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복음 (3)
악의 화려함과 거대함이 대단해보이고 교회까지 그 안에 휩쓸려간다 해도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한낱 꿈과 같이 여기실 뿐이다.(시 73:20) 이러한 믿음의 눈이 떠지면 심령에 겸손함이 회복된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시 73:22) 이 말은 복음을 알고 특별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진리를 앎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의 번성함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불변하는 진리를 믿지 못하는 내가 짐승수준 밖엔 되지 않는다는 겸손함의 회복을 의미한다.
주님을 믿지 못해 실족한 사람과 실족할 뻔했어도 실족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자신에게서 가능성이나 특별함을 찾느냐 찾지 않느냐 하는 것뿐이다. 주님께서 은혜로 자신의 오른손을 항상 붙드시고 계심을 깨닫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며 몇 번씩이나 되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내게는 주님밖엔 남은 게 없지!’라며 버틸 수 있었던 건 오직 주님의 손이 나를 붙드셨기 때문이다. 내가 주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항상 우리의 손을 붙들어주고 계셨다.
내가 아니라 주님 나를 붙들고 계셔
내 믿음이 특별하다면 실족할 일도 없어야 했고, 잘못된 선택도 없어야 했다. 이런 실수와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님만 남은 자’로 서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님이 붙들어주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에 대한 믿음의 눈이 뜨였는가?
환난과 고난의 때에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는 우매무지한 짐승 같은 내가 걱정하지 않고 확신가운데 외칠 수 있는 말이 있다. ‘주님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영원불변한 진리가 나를 이끌어 가시며 영원한 승리를 누리게 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복이다.
하늘나라도, 시온성도, 생명수도 그 무엇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모하는 자는 자신의 마음과 육체와 의지가 쇠약해질 때 영원한 상급되신 하나님을 더욱 붙든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6) 그리고 하나님을 붙든 자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a)는 탄성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것은 깊은 낙담과 절망 이후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믿음의 고백이다.
진정한 복은 무엇인가? 천하의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인가? 아니다. 내게 최고의 복은 주님을 가까이함이다! 주님은 나의 완전한 피난처가 되신다. 한평생 사는 동안 그분 때문에 얼마나 신나고 행복한지를 저주받은 모든 영혼들에게 외쳐야한다.
완전한 사랑이신 주님을 멀리하면 당연히 망한다.(시 73:27) 모든 선과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것 자체가 이미 저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일생 동안 누린 다윗은 ‘여호와는 내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다’(시 23편)고 고백했다. 참된 신자는 내가 원하는 사람, 물질, 상황이 허락되지 않아도 ‘주님이면 충분하고 복음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2017년 2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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