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삶” 그런데 대체 어떤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나’라는 자아는 곧 ‘내 마음’에서 나옵니다. ‘내 마음’이란 나 자신에 대해 느끼고 반응하고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핵심입니다. 이 인간의 마음은 외부의 어떤 충격과 자극에도 지독하게 변하지 않는, 우주에서 가장 견고한 진(陣)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태어났을 때는 내가 누구라는 자기 정체감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세상의 세속적인 교육과 신문, 잡지, 광고, 드라마, 연예인 등 미디어를 통해 외모, 성격, 장·단점 등 자아 인식에 대한 정보가 쌓입니다. 여기에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부모나 권위자,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도 뒤섞입니다. 그 결과 왜곡된 가치관과 자아 인식이 생깁니다.
“너는 못생겼어.” “네가 그렇지 뭐.” “너는 쓸모없는 존재야.”
이런 말들로 형성된 자아는 반작용으로 자아 연민, 자기만족, 자기 쾌락, 자기 사랑으로 똘똘 뭉치게 합니다. “너는 예뻐.” “똑똑해.” “착해.”라는 긍정적 인식은 어떨까요? 그것 역시 자기의를 만들어 왜곡된 자아 인식을 낳습니다.
이렇듯 죄가 생명 자체에 들어온 모든 인간의 ‘부패한 생명’에 ‘잘못된 자아 인식’이 더해진 것을 ‘병든 자아’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병든 자아가 평생 자기변명과 합리화로 똘똘 뭉쳐 거짓된 실체를 가리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더 화려한 외모, 더 큰 성공, 더 강한 자존심, 더 강한 피해 의식, 때로는 더 착하고 열심히 사는 나를 만들어 계속 병든 자아를 강화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죽을까 봐 덜덜 떨면서 십자가 앞에 결코 나아가지 않는 나의 실체입니다. 복음을 통해 원형의 생명이 어떠한 모습인지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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