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어떤 분이 조류 중에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온 꿩 사육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지인과 함께 그곳에 갔습니다. 다리를 묶은 것도 아니고, 망을 씌운 것도 아닌데 수천마리의 꿩들이 전혀 날아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육장 위를 그물로 씌워놓은 것도 아닌데 열심히 모이만 쪼고 있는 광경은 참 장관이었다고 했습니다.

원래 꿩은 두려움이 많은 조류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눈 위가 가려져 보이지 않으면 두려워 날아오를 생각을 못한다는 겁니다. 날개가 있고, 푸른 창공을 날 힘도 있지만 눈 위에 막을 씌우니 죽을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날아오를 날개 짓이 있고 영원한 축복의 삶이 펼쳐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벗어날 시도도 하지 않는 꿩의 모습은 이 세상에 길들여진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의 운명에 살던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원도 심판도 구원도 영생도 꿈꾸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시던 때, 피리를 불어도 애곡하는 자가 없다 하셨 듯 말입니다. 심령이 돌같이 단단해진 이 세대에 십자가 이야기는 고리타분한 얘기로 들릴 뿐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역사상 첫 번째 복음이 선포된 곳은 희락의 동산이라 불리던 에덴동산이었습니다. 희락의 동산에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기쁜 소식보다 먼저 나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된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과 나뉘어져 비참한 상태가 된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는 딱 하나, 하나님 한 분을 잃었습니다. 그분을 잃어버리자 세상의 모든 것이 물밀 듯이 밀려옵니다. 그런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나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기가 막힌 운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자아에 속아 자신의 운명에 대해선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한 채 울고 웃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갑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살아가는 상태가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인간에게 과연 무슨 복음이 필요하겠습니까? 경쟁 사회 속에서 오직 자기 계발과, 병 고침, 육체에 필요한 것만을 구하는 이들에게. 죄의 운명에 길들여져 세상 것에만 목말라 애쓰며 노력하고 살아가는 죄인에게.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복음이 아닌 십자가를 주십니다.

종교적 눈물로도 회복 불가능한 끝장난 운명이기에 주님은 십자가를 주십니다. 어떤 눈물로도 영성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 죄를 사랑하는 지옥 갈 운명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복음이 아닌 십자가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가 보기에 미련한 것이나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놋뱀으로 말씀하십니다. 죄의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죄에 대해 심판을 받는 것일 뿐임을 말입니다. 그런데 또한 이 일을 통해 주님은 십자가의 비밀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놋뱀에 죽은 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형상으로 우리 이름표를 달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죽은 것은 주님 뿐 아니라 바로 나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은 언제 실제가 되었습니까? 변명이나 교리적인 동의를 묻는 말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객관적 실제인 만큼 동일하게 철저히 십자가에 서신 적이 없다면 십자가는 내게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죄에 대해 죽고, 주님과 한 운명 되게 하신 십자가의 능력을 맛보십시오. -메시지 정리

<순회선교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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