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 있습니까(2)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선고하시는 하나님 앞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존재적 절망을 고백한다. “우리는 무능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범죄하였습니다.”
우리는 무능합니다
우리는 무능하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 앞에 직면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온 세상의 지혜를 다 동원한다 한들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단 몇 분도 연장시킬 수 없다.
우리는 인생의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만약 그 누군가가 앞을 내다 볼 수 있었다면 세월호의 출항을 금지시켰을 것이다. 눈은 뜨고 있지만 소경과도 같다. 이것이 우리의 무능함의 실상이다.
소도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을 알아본다. 그리고 짐승들도 자기의 구유를 알아본다. 그러나 우리는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신 그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는 매우 더디다. 안타까운 인생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절망이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바람을 일으킬 수 없고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다른 사람은커녕 나 자신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존재다. 내 뱃속으로 난 내 자식도 변화시킬 수 없다.
세월호의 기막힌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능력 없는 어른이라 미안하다, 너무 무능해서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눈앞에 아이들을 두고 보면서도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존재, 우리는 새끼손가락 하나조차 자신의 힘으로 들 수 없는 무능한 존재다.
우리가 범죄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렘 14:20)”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범죄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실수한 것이 아니고 내 죄의 뿌리가 조상부터 내려왔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고매한 인격을 보였다가도 그 마음이 격동하면 밑바닥에 있던 모든 찌꺼기를 다 드러낸다.
죄악된 인간은 자아추구하고 완고하고 교만하고, 사람들의 시선에 매여 전전긍긍하며 하나님 두려워함 없이 오직 사람이 알까봐 두려워한다. 정욕과 씨름하다 결국 정욕과 화친하여 함께 가는 것이 죄 된 우리의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하며, 거룩과 성결을 내던졌다.
허물과 죄로 죽어 사단에게 붙어 음녀처럼 죄악과 짝하여 있는 진노의 자식이 바로 우리다. 정욕은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정욕은 절대 늙지 않는다.
나이가, 경험이, 연륜이 우리를 절대 죄에서 지켜주지 못한다. 나의 악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존재적 죄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 뿌리부터가 죄로 시작된 이 존재적 절망. 죄를 조금 짓는 자가 아닌, 아예 죄의 종이라는 것이 우리의 통절한 절망이다.
이 선고 앞에 아직도 힘이 남아 있는가? 아직도 소망이 있는가?
하나님께 범한 두 가지 악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샘의 근원이 말라버리면 그 강바닥이 드러나게 되듯이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숭배를 한 것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우리의 살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울어도 몸부림쳐도 달리 될 수 없는 존재적 절망을 인정하고, 다른 가능성을 더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버리고 오직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께 돌아가야 할 때이다. <계속>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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