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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저를 보내주십시오. 꼭 필요한 식량을 구해 오겠습니다”

사진: Eduard Delputte on Unsplash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6)

구사일생으로 중대장이 있던 515 고지에 올라가 포위망 안에서 떨고 있는 중대장님과 부대원들, 모두 8명의 전우들과 극적으로 만났다. 화약을 짊어지고 불구덩이로 들어온 셈이 되었다. 중대장과 부관은 독 안에 든 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미 철모는 없어진 채로 전의를 상실한 모습이었다.

중대장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OP까지 올라온 이야기를 듣고 내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연신 “조 중사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전우들도 나의 의지를 용감하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잠시 후 중대장은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무기 실탄을 점검하고 비장한 행동지침을 밝혔다.

“앞으로 조 중사가 가져온 ‘인절미 떡’은 임의로 먹지 말라. 내가 직접 배식하겠으니 포위망을 뚫고 나갈 때까지 고통을 함께 극복하자.”

중대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나는 인절미 배낭을 군속에게 인계하고 그 후부터는 떡에 대한 생각을 잊기로 했다. 배가 고파지면 중대장 입회하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해준 양대로 딱 한 조각씩 먹었다. 그러나 양이 너무 적어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중대장과 부사관은 노심초사 작전지도를 살펴보며 퇴로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포위망에 갇혀있는 패잔병 같은 신세에 묘안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굶주리다보니 유일한 인절미 떡마저 바닥나 버렸다. 서로들 처량하게 바라만 볼 뿐이다. 춥고 배고프면 도적질도 한다는데 뾰족한 묘안도 나오지 않았다. 비오는 밤 돌 바위 틈에 꿇어 앉으니 다시 이 양이 떠오른다. 내가 적진을 뚫고 ‘지정골’로 올라갔다는 사실은 사촌 오빠를 통해 이미 알고 있을텐데….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메인다.

모두들 배를 채우지 못해 기력이 없었다. 그토록 용감했던 전쟁 군인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포위돼 있지만 중대장을 보필하는 연락병의 소임을 다하려고 결심했다. 그 책임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나는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 시절 나의 경험을 떠올렸다. 군속 2명을 데리고 도라지와 달래 순을 채취하여 철모에 물을 끓여 나물 주먹밥을 만들어 하나씩 나눠 주었다. 다들 별 수 없이 쭈걱쭈걱 씹어 먹었다.

소나무도 눈에 들어왔다. 때는 4월초. 소나무 가지에 물이 오른 시기였다. 소나무 가지를 힘껏 아래로 당기면 가지가 꺾어진다. 대검으로 껍질을 벗겨 20-30cm의 송구를 벗겨 먹으라고 줬다. 모두들 하모니카를 불 듯 껍질을 빨면서 허기를 면하려고 했다. 중대장은 씩 웃으면서 혼잣말 하듯 물었다.

“조 중사는 송구 먹는 것을 언제 배웠지?” 박종희 중대장님은 유난히 눈이 크다. 원래 눈이 큰 사람이 겁이 많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중대장은 포위망 속에서 은근히 겁먹은 듯 보였다. 내가 소나무 가지를 꺾을 때면 움찔하면서 “조 중사 조심하라.”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다. 패장의 모습이련가.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포위망 속에서 퇴로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운해가 있는 높은 고지에 있었기 때문에 산 아래 상황은 쉽게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뿌옇다.

어느 날 날씨가 매우 청명한 날이었다. 고지에서 중대장이 쌍안경을 이용하여 약 500m 아래 외딴 집을 발견하고 부관에게 쌍안경을 보라고 넘겨주었다. 우리도 돌아가며 쌍안경에 나타난 민가를 응시하게 되었는데 중대장이 우리들을 돌아보면서 저 민가 아래 또 다른 민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 되는데 누가 내려가서 양식을 얻어 올 용사가 없느냐고 물었다. 모두들 눈만 껌뻑이며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참다가 말했다.

“제가 다녀 오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중대장님을 보위하는 사명감이 한순간 솟구치는 것이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꼭 필요한 식량을 구해 오겠습니다.” 하며 재차 간청했다. 중대장님은 비장한 어조로 지금부터 조 중사에게 권총 1정과 시계를 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나에게 오후 6시까지 무조건 그 자리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지를 내려 와 민가가 있는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산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 역시 소속 부대와 헤어진 낙오자인 것 같았다. 자기는 HID요원이라며 소속 부대를 밝혔다.

서로 적이 아님을 확인하고 긴장을 풀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어머니가 70세의 고령으로 며칠 전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있으며 약이 없어 치료조차 못해 곧 별세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머금었다. 어머니를 뵈려고 가는 길이라며 집에 들어가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해 보고 저녁 9시 정각에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다. 아군은 강릉까지 작전상 후퇴를 하였으나 조만간 이곳으로 진격할 것이라면서 그때까지 자기와 함께 행동하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소속을 물었다.

“동지는 어느 부대 소속이요?”

나는 1연대라고 대답했다.

“아! 맹호부대군요.”라고 우군의 별명까지 알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어느 정도 그를 신뢰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집으로 떠났고 나는 그곳에 머물렀다. 드디어 밤 9시 그 사람과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하필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비를 피해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도 없어 마냥 비를 맞고 기다렸다. 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밤새 돌아가시기라도 한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에 휩싸였다. 새벽 4시가 되어도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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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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