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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감염내과 의사로서의 나의 돌봄 사역

사진: unsplash

 병실에 들어갈 때면, 제발 나쁜 소식만은 전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부모들의 표정을 자주 접한다 

각종 의료 장비와 튜브, 그리고 동물 인형들이 만들어내는 만화경과 같은 병실 중앙에는 매우 아픈 아이가 누워있다. 내가 들어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이의 혈관으로는 진정제가 흐르고 있는데, 행여나 아이가 축축해진 폐에 산소를 집어넣고 있는 인공 호흡기를 잘못 움직여서 뽑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침대 끝에 서서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전혀 건강에 문제가 없던 제이콥은 지금 이렇게 병실 침대에 누워있다. 

우리 아들은 언제 완쾌되나요?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병실 한편에 앉아있는 부모는 아직까지도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힘들어하는 게 역력하다. 부모의 마음속에 제이콥은 여전히 건강한 아이다. 그들의 삶에 침입한, 생각지도 못한 이 병을 놓고 그들은 지금 “왜?”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지를 놓고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그리고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 갈까요? 나는 의사 경력 내내 부모가 자녀에게 발생한 상황을 바로 이해하도록 도우려 했지만, 두 번째 질문인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지에 관한 의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슨 일이 생긴지를 이해하게 된 부모라고 해도, 내 아이를 언제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그들이 정말로 듣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제이콥의 부모에게로 다가가자 그들은 희망과 걱정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안녕하세요? 전 제임스 박사고, 이 병원 감염내과 의사입니다.”

그나마 상황이 좀 좋을 때면, “난 부모님이 만나고 싶어하는 의사가 아니랍니다”라는 식의 농담을 건네곤 한다. 사실 나를 만난다는 것은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제이콥의 경우가 그런 경우인데, 그 부모는 지금 그들이 느끼는 긴장을 얼굴 표정만으로도 내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도움을 주는 게 나의 목적이지만 그럼에도 때로는 부모가 힘들게 붙잡고 있는 정서적 안정 마저  파괴하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게 나의 입장이다. 병실에 들어갈 때면, 제발 나쁜 소식만은 전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부모들의 표정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나는 나쁜 소식의 잠재적 전달자고, 나의 한마디가 부모를 더 큰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나는 일단 제이콥의 발병 원인과 최선의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주치의가 내게 연락을 했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아직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 병원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어떤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의사인 우리도 모르는 일, 또 예상할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돌발 변수에 관한 솔직한 전달이 제이콥과 같은 발병 초기 단계에서 부모와 나눠야 할 이야기다. 지금 제이콥의 부모를 만나는 이유가 무엇보다 그들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지만, 그렇다고 지킬 수 없는 지나친 약속을 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환자와 의사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를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짓 희망을 주는 것은 바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직까지 내 의사 생활 내내 거짓 희망을 듣고 싶어하는 부모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중요한 질문 던지기

나는 일단 제이콥의 상태가 오늘 아침에 어땠는지 묻는데,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그들의 소중한 아이는 지금 부모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퉁퉁 부은 얼굴로 병원 침대에 누워 튜브와 전선에 연결된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나는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 걸까? “제이콥이요? 아주 좋았지요, 선생님은 오늘 아침 어떠셨어요?”

그러나 이 질문에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부모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단지 낙관적인지 아니면 심지어 희망을 갖고 있는지, 비관적인지 아니면 이미 포기한 상태인지를 알려준다. 이런 질문은 나로 하여금 지금 이 병실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함으로 부모에게 좀 더 나은 정보를 전달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이콥의 부모는 희망적이다.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아들이 지금도 매우 위중한 상태고 한때는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아주 호전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더 악화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제이콥의 부모가 이해하는 아들의 아침 상황을 들으면서 나는 병실 내부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한다. 제이콥이 입원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곳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낸 카드와 메모로 가득 차 있다. 그중에는 내 딸이 연습하고 있는 초급 서예 수준의 꼬불꼬불한 글씨로 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가 적힌 카드도 보인다. 병실 구석 접이 침대 위에는 이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 보낸 위로 물품도 놓여있다. 

교회가 도와야 한다

자녀가 중병에 걸렸을 때 가족이 받는 지원 수준과 부모가 느끼는 정서적 안녕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 관계가 있다. 이때야말로 소속감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나 역시 예수님의 제자로서, 교회가 슬픔에 잠긴 가족을 돕는 모습을 보면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제이콥의 가족은 서로의 짐을 짊어지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의 가정이 받는 축복을 경험하고 있었다(갈 6:2). 나는 한때 그 명령을 추상적으로 이해했었지만, 가까이에서 비극을 접하는 일을 하다보니 그 명령은 다름 아니라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형제를 돕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제이콥의 부모는 분명하게 그 사랑에 휩싸여있다. 

제이콥 가족과의 대화가 계속될수록 나는 그들이 이 끔찍한 상황을 영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들의 언어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드러내는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내게 있어서는 이런 영적 단서를 찾아서 그들을 가장 잘 도울 수있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적인 문제로 자녀를 병원에 데리고 온 많은 부모들의 경우에도, 그들이 진짜로 관심을 갖는 부분은 놀랍게도 육체적인 게 아니라 심리적이고 정서적이며 영적인 분야다. 

나는 제이콥을 진찰하고 부모와의 대화를 정리하면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검사 결과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검사 결과와 현재 치료에 대한 제이콥의 반응에 따라서 치료법을 수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여전히 초조하지만 감사를 표하며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말한다.

진짜 희망을 가진 부모와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선물이다. 하지만 내가 상대하는 병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부모를 탓할 수도 없다. 언젠가 만난 한 아이의 어머니는 딸의 상태를 말하는 내 이야기를 잘 들었을 뿐 아니라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했지만, 그녀의 눈은 나를 향해 병원의 노력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오늘 밤이 내가 아이와 보내는 마지막이 될 것도 이미 알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무력감은 전염성이 있다. 그 어머니의 눈빛은 내게 명치를 때리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공감과 넘치는 열정 사이의 애매한 균형을 찾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나는 그런 무력감까지도 흡수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고난의 계곡을 걸어갈 의사를 원하지만 정작 의사인 우리가 희망을 잃고 비틀거리며 그 계곡을 걸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를 기억하라

제이콥의 부모는 움츠러든 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희망의 우물에서 힘을 얻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병실을 떠나기 전에 나는 벽에 붙은 카드를 가리킨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새로운 소식이 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우리 저 말씀을 함께 믿도록 해요.”

그날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에서 제이콥이 사라지지 않는다. 기다리고 있는 검사 결과들, 가능한 발병 원인들, 최선의 치료방법, 움직이지 않는 팔 아래에 있던 동물 인형, 부모의 눈에 깃든 아픔. 이런 것들이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아 차가 우리 동네에 들어가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병원에서는 제이콥과 그의 부모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집에서만은 내 가족에게 100퍼센트 헌신해야 한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떨쳐내며 기도한다. 집 주차장에 들어올 때면 항상 하는 기도다. 주님, 제가 오늘 만난 어둠을 집으로 들고 들어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너무도 약하다

잘 시간이 되면 나는 막내 딸과 함께 책을 읽는다. 번갈아가면서 큰 소리로 읽는 동안에도 나는 제이콥에 대해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내 딸은 제이콥보다 조금 더 어리다. 지금은 너무도 건강하지만, 제이콥도 지난 주까지는 내 딸과 다르지 않았다. 보통 때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지 않는 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딸이 제이콥처럼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내 머리에서 억지로 몰아내야만 한다. 

제이콥과 같은 일이 내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닥칠지 알 수 없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기도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제이콥의 부모가 겪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얼마든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단단한 땅에 바로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생각과 내가 씨름하는 동안에도 빛은 반짝인다. 나는 제이콥 부모의 눈에서 그 빛을 보았다. 그들이 겪는 고통 뒤에 숨은 그 빛을 보았다. 그것은 희망, 궁극적인 희망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상처가 진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또한 그 상처가 마지막이 아님도 알 수 있었다. 타락한 세상에서 사는 이상 질병과 죽음을 잊을 수는 없지만, 이런 현실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는 이미 죽음을 이기고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이번 주에 만날 푸른 초장은 어쩌면 시기 적절한 진단과 제이콥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적인 항생제라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의 목자는 더 오래 지속되는 초장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나는 첫 번째 초장을 위해 싸울 뿐 아니라 두 번째 초장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데도 내 평생을 바치고 싶다. [복음기도신문]

“ 제이콥의 가족은 서로의 짐을 짊어지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의 가정이 받는 축복을 경험하고 있었다(갈 6:2) ”

제임스 스코트 Scott James | 브룩힐스교회(The Church At Brook Hills)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으며, 미국 알라바마 주에 있는 병원에서 소아 감염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God Cares for Me: Helping Children Trust God When They’re Sick’, ‘Mission Accomplished: A Two-Week Family Easter Devotional’ 등 다수의 책 저술.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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