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하기를, “이런 정신적 고통은 견뎌낼 수 없을 듯하다. 더구나 시간은 멈추어 있다. ‘난 더 이상 못 하겠어’ 라고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가 말했다. 난 한 시간 동안 어린아이처럼 울 수 있었음에도 내가 무엇을 위해 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설교의 황제로 불리는 찰스 스펄전입니다.
“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이 고통은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갈 수 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에게서도 밝은 표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끔찍이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더 나아질 수 없을 거라고. 이런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보건대, 죽어버리던지 아니면 더 좋아져야 한다.” 이것은 위대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이런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가족 모두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스펄전과 링컨의 예를 보더라도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닙니다.
이 글은 의학적, 신경정신학적 이론을 지지하거나 평가하는 목적이 아님을 밝혀 두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이 문제를 인식해야 할지 성경의 예를 통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의 원인, 약물 부작용, 진단, 치료 등에 관련된 세세한 내용은 여기서 다루지 않음을 또한 밝힙니다.
우울증에 대한 성경적 시각
우울증에 대한 세상적 시각과는 달리 성경적 시각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먼저 성경에서는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과 같은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의 예를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상태”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이들의 “상태”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문제는 죄입니다. 우울증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 외부로부터 오는 고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등의 문제들에 대해 죄악 된 반응을 하게 될 때 이것이 직접적인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우울증을 앓고 사람에게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울증과 죄를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고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에 논의할 우울증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살펴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울증에 대한 성경적 정의
로버트 스미스는 우울증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낙심되는 기분, 느낌, 또는 소망이 없다는 이유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들을 다루지 않는 태도”라 말합니다. 마샬 애셔는 “우울증이란 하나님이 우리 삶을 주관하도록 내어드리는 대신 우리의 감정이 삶을 이끌어가도록 내어주는 것으로 이는 죄다.” 존 스트리트는 “낙심한 것”과 “우울증”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울한 기분, 감정을 느낄지라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들을 여전히 다루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면 이는 “낙심한 것”으로 보는 반면 우울증은 낙심한 상태에 더불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능 정지의 상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이 아담스는 “어떤 문제를 초기에 잘 못 다루고 문제를 확장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여 당사자를 낙담한 상태로 몰아버리고, 절망, 죄책감으로 사로잡히게 만들어 행동이 지연되거나 정지된 상태”를 우울증이라 정의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하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우울증의 마지막 단계로서 종종 자살을 선택하여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예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두 사람의 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인 및 엘리야가 처했던 각각의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었고 또 어떻게 그 상황에 반응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인과 엘리야의 삶에서는 우울증 환자와 같은 상태, 곧 죄의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엘리야에게서는 죽기를 구했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 가인
창세기 4장 1-15절에 나타난 그의 상태는 불순종과 회개하지 않는 악순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문제에 대한 가인의 첫 번째 반응으로 자신의 제사가 거절된 이후 가인은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는 대신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향해 극도로 분노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6-7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가인을 위해 상담자가 되어주십니다. 가인의 잘못된 반응, 그의 태도와 상태를 분명히 언급하시며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선을 행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 때 낯을 들게 될 것(하나님이 받아주실 것을 약속하심)을 가르쳐주십니다. 가인은 그의 삶에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능정지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우울증입니다. 여기서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지 않을 경우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라고 경고하십니다. 또한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명령하십니다.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의 두 번째 반응을 보면, 하나님의 분명한 가르침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자신의 분노와 악한 마음에 이끌리어 또 다른 죄를 범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분노에 더불어 아벨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며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8절에서 보여줍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은 가인의 마음을 찌르는 질문을 하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의 죄에 대한 세 번째 반응은 하나님의 질문에 뻔뻔하고 반항적인 태도로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의 반응은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어버렸습니다.
10-12절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은 가인의 살인행위를 빛 가운데 드러내시고 그 죄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의 네 번째 반응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에 이끌리어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불평하고,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며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의 죄악 된 삶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져간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에서 떠나 있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를 말할 때 “믿음”이라는 단어를 두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설령 가인이 아벨과 같은 제물을 드렸을지라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하나님은 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않음을 지적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요한일서 3장 12절에서 가인이 결국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유다서 11절에서도 영원한 심판이 예비된 자들과 가인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가인은 끝까지 자신의 영적인 문제, 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죄가 점점 자신을 지배하도록 내어주는 심각한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가인의 예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하나님을 향한 인생의 중요한 사안들은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우울증입니다.
- 엘리야
열왕기상 18장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로부터 승리하고, 비를 내리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장 1-4절을 보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이세벨의 문제에 대해 낙심하고 두려움을 느껴 도망하고 죽기를 구하는 죄악 된 반응과 그의 어두운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열왕기상 19장 2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하나님의 역사와 죄에 대한 심판을 보고도 여전히 이세벨은 우상숭배를 그치지 않고 오히려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은 엘리야에 분노하며 엘리야를 죽이려 계획합니다. 이 문제에 엘리야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목하십시오.
19장 3-4절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존 맥아더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희망이 무너진 엘리야는 도망쳤다. 그녀는 여전히 바알을 숭배했으며, 이스라엘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항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녀가 뜻을 돌이키지 않자 낙담했다(4, 10, 14절).”
엘리야의 낙심한 상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의인은 자신만 홀로 남은 것으로 믿으며 감정에 압도되고 이끌리어 두려움에 빠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엘리야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자신의 감정에 이끌리어 하나님 안에 있는 “희망”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낙심하고 희망을 잃은 엘리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이세벨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자신의 감정에 이끌리어 행동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는 도망하고, 브엘세바에서 홀로 하룻길을 더 갔으며,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자신과 조상들을 비교하며 처지를 비관하고 삶을 이어갈 의미가 없음을 핑계하고 있습니다. 윌리암 맥도날드는 로뎀 나무 아래에 멈춘 엘리야를 “낙담과 패배의식과 좌절감 속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엘리야의 상태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해야 할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능 정지의 상태에 더불어 죽기를 구하는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엘리야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자 도구입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기능정지 상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19장 9-14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에게 천사를 통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셔서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인도하십니다. 스스로 굴에 들어가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두 번에 걸쳐 엘리야의 마음을 드러내는 질문을 하십니다(19장 9, 13절).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이 대답을 통해 엘리야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악행을 비난함과 동시에 자신만이 신실한 자임을 드러내는 자기 의에 빠진 교만한 태도의 대답을 19장 10절과 14절에서 두 번에 걸쳐 반복합니다. 여기서 엘리야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전가의 태도를 보이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서 이유를 찾습니다. 하나님은 19장 18절에서 엘리야 자신만이 남았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다음 시간에는 가인과 엘리야처럼 우울증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이 문제를 올바로 다루었던 사도바울의 예를 살펴보고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성경적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전경식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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