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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칼럼] 사라진 마을의 마지막 아이들

사진: 원정하

지난 6월 6일, 어린이 사역을 위해 ‘부톨리가오’ 빈민가를 방문했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갔는데 도착해서는 저도, ‘산데쉬’ 형제도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멀쩡했던 마을이 완전히 박살이 나고, 흙 언덕 몇 개가 동네를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력한 철거’가 이루어진 것이었지요.

사실 뭄바이의 천막형, 슬레이트형 빈민가는 대부분 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정부에서 주기적으로 부수곤 합니다. 하지만 워낙 가난한 이들이 살 곳이 없다 보니, ‘가볍게’ 철거하곤 합니다. 이틀이면 재건할 수 있도록, 건축 자재(?)도 어느 정도 재활용이 가능할 정도로요.

천막촌이라도 너무 오래 살다 보면 불법 전기를 끌어오고, 바닥에 시멘트를 깔고 벽돌로 보강해서 ‘집’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빈민들이 도리어 철거를 방해하며, 뻔뻔하게 ‘재산권’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빈민가가 현 수준(천막+슬레이트)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몇 년에 한번 씩 허물곤 해왔습니다.

사진: 원정하

그런데 이번 ‘부톨리가오’의 철거는 이전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 자리에 큰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 제대로 된 철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주 박살을 내놓고 그 위에 차후 건축에 쓸 흙더미를 어마어마하게 쌓아두었더군요. 한 마을이 정말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지요.

이곳을 개척했던 2017년의 암담함이 기억났습니다. 그때 이곳은 철거반원을 막기 위해 길 한복판에서 자기 아이를 죽이며(!) 시위하던 사악하고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방해 속에서도 사역이 계속 전진해서 나중에는 단기 팀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사역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제일 빨리 어린이 사역이 복구된 곳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곳이 이제 집이 한 채도 남아있지 않은 황량한 흙 언덕 사이에서 저와 아이들이 방황하고 있는데, 어떻게 알고 어린이들이 열 몇 명 모였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살던 친구들이지요. 습관처럼 나고자란 땅 근처에서 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6년 전에는 어린이였는데 이제 콧수염이 거뭇거뭇한 청년들도 몇 명 왔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옛터에서, 마지막 어린이 사역이 진행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한 마을의 문을 닫는 예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진: 원정하

아이들이 “우리 동네 출신이 많이 이주한 곳들이 있다.”고 장소들을 대는데, 오늘은 굳이 이동하고 싶지 않더군요. 오늘만은 추억이 가득한 이 장소에서 사역하고 싶었습니다. 옛날처럼 맨발로 자갈밭을 뛰어 이곳에 온 아이들을 더 걷게 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아마도 다음에는 다른 장소로 가겠지요. 이곳에서는 공사가 시작되겠지요. 임시로 근처 이곳 저곳에 이주해 있는 옛 부톨리가오 주민들도 곳 뿔뿔이 흩어지겠지요.

이곳에서 진행했던 ‘기쁨의 교회(2018)’ 및 ‘광암교회(2020)’ 팀의 달란트 시장 사역, ‘J&G 팀(2018)’의 이원상 권사님의 기타 독주회, 송기태 선교사님의 텐트 전달(2017), 김수애 자매가 ‘안카’라는 아이에게 5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냈던 선물 전달(2022)… 제 블로그에서 ‘브톨리’를 검색하니 줄줄이 쏟아져 나옵니다. 너무나 많은 추억의 장소가, 이렇게 닫히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사랑하던 마을 전체가 영원히 사라진 게 벌써 여섯 번째입니다. ‘갓까리빠다’, ‘힌두 벵갈리’, ‘무슬림 벵갈리’, ‘텔루구’, ‘옛 왈리빠다’ … 다시는 갈 수 없는 빈민가들입니다. 어떤 곳은 제가 어린이 수십 명과 찬양하던 곳에 큰 건물이 들어서 있기도 합니다. 거기에 부톨리가오가 추가되었습니다.

한 할아버지 백인 선교사가, 서울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보며, 바로 이 자리의 개천가에서 함께 하던 육이오 직후의 코리안 칠드런들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어쩌면 그게 몇십 년 후의 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이 쌓여가는 선교사라니… 정신 건강에 참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인도가 지금의 한국처럼 발전하게 되었을 때, 이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어른들이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회자가 되어 이 나라를 영적으로 이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진: 원정하

그날, 저희는 잊히더라도,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게 되기를…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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