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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오병이어 같은 버스킹

▲ 아프리카 찔로음악학교 단기선교 영상보고 | 횡성라이프TV ep.109 사진 : 유튜브 채널 횡성라이프TV 영상 캡처

가끔 오병이어의 기적을 소망할 때가 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죄인이 그것을 믿는 것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약속받았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죄인인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매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게 기적이다. 나의 하루하루가, 순간이 기적이다. 하지만, 가끔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랄 때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통장에 수억의 후원금이 들어와서 끊겨버린 헌금과 폭등한 자재값 때문에 중단된 학교 공사가 재개되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서 한 명도 굶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어느 날 갑자기, 신실한 의사가 이곳으로 와서 병원을 세웠으면 좋겠고, 그래서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한 아픈 사람들이 치료받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손대고 기도하는 자마다 깨끗이 치료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환상이라도 보고 꿈이라도 꾸고 예언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눕자마자 곯아떨어지느라 꿈꿀 겨를이 없는 나는 3초 앞 미래도 보지 못한다.

기적은 ‘하나님 안에서 오늘을 사는 것’이라고 자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가난하고 병들고 소망 없는 이들을 볼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소망된다.

한국에서 음악을 전공한 4명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재능으로 시에라리온 다음세대를 섬기기 위해 1년을 약정하고 이곳으로 왔다. 음악으로 복음을 전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예배하고 간증하는 찬양밴드를 만들고 싶었던 선교사님의 소망이 곧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이 오픈한 음악학교에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어린아이부터 40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오디션을 거쳐 기타, 드럼, 건반, 보컬 분야의 20여 명의 학생이 선발되었다.

그중에 악보를 볼 줄 아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아예 악보라는 것을 처음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박자는 어떻게 맞추는 것인지, 음정은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다.

예배 때마다 1시간 넘게 춤추면서 부르는 찬양은 그들이 ‘성령의 감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100% 느낌과 감이었다.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워본 적 없이 오랫동안 감과 느낌만으로 노래를 불렀던 이들에게 음표와 박자를 가르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령의 감동’인 시에라리온 스타일로 중무장을 한 이들에게 만민이 정한 규칙과 약속을 가르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학생들은 열을 가르쳐주면 열한 개를 잊어버렸고, 그렇다고 따로 연습이나 복습을 하지 않다 보니 진도는 너무 더뎠고, 한 달이 넘도록 한 박자, 반 박자, 사분음표, 팔분음표, 등 첫 시간에 배웠던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다 보니 선생님들은 조금씩 지쳐갔다.

진도를 나갈 수 없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에라리온 스타일’이 깨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흔히 배우들이 연기할 때 고쳐지지 않은 말의 습관을 전문용어(?)로 ‘쪼’라고 하는데, 그런 ‘시에라리온 쪼’ 현상이 거머리처럼 붙어있는 것이다. 그것을 떼어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한계를 실감하고 고민했지만, 정작 학생들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라는 표정으로 티 없이 해맑았다. 기타반의 기초반을 담당하고 있던 나는 ‘차라리 그들의 쪼를 인정하고 이때까지 해오던 것처럼 느낌과 감으로 하는 건 어떨까?’라고 타협하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르쳤던 유일한 수강생인 임마누엘(한국어반의 임마누일에 아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코드 하나를 외우지 못한 임마누엘 때문에 ‘주님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기도를 했던 나는 포기해 준 그가 오히려 고마웠다. 그 후, 가끔 선생님들의 수업시간에 찾아가서 창너머로 빼꼼히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신음 같은 ‘주님!!’만 터져 나왔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뒤에서 기도만 열심히 하기로 했다. 부디 모든 한계가 깨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찬양밴드라는 선교사님의 오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로 쓰임 받기를. 그런 오병이어 같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밴드가 결성되었다면서 버스킹을 준비한단다.

아멘!! 할렐루야. 분명한 응답이었다. 마침내 그들의 틀이 깨어지고, 악보를 보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한 달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어 보였다. 기본 코드 4개와 4/4박자로 모든 찬양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물론 시에라리온 스타일로. ‘이 실력으로 버스킹을?’

나는 말리고 싶었다. 안될 것 같았다.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좀 더 연습하고 나갔으면 좋겠고, 포기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기대가 되었다. 분명 하나님이 만지시고 있다는 것이 믿어졌다.

역시나 버스킹은 축제의 현장이었다. 맞지 않는 박자와 음정, 틀린 코드와 주법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곳에 모인 남녀노소 누구라 할 것 없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우리와 함께 찬양을 따라 불렀다.

기적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했을 때,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현실적인 계산법으로 반응했을 때가 아닌, 가지고 있는 전부, 오병이어를 드렸을 때 일어났다. 어디서 이백 데나리온을 구해 떡을 사다 먹이는 그 믿음을 뛰어넘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드린, 한계를 뛰어넘은 그 믿음이 기적을 보게 하였다. 기적은 그 오병이어에서 시작되었다.

정작 한계는 한계라고 인정하고 안 된다고 규정 지어버린 나의 마음이었다.

찬양이 울려 퍼진다. 기적이 일어났다. 오병이어. 안 된다는 한계를 뛰어넘고 전부를 드렸더니 그들은 기적을 체험했다. 그 기적은 소망이 되었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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