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인이 자신의 몸에 이상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의 진단결과는 위암이었습니다.
부인은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힘이 빠진 채로 겨우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족들은 이 소식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다시 진단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습니다. 게다가 상태가 너무 진행 되어 치료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 모두 깊은 슬픔에 빠져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들의 모든 소망은 끊어졌고 완전한 절망뿐이었습니다.
의사의 치료를 수용하려면 환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은 새로운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수용하기 위해서도 먼저는 자신의 실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존재적 죄인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되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그 사람은 하나님의 해결책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수용하게 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15)”
또한 복음을 수용하기 위해선 십자가의 죽음에 믿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죽음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이별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믿음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죄 된 존재의 죽음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은 옛 자아의 생명력이 퍼져 있던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죽음을 말합니다.
죄 된 몸, 세상, 정욕과 탐심에 대한 죽음이며 모든 관계와 소유에 대한 죽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생각, 지성, 감정, 의지에 대한 죽음이며 율법, 과거, 내가 속했던 모든 것에 대한 죽음. 곧 죄 곧 나, 나 곧 죄, 존재적 죄인의 죽음입니다.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