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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목회는 그냥 일이 아니다

ⓒ 복음기도신문

 소명을 받아야 한다. 사역은 단지 직업이 아니다 

몇 년 전 이제 막 사역에 들어선 한 젊은 목사가 내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어떤 목사라도 목회 사역이라는 긴 여정에 들어설 때 힘이 될 수 있는, 세 가지 차원에서 헌신하는 사역자의 모습을 제안했다.

소명을 받은 사람

첫 번째로, 소명을 받아야 한다. 사역은 단지 직업이 아니다.

교회는 목사를 채용하는 게 아니라 청빙한다. 기독교 사역은 단지 어떤 조직이 제안하는 일거리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받는 것이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받은 자를 바로 분별하고 그런 사람을 목사로 청빙한다. 바로 여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있다. 목사가 받은 소명은 단지 교인을 섬기기 위한 게 아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소명은 바로 교인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슬프게도 어떤 목사들은 어리석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신실한 목사라면 필연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를 입히게 되어있다. 사도 바울은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고전 10:33)라고 했고, 실제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도였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는 사실 주님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도였다. 그는 용감하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바울의 경우,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다른 사람과 주님 사이였다면, 그는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이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유익이 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실한 목사는 주님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섬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 그러나 그는 결코 목사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을 창기처럼 팔지 않는다. 진실한 목사는 주님의 영광이 생명을 살리는 능력으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고 설교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거룩한 소명을 받고 신실하게 사역하는 목사를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사람

두 번째로, 모든 사람은 성경을 필요로 한다. 단지 도움이 되는 팁 정도로는 안 된다. 

인터넷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게 뭐가 되었든지 매일 새롭게 쏟아져나오는 소식과 의견에 함몰되기 쉽다. 그러나 목사라면 존 웨슬리(John Wesley)가 말했듯이 ‘성경의 사람’으로 자신을 세상과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목사라면, 나는 당신이 평생을 책 읽는 사람으로 살면 좋겠다. 가능하면 소설, 위인전, 시, 그리고 그 외에도 최대한 다양한 글을 읽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성경의 전문가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더 많이 발견하면 좋겠다. 짐 엘리엇(Jim Elliot)이 말했듯이 성경은 ‘인쇄된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당신이 단지 성경 말씀으로 설교하는 것 이상을 하길 원한다. 나는 당신이 평생 매일매일 성경에 푹 빠져서 살기를 제안한다.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하는 목회자라면, 일 년에 한 번씩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이십 년을 읽어야 한다. 그럴 때, 당신은 변하게 될 것이다. 흘러넘치는 성경 속 드라마를 목격하게 될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단편적 현실이 아닌 전체적인 차원에서 현실을 보게 될 것이다. 

또 하나, 구약에서 한 권, 그리고 신약에서 한 권을 선택해서 완전히 깊이 파들어가길 제안한다. 이 두 권의 성경을 당신 인생의 특별한 프로젝트로 삼아보라. 내게는 이사야서와 로마서가 이 두 권에 해당한다. 이 두 권의 책은 참으로 중독성이 있다. 나는 이 두 권의 성경을 영어로 수도 없이 읽었고 또 원어로도 읽었다. 또한 적지 않은 주석과 논문들도 모으고 있다. 나는 이 두 권의 성경을 깊이 파고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 이사야서와 로마서는 둘 다 성경 안에서 일종의 신학적 교차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교차로에서 성경적 사고의 교통 흐름이 오고 간다. 이 두 권의 책은 다른 성경을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아무튼 당신만의 두 권을 선택해서 확실하게 당신의 것으로 만들라.

또 하나, 가능하다면 히브리어로 구약을 다 읽고 또 그리스어로 신약을 다 읽기를 바란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모른다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영어 성경 중에서도 ESV(English Standard Version)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원어를 가장 일반적으로 쉽게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성경 원어를 공부했다면, 공부한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라. 

지난 이천 년을 통틀어 과연 몇 퍼센트의 기독교인이 성경을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읽는 특권을 가졌을까? 서기 420년, 제롬(Jerome)이 죽은 이후 천 년이 흐르는 동안 서구 사회에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이 두 가지 언어를 다 알고 있었던 기독교인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오늘날 혹시 당신이 그런 특별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아닌가? 무릎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당신의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어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라. 

이 세상에 죽음을 앞두고 성경을 너무 많이 알아서 후회하는 목사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교회 목사가 성경을 너무 많이 알아서 불평하는 성도를 나는 여태껏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가 들려준 다음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한번은 그 교회를 방문한 이슬람교 신자들이 그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신 교회 신자들은 성경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형제여, 그게 당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계획을 세우라. 그리고 그 계획대로 실행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은 수없이 많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사람

세 번째로, 누구나 단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아닌 형제가 필요하다.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잘라서 이스라엘 군대 진영으로 그 머리통을 던지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다윗의 그런 행동하는 신앙을 본 후에 요나단은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게”(삼상 18:1) 되었다. 요나단은 다윗 안에서 자신에게 설렘을 주는 용기 있는 신앙과 더불어 용기 있는 남자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거인을 죽이는 저 거룩한 자를 갖고 싶다.” 요나단과 다윗은 그 이후 형제가 되었고, 평생 동안 친구관계를 지속했고, 용감한 동지가 되었다. 

목사라면 누구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고자 하는 갈급함과 신실함으로 영감을 주는 친구, 또한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신실한 친구, 그 무엇보다 담대히 헌신하려는 영혼을 가진 친구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치러야 할 값이 있다. 바로 주님이 그 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삼상 20:42). 이런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그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헌신했는가? 형제애의 순수한 기쁨으로 인해 자기 중심적인 계산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성한 유대감을 그들과 형성하고 있는가? 이런 대담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당신의 사역은 열매 맺지 못할 것이다. 아니, 당신의 사역은 열매를 맺을 자격도 없다. 사역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현실을 당신은 똑똑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다윗과 요다단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 23:16). 다윗은 지금 절체절명 위기의 상황이었다. 요나단은 힘써 그를 도왔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한 신성한 약속이 있다.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삼상 23:17). 요나단은 자신의 왕좌를 포기했고 그것을 다윗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윗 곁에서 그를 돕기로 약속했다. 

나중에 요나단이 죽고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과연 다윗은 얼마나 자주 “요나단, 네가 지금 여기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너는 지금 내 기억 속에 있어,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안에서 내 손을 강하게 만들고 있어”라면서 요나단을 그리워했을까? 또한 시편 속 얼마나 많은 시가 오래 전 요나단이 던진 격려의 음성을 담고 있는 것일까? “다윗아, 주님은 너의 목자야, 그러니까 너는 부족함이 하나도 없어.” 시편 23편도 어쩌면 요나단의 말을 다윗이 기억하고 적은 게 아닐까?  또는 “다윗아, 하나님이 너를 지금 살펴보시고 너를 다 아신다. 하나님이 너를 버리지 않아”라는 시편 139편도 요나단이 다윗에게 했던 격려의 말이 아니었을까? 당신도 요나단과 같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서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당신이 했던 말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울림으로 남을 수 있다. 그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다른 형제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헌신하라. 

내가 지금 책임감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책임감은 얼마든지 강압적이고 강제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여기서 제안하는 것은 책임감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당신이 깊이 존경하는 기독교인, 그리고 기꺼이 형제가 될 용기를 가진 기독교인을 모으라. 그리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그들에게 당신의 인생을 헌신하라. 그리고 그들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들의 인생을 당신에게 헌신하도록 하라. 아주 오래 전에도 그랬듯이 ‘피로 맺은 형제’가 되는 것은 당신들을 서로 멀어지게 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대와 다음 세대에 필요한, 선을 위한 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가! 마지막으로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내 아버지의 말을 인용하자. “약간 위험하게 살아라, 그리고 모든 마음을 다 바쳐라!” [복음기도신문]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다른 형제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헌신하라 

Ray Ortlund |Renewal Ministries의 회장, TGC의 이사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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