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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성경 해석 (1):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사진: Jessica Delp on Unsplash

우리는 감정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탈이념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절대 진리를 부정, 개인의 생각이나 이념이 기준이 될 수 있음)의 출현은 개인의 개성과 감정에 힘을 실어주었고, 절대 진리가 아닌 다양성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곧 내가 생각하는 것이 기준이자 진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탄은 절대 권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권위 자체가 나쁜것이라는 사상을 사람들의 생각에 점점 스며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기독교에도 깊이 침투하여 그리스도인의 성경 묵상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자연스레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로 모든 시선과 관심을 돌려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큐티방식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올바른 해석을 전제한 적용이 아닌, 해석이 없는 적용으로 시작해서 적용으로 끝나는 자의적 성경 묵상으로 점점 바뀌어 버렸다.

18~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독일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객관적 진리보다 인간 개인의 감정과 경험을 기독교 신앙의 토대에 두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파했던 자였다.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은 자유주의 신학의 옷을 입고 기독교 내에 침투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나의 감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가지게 만들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감정과 체험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이끌었다.

물론, 성경은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 감정의 영역을 건드려 그의 의지를 촉발시켜 참된 변화로 나아가게 한다. 감정은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허락하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감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미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정은 올바른 객관적 진리를 근거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죄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감정은 때로 우리 자신을 속일 때가 많다. 때때로 감정을 올바로 분별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의 감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은 주관적 감정과 체험이 중요하다고 가르쳐왔다. 곧 진리가 아닌 세상적 지식과 가치에 근거한 감정 혹은 체험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스스로 믿도록 속여왔다는 뜻이다. 이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성경해석과 묵상에 큰 해악을 끼쳐서 성도가 성화의 열매를 맺는데 방해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이제 성경 해석에 대해 논의해 보자. 성경을 해석 하는데 있어 먼저 가져야할 태도는 진리의 출처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인지하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를 통해 말씀을 기록하신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이 선행되어지지 않는다면, 성경은 내가 원하는 메시지로 전락해버린다(딤후 3:16; 벧후 1:20-21).

결국, 성경 해석은 말씀의 권위(성령님께서 조명하신 무오한 진리)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갈림길에서 방향과 열매가 결정된다. 과거 신실한 초대교부에서부터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같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말씀의 권위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가톨릭의 패역(perverseness)과 부조리(irrationality)에 맞서 싸운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 말씀의 권위의 회복이었다. 그는 권위가 주님의 말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가톨릭의 기득권층과 싸운 것이었다.

따라서 권위가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말씀을 묵상 가운데 발견된 주님의 뜻이 나의 뜻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본래 주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진리로 항상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합당한 자세는 객관적 진리를 이해하는 가운데 감정을 동반한 의지적인 반응 즉 순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해석”을 지칭하는 두가지 용어가 있는데, 하나는 “Exegesis, 자기의 선입견을 철저히 내려놓고 성경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본문의 뜻을 해석한다는 뜻 – 올바른 해석” 이고, 다른 하나는 “Eisegesis, 자기의 경험과 체험을 성경 본문에 주입시켜 성경 저자의 의도와 의미를 재해석한다는 뜻– 자기 해석, 의미 재창조” 이다. 주님의 권위를 인정했던 성경학자들이 Exegesis에 온 정신을 쏟아 성경을 해석했던 과거와는 달리, 자유주의 사상의 도래는 Eisegesis가 그 자리를 대체하도록 조장하였다. Eisegesis의 정신을 따르는 자들은 저자의 의도에 우리의 선입견을 집어넣는 것이야말로(인간의 개성 중시, 본래 의미를 왜곡시켜 의미를 재창조) 말씀을 살아있는 형태로 받아들여 소유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본래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즉 죄로 물들어 타락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렘 17:9; 롬 3:9-18). 우리의 마음은 때로 우리를 속이고 죄를 조장하여 합리화를 부추긴다. 이 사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백성에게도 일부 적용이 된다. 물론, 구원 받은 백성은 성령 하나님의 거듭남의 역사를 통해 마음이 새롭게 된 자이다(엡 1:13). 하지만, 이 사실은 우리가 위치적으로 주 앞에 거룩해졌다는 뜻이며(히 10:10, 위치적으로는 완전), 구원의 순간부터 비로소 거룩함을 추구(존재적으로는 불완전)하며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의 죄성이 완전히 없어져 우리 존재 자체가 완전하게 됐다는 뜻은 결코 아닌 것이다(요일 1:8-10).

신분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죄 없음의 신분(롬3;28; 6:6-7, 법정용어)이 된 의롭다 함을 칭함 받은 자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닮아 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요 3:3-5, 벧전 1:14-16). 따라서 성경은 믿는 우리에게 마음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라고 명령한다(롬 12:2).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나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말씀을 내 마음대로 재해석할 것인가(권위가 나에게 있는, Eisegesis)? 아니면, 항상 있어왔던 주님의 진리를 보석을 발견하듯 진주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캐내려 할 것인가(권위가 성경말씀에 있는, Exegesis)? 곧, 발견된 진리의 말씀이 때로는 나의 마음을 찔러 쪼갤지라도 그 객관적 진리에 굴복하여 기꺼이 순종하려 할 것인가?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신앙의 방향과 열매가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강민구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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