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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현대로 계승된 고대 종교의 영지주의

사진: unsplash의 Shino

눈먼 기독교(55)

영지주의는 정통 기독교의 자리를 흔들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뉴에이지는 물론 동양사상 그리고 심리학과도 연계가 되어 영지주의는 나날이 그 세력을 더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세계적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특별히 영지주의와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융은 자기 아내가 죽은 후, 신비주의 상징을 새겨 놓은 돌을 쌓고서 죽은 아내가 환생할 것을 기대했다. 그는 자기의 학문적 이론이 하늘에서 온 신비한 깨달음, 즉 영지주의에서 온 것이며, 자신이 죽은 자들과 대화를 하고 귀신들과 교접하는 능력도 가졌음을 고백한 바 있다. 특히 그는 빌레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신에게서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론 체계를 정립했다고 밝혔다. 융은 평소에 무속(巫俗)과 고대 신화를 깊이 연구했으며, 그 중에서도 영지주의 신화에 심취되었다.[1]

영지주의는 선(빛)과 악(어둠), 그리고 영과 육이라는 이원론에 매우 충실한데, 이것은 기독교와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 동일하지는 않다. 기독교의 이원론은 하나님과 그에 대비되는 것과의 이원론인데 비해,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이 세상 안에서의 이원론이다. 즉,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존재와 상관없이 선과 악이 있다고 믿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떠난 것은 선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독교는 성선설이 아닌 성악설을 말하는 것이다.[2] 또한, 영지주의는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영은 선하고, 물질(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을 견지하는 데 비해, 기독교는 영과 육을 분리하지 않는 영육일원론을 따르고 있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됐지만, 그 사상적 근원은 이미 이전 고대로부터 존재했다. 기독교보다 5세기 앞서 탄생한 조로아스터교는[3] 물론 2세기 후에 나타난 마니교도[4]사실은 영지주의와 계보를 같이 한다. 이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5]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를 우리가 영지주의의 할아버지라고 한다면 영지주의의 서자가 기독교 정도에 해당될 것이고, 그 적자가 되는 것이 바로 마니캐이즘이다. 마니캐이즘은 중국 역사에서 마니교(摩尼敎)로 알려져 우리 동양학도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중략) 그는 그 자신을 아담으로 시작해 조로아스터, 석가모니, 예수로 이어지는 하늘의 사자의 마지막 계승자로 간주했다. 그의 이론은 영지주의의 어둠-빛의 사상의 이원론을 철저히 한 것이다.[6]

영지주의가 기독교에서 변질되어 나온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오히려 영지주의의 서자(庶子)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이전부터 영지주의와 같은 영적 토대를 가진 종교가 존재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비단 영지주의 자체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사상과 종교 대부분이 이런 식의 이원론적 이론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와 비슷한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이원론이 바로 영지주의다.

자의적 각색과 엉터리 해석의 종교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영지주의는 그 자체로 또 다른 기독교가 아니라 오리지널 기독교를 변질시킨 ‘가짜’ 기독교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교리와 가르침을 주장하는 종교가 아닌 자의적 각색과 엉터리 해석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함으로써만 존재하는 짝퉁 기독교가 바로 영지주의이다. 이것은 비록 정통 기독교에서 시작했으나 곧 형제가[7] 아닌 적그리스도(anti-Christ)로 자리를 잡았고,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8~19)

진정한 종교가 다 그렇겠지만, 신앙은 무엇보다도 무엇을 믿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믿느냐가 또한 중요하다. 믿음은 당연히 앎(지식)과 함께 가는 것이지만, 굳이 믿음과 앎 둘 중에 먼저 필요한 것을 고르자면 믿음이다. 제대로 믿으면 잘 알게 된다. 잘 알면 더 제대로 믿게 된다. 이것이 신앙의 선(善) 순환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Metaphysics) 첫 구절에서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알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지정의(知情意)가 인간의 본성일진대 이것은 매우 타당한 고찰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미 타락한 상태에서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에 온전한 것을 올바로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죄와 상관없이 온전한 존재이신 예수가 오신 것이고 그분을 받아들일 때 (즉, 믿을 때) 하나님과 자아, 세상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알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 진리다. 기독교에서 깨달음이 필요하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그 예수가 바로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 깨달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나머지는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1] 비단 칼 융만이 아니라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심리학자 역시 고대 문물과 사상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그의 분석진찰실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아시아로부터 온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2]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악하게 태어난다는 의미다.

[3] Zoroaster, 페르시아(현, 이란)의 조로아스터가 창시한 종교로서 해, 불, 별 따위를 신성시한다.

[4] Manichaeism, ‘빛의 사도’로 알려진 마니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

[5] 대학교수이자 학자이며 철학자, 언론인, 한의사, 방송인이다. 고려대 철학과(학사), 대만국립대학원(석사), 일본동경대학원(석사), 미국하버드대학원(박사)등에서 수학하였다.

[6]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통나무, 140-141쪽

[7] 로마 가톨릭(천주교), 정교회(Orthodox Church), 그리고 개신교(Protestant Church)가 3대 정통 기독교며, 일반적으로 상호 간에 형제 교회로 인정을 한다. 물론 상호 인정하지 않는 성직자들도 꽤 존재한다.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Park Sun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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