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내가 소망이 없는 자임을 깨닫자 복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주님의 행복한 신부 김미숙 선교사

“주님이 나에게 주님의 전부를 주셨으니까, 나의 전부를 주님께 드리고 싶어요. 완전한 순종을 하고 싶어요”라며 주님이 부르신 L국을 향해 나아가는 김미숙 선교사를 만났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한 영혼에게 완전한 복음을 들려주시고, 그 사랑을 온전하게 누리며 자신도 전부를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님의 신부로 세우시기까지의 믿음의 여정을 소개한다.

–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해주세요.

“저는 완전히 세상 속에 있었어요.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엄마는 잘살아보려고 여러 사업들을 하셨어요. 하지만 빚을 많이 지기도 하면서 매일 굿도 하셨어요. 그러다가 군대에서 오빠가 죽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빌고 열심히 굿을 해도 되는 일이 계속 없으니 너무 힘든 날을 보내셨는데 교회에 다니시던 이모가 성탄절에 ‘교회 한번 같이 가자’고 초청해주셨어요. 그때 엄마가 주님을 만나셨어요. 하나님이 오래 기다렸다면서 만나주신 거예요. 제가 이혼하기 3년 전에 엄마가 먼저 믿음 생활을 시작하신 거죠. 그리고 저는 이혼하고 엄마 집에 들어가게 되면서 교회에 다니게 됐어요”

– 어머님이 먼저 주님을 만나 통로가 되어주셨군요.

“솔직히 교회는 참 싫었는데, 엄마가 밥 안 먹여줄까봐(웃음), 순탄하게 여기서 살고 싶어 교회에 따라갔어요. 교회는 제가 살았던 문화와 너무 달랐어요. 돼지갈비를 먹으러 갔는데 소주 없이도 고기를 맛있게 먹는 게 신기했어요. 나 같은 사람을 교회가 받아주고,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 올 수 있구나. 너무 기뻤어요. 하루는 길거리에서 죽은 한 노인을 위해 장례를 치러주시는 목사님을 봤어요. 동그랗게 모여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길거리 노인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 눈물이 보석처럼 보이는 거예요. ‘어떤 마음이면 그렇게 눈물을 흘리시며 기도할 수 있을까? 나도 저런 값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후로도 감격 속에서 신앙생활을 계속했어요. 교회가 전부인 줄 알고 교회에 미쳐서 다녔어요”

무연고자 장례식에서 본 ‘눈물’

– 완전히 교회에 푹 빠지셨군요.

“저에게는 교회가 전부였어요.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교회에 드렸고, 교회를 일으키고 교회 꾸미는 것에 마음을 드렸어요. 저는 목사님이 화장실도 안 가고, 목사님은 예수님 동생쯤 되어서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고 이런 분인 줄 알았어요. 목사님이 말씀하시면 토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목사님 설교를 적어 설교집을 만들어 다시 목사님께 드렸어요. 목사님은 그것을 가지고 다른데 설교를 가시고 그랬어요. 목사님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잘 살지는 못했지만 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느 날부터 저의 신앙생활에 위기가 찾아왔어요”

– 어떤 위기였죠?

“목사님이 어느 날 다가오셨어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거예요.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초신자인 저는 목사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데, 성경을 인용하면서 저를 요구하시는 거예요.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어도 주님은 다윗 편에 계셨다는 둥 저를 계속 세뇌하셨어요. 신앙생활을 처음 하는 저에게는 목사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었어요. 복음을 알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은 다른 소망이 없는 제가 목사님의 인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더군요. 또 저도 음란하니까 떠날 수 없었던 것도 이유였겠죠. 참 어리석었죠.”

–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후에 어떻게 됐죠?

“어머니 따라 다닌 교회에서 벌어진 일이라 참 난감했어요. 주위에서도 그런 관계를 눈치챈 것 같았어요. 죄책감과 두려움에 정말 무서웠어요. 그때는 이런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어디로 들고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제가 입만 열면 교회가 다 무너지는 거잖아요. 진짜 그때는 죽을 것 같았어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때가 왔고, 교회를 옮겨야 하겠다고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마침내 교회를 옮기게 됐어요. 옮긴 교회에 가서 매일 울면서 주님께 기도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요. 그러다가 교회 집사님 한 분이 한 선교단체의 훈련을 소개해주셨어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다면서요”

– 훈련은 도움이 되셨나요?

“집사님의 말이 생수처럼 들렸어요. ‘나 거기 꼭 가야겠다, 나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꼭 물어볼 말이 있다’ 거기만 가면 살 수가 있을 것 같고, 길이 열릴 것 같고,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거기서 한 목회자를 만났어요. 어느 날 그분이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교회에 목사님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충격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또 있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범죄한 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그분에게 털어놨어요. 사실은 나도 그런 관계에 있는데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죠. 그리고 그분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내어 이전의 관계를 다 정리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어요.”

결단하면서 죄에서 벗어나다

– 주님이 하셨네요. 오랜 거짓말에서 벗어나셨다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은혜죠! 주님이 저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진짜 감사해요! 지금 되돌아보면 주님이 나 같은 자를 어떻게 안 버리셨을까, 그런 꼴을 다 보고 계셨을 텐데 어떻게 나를 안 버리셨을까 생각하게 돼요. 그게 너무 은혜인 거죠. 이후 저는 선교단체의 훈련을 받은 후 C국 선교를 준비했어요.

처음 C국에 나가기 한 달 전에 복음학교를 하게 됐어요. 2012년 9월에요. 이미 열방으로 가기로 결정되어있는 상태였으니까 복음을 좀 더 알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전도에도 필요하겠고요. 복음학교 일주일 동안 주님이 ‘그동안 너 잘했다’는 칭찬과 위로의 말씀으로 들렸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복음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은 것 같아요. 십자가에 나의 옛 자아가 달린 모습이 환상처럼 보였는데 그것을 ‘나 십자가 통과했구나’라고 여겼어요. 정말 복음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열방으로 간 거예요.

그러다 2014년 초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선교지로 못 돌아가게 되었어요. ‘그럼 나는 어떡해야 하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사역해보려고 했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 무슨 일이 있었나요? 왜 선교지에 못 가게 되신 거죠?

“당시 그 나라에서 신분이 불명확한 사람들은 정부에서 추방했어요. 저를 도와주시던 리더 선교사님들도 추방당하시고 저도 5년 입국정지가 되었죠. 갑자기 이렇게 되니 복음학교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섬김이로 참여해 다시 복음을 들으면서 그제야 내가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 주님이 이곳보다 더 더러운 내게 오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교사의 부르심을 확증하게 된 M국의 쓰레기 더미 근처.

그리고 중보기도학교 훈련을 받으면서 아프리카의 M국으로 아웃리치를 가게 되었어요. 그 나라의 시장 바닥은 너무 더럽고 파리 떼가 새까맣게 앉아있었어요. 사람들이 진흙 바닥에 앉아있고 쓰레기 더미에서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었고요. 제가 있던 C국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비교가 됐죠. 그때 주님은 ‘너는 내가 부르면 이곳에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처음에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주님이 다시 말씀하셨어요. “너는 이곳보다 더 더러운데, 나는 그런 너에게 왔단다” 그리고 저는 “주님이 더 더러운 나에게 오셨으면, 그렇다면 저도 갈 수 있어요”라는 고백을 드렸어요”

“이곳보다 더러운 너에게 왔다”

–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이군요. 이후에는 어떻게 인도하셨죠?

“중보기도훈련을 마치면서 다른 사람들은 ‘존재가 바뀌고 부패한 심령의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믿음으로 참예하는 옛 자아의 사형 집행이 되었다’고 고백하는데,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이대로 멈추거나 뒤로 물러가면 그냥 또 복음을 못 알아듣고 끝나겠구나 생각이 되더라고요.

어찌하든지 저 고백이 뭔지 알고 싶어서 6개월 합숙으로 진행하는 신앙훈련학교에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존재적 죄인’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저 스스로 굉장히 놀랐어요. 내가 ‘존재적 죄인’이라는 말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존재구나. 내가 얼마나 진리에 가려져 있고 자아에 갇혀 있었는지 보게 되었어요.”

– 언제 복음을 알아듣게 되셨어요?

“신앙훈련을 마치고 주님이 한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복음과 가정’이라는 훈련으로 불러주셨어요. 훈련을 받으며 복음 스터디를 했는데 ‘마음’에 대한 진리를 공부하면서 제가 얼마나 사탄의 자식인지 비로소 보게 되었어요. 왜 지금까지 살면서 사탄 자식 짓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제야 에베소서 2장 말씀을 보며 깨닫게 됐어요.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지금 당장 지옥에 가야 하는 제 실존을 보았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때 처음으로 제 마음에 사형선고가 내려졌어요. ‘난 죄인이구나. 내겐 아무 소망이 없구나’ 그때부터 주님이 조금씩 복음을 알게 해 주시고, 제가 얼마나 주님 없이 스스로 살 수 없는 존재인지 보여주셨어요.

머리로만 진리가 무엇인지 결론이 됐지 삶에서는 복음이 실제가 안 되는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어요. 그 시간 동안 복음이 너무 짐스러웠어요. 교회에 있을 때보다 복음이 너무 무거웠어요. 열방으로 도망가고 싶고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 실존을 보시면서 또 한 번 어려운 시간을 겪으셨군요.

“그러던 때 해외에서 열리는 복음학교 섬김이로 참여하게 됐어요. 너무 기뻤어요. 매여있고 힘들어하던 때 복음 앞에 불러 주시며 주의 은혜로 덮어주시는 시간이었어요. 그때 깨달아졌어요. ‘주님으로 덮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구나’ 주님으로만 기쁜 시간을 보냈어요.

이후 6개월 합숙 신앙훈련에 섬김이로 참여했어요. 그때 선교사님의 말씀을 통해, ‘선교지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 나의 원함이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주님 마음도 있을 테지만 나의 원함도 섞여있구나. 그래서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나의 마음을 백지로 드리기로 결단했죠. 그리고 주님이 백지 같은 제 마음에 써주시기를 기도했어요. 그리고 주님은 제 마음에 ‘전부로 드릴 것’을 써주셨어요. 그렇게 주님께 전부로 드렸고 한 선교단체를 통해서 L국으로 불러주셨어요”

복음의 공동체로 증인된 삶을 살고 싶어요

– 다시 선교지로 나가시는데 너무 기쁘시겠네요. 마지막으로 기도 제목 나눠주세요.

“그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연합이 이루어져서 복음의 공동체로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복음의 공동체로 일어선 증인 된 삶을 살고 싶어요. 물론 치열하게 부딪치고 어려운 시간도 있겠지만 복음이면 가능한 공동체의 삶의 증인이 되면 좋겠어요. 그 나라에서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지는 그 일 가운데 저를 세워주시기를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주님 앞에 순종하듯, 세워주신 리더십에게 순종하는 자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자녀들이 믿음 가운데 일어나서 주님이면 행복한 주님의 신부로 섰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함께 선교사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H.M.

<저작권자 ⓒ 복음기도신문 > 본지 기사는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분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복음기도신문]을 밝히고 사용해주세요. 문의:

▶ 2014년 6개월의 복음훈련과정 중 P국 아웃리치에서 기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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