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박태양 칼럼]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버트런드 레셀. 사진: 유튜브 채널 Manufacturing Intellect 캡처

눈먼 기독교(37)

누구나 지옥에 대한 관념을 두려워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옥의 존재에 대한 반감을 그 누구보다 강하게 표출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지성 가운데 하나로 뽑히는 버트런드 러셀이다. 수학자지만 철학과 종교의 영역에서도 두각을 보였고,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했던 그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잘 알려진 반(反)기독교 인사다. 그는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성을 인정하되 그 내용 특히 예수의 인격을 문제 삼아 기독교를 공격했다. 객관적으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경고한 인물이 바로 예수인데, 이에 러셀은 날카롭게 비판을 퍼부었다.

제 생각에 그리스도의 도덕적 성격에는 하나의 중대한 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지옥을 믿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형벌을 옳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서술되어 있는 그리스도도 영원한 형벌을 확실히 믿었으며, 그의 설교를 듣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는 여러번 보복적인 분노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설교자에게는 흔히 있는 태도이기는 하나, 지존의 성품을 어딘지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에게서는 이러한 태도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1]

러셀은, 예수가 지옥을 말한 것은 ‘잔인한’ 것이고, 그것은 예수에게 ‘도덕적 결점’이 있고, 인간미가 없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지옥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것에 대한 경고조차 애써 무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세속 가치관이다. 그는 지옥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싫었다. 그는 종교란 것 자체가 공포감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성과 자유를 가진 인간은 공포를 이겨내고 경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셀에게 종교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악일 뿐만 아니라 인류에 대한 고통의 근원이었다. 그 고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죄책감이었다. 여성의 성해방 운동이라는 명목하에, 러셀은 거리낌없이 혼외정사를 했고, 동성애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성적 탐닉의 자유를 주장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이혼을 네 번이나 한 철학자였는데, 이러한 자신의 삶의 행태가 기독교에 의해서 정죄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그가 가장 증오했던 어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절대’였는데, 이는 기독교야말로 ‘절대’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흔히 기독교와 교회, 그리고 기독교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라도 예수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례로 마하트마 간디가 바로 그러했다. 그런데 유별나게도, 러셀은 예수 자체에 대해서도 별로 호감을 갖지 않았다.

나로서는 그리스도가 지혜에 있어서나 덕(德)에 있어서나 역사상에 나타난 어떤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석가나 소크라테스를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위에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중략) 우리가 기독교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 다 악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를 지켜 온 사람들이 대개 매우 악했습니다.[2]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예수를 인류 최고의 성인이나 박애주의자, 또는 선각자나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러셀에게 예수는 석가나 소크라테스에 감히 비길 수 없는 낮은 위상을 차지한다.

러셀이 그토록 높이 인정한 소크라테스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평소 사창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동성애도 즐겼으며, 첩에게서 두 아들까지 낳은 자다. (사실 이 정도면 어느 아내가 악처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러셀에게 이런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러셀 역시 그렇게 성적 방종을 일삼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의 고귀함을 판단한 기준이 참으로 세속적이지 않은가? 그는 또한 예수를 추종하는 기독교인들이 대개 매우 악했다는 편협한 주장을 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과연 누구의 영향을 받아 그런 극단적 종교관을 갖게 되었단 말인가?

공리주의자 밀, 러셀의 종교적 스승

러셀에게 가장 크게 종교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영국의 유명한 공리주의(功利主義) 철학자 겸 정치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다.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표현되는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벤담은 양적 행복을, 밀은 질적 행복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후(死後) 발간된 밀의 자서전을 러셀이 18세 때 읽고 기독교를 떠났는데, 그 가운데 특히 2장은 이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2장의 다음 내용을 보라.

아버지는 이신론(理神論)에[3]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여전히 고심하던 끝에, 만물의 기원에 관하여서는 끝까지 아무것도 알 길이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중략) 종교를 단순한 정신적 미신으로 보지 않고, 큰 도덕적 악으로 보았다. 아버지의 말로는 종교란 도덕의 최대의 적이라는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은 사악의 극치가 인류에게 알려져 있는 것 가운데서 보통 기독교의 신조라 불리는 것으로 구현되어 있다고 보았다. 지옥과 같은 것을 만들려는 존재를 생각해 보라. (중략) (아버지는) 종교 개혁은 사상의 자유로운 입장에서, 성직자의 압제에 대한 위대하고 결정적인 싸움을 벌인 것으로서, 그 점에 강한 관심을 가지게끔 가르쳐 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나라에서 아주 드문, 종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지지 않은 사람의 한 실례가 되었다.[4]

밀의 아버지는 당시 유럽에 퍼져 있던 이신론을 잠시 따랐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이신론은 이성의 한계 안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치관으로서 합리주의와 정통 보수 신앙이 타협하여 만들어 낸 변종(變種) 신관(神觀)이다. 밀의 아버지는 결국 이성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불가지론으로[5] 돌아섰는데, 그 결과는 종교에 대한 혐오감으로 나타났고, 그러한 태도는 그대로 아들 밀에게 계승되었다. 여기서의 종교는 실질적으로 기독교인데, 기독교는 도덕적으로 악한 것이라는 사상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은 밀의 아버지로부터 그 아들을 거쳐 고스란히 러셀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자신의 말대로 밀은 기독교를 버린 인물이 아닌 처음부터 갖지 않은 특별한 사례가 된다.


[1] 버트런드 러셀, 『종교는 필요한가』, 범우사, 28-29쪽

[2] 앞의 책 30-31 쪽

[3] Deism, 성서를 비관적으로 연구하고, 계시(啓示)나 기적 등을 부정하여 기독교의 신앙 내용을 이성적인 진리에 한정시킨 합리주의적인 종교관

[4] J. S. 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범우사, 48-51 쪽

[5] 不可知論, agnosticism, 우주의 본질이나 신의 존재를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는 인식론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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