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102)
“무사 경햄수꽈? 이수꽈어수꽈? 메기우다게.”
왜 그렇게 하세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에 있던 게 이제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주도 방언입니다. 조선 최초의 선교사 이기풍 목사님이 파송되었던 제주도. 그러나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조상신을 섬기는 제례 문화는 흔한 일상이자 삶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마당에서 형제들과 놀다 방에 들어왔을 때, 아주 커다란 구렁이 몇 마리가 안방에 뒤엉켜 있는 게 너무 무서워 한참을 달려 아버지 회사로 갔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조상신 섬기다 죽어 지옥에 떨어졌을 내가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생명으로 만난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일어난 기적을 마치 오래전에 울며 봤던 감동적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마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언제부턴가 엉덩이 쪽 통증을 시작으로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런저런 검사와 치료 끝에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하반신마비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처럼 내가 바로 치료가 필요한 병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노름과 빚 때문에 도망하다시피 떠난 제주도. 그 후에도 술과 노름, 폭행으로 변하지 않던 아버지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 술장사를 하게 되었던 어머니.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어느덧 사람을 두려워하고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선교사로 헌신하고 10여 년을 보내면서 과거의 나와 육신의 가족들의 모습들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나의 슬픔과 고통, 상처와 아픔을 건드리지 않고 싶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30년 만에 다시 이곳 제주도에 와서 불신자인 가족과 함께 일 년을 함께 하게 되었을 때, 어쩜 그렇게 바뀐 게 없는지. 10년 전의 시간이 마치 어제 일로 내게 확 다가왔습니다.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열방을 매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의 문제가 열방의 문제요, 가족의 필요가 열방의 필요임을 보며 늦은 밤, 무릎 꿇고 통곡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구원이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복음을 알아들을 수 없는 영혼이기에, 저의 기도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도저히 꿈꿀 수 없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모님이 차례로 복음을 만나게 되신 것입니다. 열방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자녀들을 이곳 땅 끝까지 파송하셔서 일하신 주님의 열심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공동체와 사역의 자리에 돌아와 서 있습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공동체 안에도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나도 무엇이 바뀌었을까? 한 가지 뚜렷하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네,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인지.
작은 운동장이 보입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신바람 나게 달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열방을 기도로 그렇게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영생의 삶을 더욱 누리고 싶습니다.
양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