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GTK 칼럼] 영지주의의 실체 (4): 그릇된 구원론으로 사람을 미혹시킨다

사진: pixabay

지난 번에는 영지주의의 세 번째 특징인 그릇된 성경해석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영지주의에 대한 마지막 글입니다.

영지주의는 그릇된 구원론으로 사람을 미혹시킵니다.

영지주의 구원 교리의 근본은 영적 깨달음입니다. 영적 깨달음이 항상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그들의 구원론입니다. 이는 매우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의 책이나 설교를 들어보면 어떤 면에서는 매우 성경적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전체 맥락을 보았을 때, 그들은 결코 일관성이 없습니다. 성경적인 말을 조금 흘려 보내다가 이내 비성경적인 교리를 의도적으로 가르칩니다. 곧, 처음에는 성경적인 듯 하지만 은근슬쩍 깨달음의 교리를 하나하나 자신의 가르침에 집어넣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한번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그리스도는 믿음이십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리스도는 믿음이신데, 이 믿음이 갑자기 내 안에 들어와 이것이 내 안에 깨달아졌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저는 구원을 얻습니다. 믿음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복음이 증거하는 인격적인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은 인격적인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이지 믿음이 깨달아져서 구원을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면서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을 미혹시킵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왕이 아닙니다.구세주가 아닙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에게 신령한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이며, 계시자일 뿐입니다. 그들의 그리스도는 성경적인 메시야가 아니며, 그저 다른 사람들을 미혹시키거나 자신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절대 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가짜 복음을 가지고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 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구원파”입니다. 그들은 거듭남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강조합니다. 심지어 회개라는 단어도 사용하고 믿음이라는 단어도 사용합니다. 그래서 기성교회보다 더 성경적인 것 같이 보입니다. 더 복음을 잘 전하고 구원에 열정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구원론은 성경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화와 단절되어 있습니다. 마르키온이 구약을 신약과 분리시켰 듯, 그들이 가르치는 구원론에는 성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단회적인 구원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들의 신학은 죄의 회개와 믿음을 가르치는 참 신학이 아니라 무지에서 해방되는 신학이며, 순종없는 깨달음의 신학입니다. 그들의 깨달음이 거룩을 애써 외면하고 반복적인 회개를 싫어하며 율법에 대한 순종을 거부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은혜를 주장하나 그들의 신은 거룩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곧, 그들의 사상은 거룩과 단절된 인본주의적 은혜 신학이며, 거짓 은혜를 종용하는 교리입니다.

구원파의 지도자 중 한 명은 특별히 에베소서 2:8과 골로새서 1:6절을 사용해서 거짓 구원론을 가르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엡2:8). 구원파 교주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를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바꿉니다. 얼핏보면, 서로 같은 말인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교주는 그리스도가 아닌 은혜를 믿음의 대상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이러한 사상을 사람들에게 전파합니다. 이들 교리 안에는 거룩하신 인격적 그리스도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경배의 대상은 애초부터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진품을 교묘하게 복제하여 만들어낸 모조품입니다. 복음 같아 보이는 가짜복음 즉 깨달음의 복음, 영지주의 복음입니다.

구원파 교사는 골로새서 1:6절을 가지고 거짓 교리를 논리적으로 더욱 확증합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 구절을 근거하여 은혜를 깨달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강조하여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는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인 문자주의적 해석일 뿐입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1장 3절에서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골로새 성도가 구원을 받고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곧 구원받은 성도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6절은 이러한 문맥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고 깨달아 죄에 대한 회개와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합당한 믿음의 진위를 삶의 열매로 증명했습니다. 곧, 골로새서의 바울의 의도와 논지는 결코 은혜를 깨달아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는 회개와 믿음 그리고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주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구원파 교사는 교묘하게 은혜를 우상화시킵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나의 죄성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깨달음은 지극히 올바른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깨달음은 선한 감정를 촉발시켜 의지적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곧, 주권자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님께 굴복하는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이해와 깨달음은 회개와 믿음과 순종하는 삶의 초석입니다.

하지만 영지주의적 깨달음, 즉 은혜를 깨닫는 것은 결코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기독교 믿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주권자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주권자입니다. 인본주의적 사상이 복음을 대체합니다. 그래서 영지주의 교사가 인용하는 성경말씀과 그리스도는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뿐입니다. 은혜를 깨닫는 신학은 사탄이 하와를 유혹했던 교묘한 거짓말의 현대 버전입니다. 그들의 내면은 탐욕과 교만과 자기 영광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참된 깨달음은 죄인을 겸손의 낮은 자리로 인도하는데 반해, 영지주의의 깨달음은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는 교만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영지주의 실체는 자신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간 내면에 작은 불꽃, 즉 신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그 신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것이야말로 무지했던 자의 구원이며, 뉴에이지 명상가가 추구하는 무념무상의 세계이며, 불교의 해탈이며, 힌두교의 목샤, 곧 완전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지주의 사상을 쫓는 자의 최후는 영원한 사망 곧 지옥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기독교는 깨달음의 수양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주인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결론

혹시,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죄를 회개하시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혹시, 깨달음의 종교를 신봉하는 분이 계십니까? 교만한 자리에서 돌이키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공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죄가 무엇인지 직시하십시오. 죄에서 회개하여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십시오.

혹시, 참된 믿음 안에 계십니까? 말씀과 기도로 주와 친밀한 교제를 누리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낮은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심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광스러운 이름에 합당한 경배를 올려 드리십시오. [복음기도신문]

강민구 | 마스트스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엘에이 근교, 그렌데일에 있는 그레이스 성경교회(gbcworship.org) 에서 한어부 사역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가족은 부인 혜진 자매와 두 딸이 있습니다.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영지주의의 실체 (3): 그릇된 성경해석을 조장한다
[GTK 칼럼] 영지주의의 실체 (2): 성경을 왜곡한다
[GTK 칼럼] 영지주의의 실체 (부제: 참된 복음은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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