주었고, 과학 지식과 사회 질서를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이전 세대를 기반으로 확장을 추구했고 근본적으로 세계를 넘어 존재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리프의 표현에 의하면 제2의 세계는 신성한 초월성에 뿌리를 둔 “거룩한 질서”로 표시된다. 가장 기초적으로 말하면 창조주와 관련된 창조물로 주어진 세계라 하겠다).

최근에 세 번째 세계가 떠올랐다. 이 새로운 세계는 초월이나 거룩한 질서에 의한 개념 없이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창조주를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창조할 뿐이다. 리프는 이 세 번째 세계가 창조주와 함께 창조된 창조물이었다고 여기는 이전의 세계와 그것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모든 질서, 즉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세계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반문화적”이라고 표현한다.

세 번째 세계의 순수한 주창자인 무신론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을 빌리자면, 세 번째 세계의 원동력은 “태양으로부터 지구를 분리”하고, 그 기초에 “모든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이다. 질서는 신성하고 불변하기 보다는 변하기 쉽고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세계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예측불가능하고 불안정하며 혼란스러우며 필요에 따라 미지의 바다로 항해할 수 있을 뿐이다.

트루먼은 리프를 전면에 내세우며 우리가 ‘문화 전쟁’이라고 느끼며 경험하는 것은 실제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의 표면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 표면의 깊은 곳에는 두 개의 지각판이 있는데, 각각은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한 곳에는 문화 전쟁을 벌이는 보수주의자들이 살고 있고 다른 곳에는 진보주의자들이 살고 있다. 바다 밑의 지각판처럼 서로 거칠게, 직설적으로, 격렬하게 밀어붙인다. 그동안 우리는 지표면에 남아 어떤 판이 다른 판 위로 자신을 밀어 올리며 어떤 판이 지구의 맨틀 깊숙이 가라앉을지를 지켜본다.

현재가 기독교인들에게 불안한 시기인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우리 삶의 역사적 배경은 단순하게 과장된 ‘문화전쟁’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적으로 파생된 신성한 질서가 없었던 것처럼 ‘두 번째 세계’를 없애고자 하는 리프가 말한 ‘세 번째 세계’와의 싸움이다. 바빙크는 1910년 “일반적으로 시대의 흐름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언급했을 때 이미 이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보다 9년 전인 1901년, 그는 20세기에 사람들은 리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세계와 매우 흡사한 두 세계관 사이에서 “거대한 영혼의 충돌”을 목격하리라 예측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바빙크의 글에는 니체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거의 없었다. 비록 바빙크는 리프가 태어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고 리프가 주장한 세 개의 세계 개념의 등장보다 앞서 죽었지만, 그에게는 그 이상 놀라운 것이 거의 없었다. 그는 20세기 초에 이미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구와 태양을 연결한 사슬이 실제로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안내자를 찾아서

많은 기독교인이 다양한 이유로 거룩한 초월성과 질서를 지향하는 서구 사상의 쇠퇴에 맞서 밀어붙이는 서구의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을 구별하지 않거나 믿지 않는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들을 흔쾌히 따르는 현상을 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실존하신다. 물론 개혁신학에 기초해 볼 때, 사상가들이 불가지론자로 인식이 되든 무신론자로 인식되든 이러한 경쟁 세계의 복잡성을 헤쳐 나가면서 통찰하는 것에 귀 기울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일반 은혜의 교리이다.

그러나 스스로 기독교인을 내세우며 문화의 공통적인 은혜 문제뿐만 아니라 기독교 복음에 의한 구원의 은혜에 대한 헌신을 표명하며 두 세계 사이에서 심오한 투쟁을 벌이며 나아가는 이들의 통찰을 경청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지적인 깊이와 마음을 이끄는 개인적인 성향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가치가 있는 자들이다. 바빙크는 현대가 직면하는 도전에 대항하는 기독교의 안내자 중 하나였다.

발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는 지각

내가 쓴 ‘바빙크: 비판적 전기(Bavinck: A Critical Biography)’를 통해 나는 바빙크가 그의 발아래 문화적 지각이 변하는 가운데 자신이 서있어야 할 곳을 찾기 위해 일생을 보낸 정통 기독교인이라고 비유한다. 가장 직접적으로, 첫 장의 첫 줄에 사용된 이 이미지는 역사가 팀 블래닝(Tim Blanning)이 현대 유럽이 경험하고 있는 문화의 불안정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을 관찰한 사실을 인용하였다. 블래닝은 현대 유럽의 관점으로 볼 때, “지반이 그들의 발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오가며 보낸 삶에 관한 이야기를 잘 묘사한 표현이다. 이 비유는 바빙크의 사후까지도 지속되었다. 그가 암스테르담 묘지에 묻힌 지 얼마되지 않아 그의 관은 다시 이장되어 플라르딩겐에 두 번째로 묻혔다. 죽음 이후에도 땅은 그를 위한 즉각적인 영원한 안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 바빙크의 전기에 나타난 은유는 아무렇게나 쓴 것이 아니며, 단순히 유용한 소개 자료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리프와 뚜렷한 유사성을 지닌 본능과 직관들을 바빙크를 통해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책 전체에 걸쳐 다뤄지고 있다.

바빙크는 왜 세상을 떠난 지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중요한 존재인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라 공언하는 이들은 그들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문화적인 기독교 옹호론자(그들 자신은 종종 불가지론자이거나 무신론자이다)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예리한 유대인 기독교 비평가인 리프는 또한 그들을 둘러싼 문화적 혼란을 이해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인기 있는 안내자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톰 홀랜드, 조던 피터슨, 더글라스 머레이의 이야기가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거침없는 개인적 믿음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그러한 회심이 이 세상의 영적 투쟁에 대한 통찰력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바빙크에게는 그런 추측이 필요하지 않다. 그가 죽은 지 1세기가 되었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의미가 크다. [복음기도신문]

그는 20세기 초에 이미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구와 태양을 연결한 사슬이 실제로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임스 엘링튼 James Eglinton |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개혁 신학을 담당하는 선임 강사. 저서로는 ‘바빙크: 비판적 전기(Bavinck: A Critical Biography)’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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