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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장을 열방을 구하는 기도처소로 세워주셨어요”

열방기도센터의 부르심을 받은 김미화 집사

많은 눈과 추운 날씨로 전국이 얼어붙은 지난 12월 하순께 전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이번호 인터뷰의 주인공 김미화 집사(전주바울교회)를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주방가구공장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장을 겸한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전면에 예상치 않은 문패가 걸린 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열방기도센터’라는 문구가 붙은 이곳. 기도실이었다.<편집자>

– 공장에 이런 기도실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네요.

“몇 달 전 주님이 사업장의 터를 옮기도록 인도하셨어요. 그리고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게 하시며 하신 말씀이 있어요. “미화야, 네가 바로 열방을 구하는 열방기도센터다!” 그 마음을 받게 하셔서 믿음으로 순종했어요. 그래서 이곳에 기도실을 만들게 됐어요.”

– 그런 믿음의 결단까지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주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간 3살 무렵이었어요. 어린 시절에 저는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녀봤지만, 별로 차도가 없었어요. 어머니께서 교회에 가면 병이 나을 거라는 소리를 들으시고 저를 업고 교회를 다니게 되셨지요.”

건강 때문에 교회 출석하게 돼

– 주님이 먼저 어머니께 마음의 간절함을 허락하시고 교회로 이끄셨네요.

“어머니의 삶이 쉽지 않았죠. 첫번째 결혼에서 아들 둘만 남기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재혼을 하셨어요. 홀로살기 힘드셨겠지요. 그리고 제가 태어났어요. 오빠들은 갑작스럽게 태어난 여동생인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지는 않았어요. 무척 어려운 시간이었어요. 더욱이 신앙이 없는 식구들이 제가 교회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죠. 물론 습관적으로 출석하긴 했지만 교회는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어요.”

– 만만치 않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셨을 것 같군요.

“딸자식을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던 가정환경이어서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환경이 위기였지만 제게는 기회이기도 했어요. 직접 학비를 벌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타지로 가게 된 것이죠. 고향을 떠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게 됐어요. 조금도 힘들지 않았어요. 3년 동안 마음껏 교회를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아니에요. 교회는 저에게 하나의 도피처일 뿐이었어요.”

– 그 후에는 어떤 삶을 사셨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교회를 꾸준히 다니기는 했지만, 여전히 예배시간에만 참석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어요. 오빠들과 있었던 관계의 어려움과 아버지의 무관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에 결혼을 또 다른 도피처로 삼은 것이죠. 그렇게 결혼을 하면서 전주로 내려오게 됐어요.

그때에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교회를 떠나지는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은혜예요. 그런데 첫아이를 낳고 나서 교회와 멀어지게 됐어요. 그때부터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과 가까워지면서 환난의 시간을 겪게 됐어요.”

– 어떤 시간이었는지요?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시댁 어르신들과 함께 살게 됐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점점 승승장구하는 듯 했어요. 더불어 자아를 추구하며 나만 생각하며, 아이들을 돈으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비싼 옷, 비싼 과외 등,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남편도 술과 담배와 방탕함으로 살고, 저 또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유흥에 빠져 6년이라는 시간을 나 자신까지 속이며 가면무도회 하듯 살았어요.

그럼에도 돈을 번다는 이유로 내가 왕 같은 삶을 추구했어요. 남편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구타하고, 모든 것을 내가 조종하는 악독한 아내이자 엄마였어요. 그런 환경에서 여러 번 이혼 위기와 자살 시도로 저의 영혼은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가 버렸죠.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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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김정덕 집사와 자녀 민우, 사랑, 가영(왼쪽부터)과 함께

– 그런데 어떻게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시게 되었나요?

“바닥까지 치닫는 시간 끝에 주님이 직장을 옮기게 해 주셨어요. 그런데 그 회사는 아침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죠. 매일 눈물 흘리며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정말 심령이 가난했어요. 그렇게 주님이 다시 교회로 불러주셨고,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게 하셨어요. 그때 셋째 아이를 임신하게 됐어요.

가정은 완전히 박살난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임을 믿게 됐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렸어요. 그때부터 남편과 함께 교회에 다시 나오게 되었죠. 그러나 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 어떤 절망이었나요?

“겉으로는 믿음 좋은 가정으로 세워져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제 안에서 죄의 문제가 끊어지지 않았어요. 바로 불륜관계, 음란의 문제였죠. 이 문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것을 알기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저로서는 어찌할 수 없더군요. 마침 한 권사님이 복음학교란 곳을 추천해 주셨고,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석했어요.

하지만 금방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어요.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그동안 저를 얽어맸던 죄의 열매들을 떨쳐버리기 위한 노력만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시 금식기도원에 갔어요. 우연히 거미줄로 똘똘 엉켜있는 나뭇가지를 보았는데, 아무리 호스로 물을 뿌려 씻어보려 해도 깨끗하게 씻기지 않았어요.

문득 내 안의 죄가 거미줄처럼 엉키고 엉켜 도저히 뗄 수 없이 뭉쳐져 있음을 깨닫게 됐어요. 그렇게 기도 가운데 비로소 죄와 내가 완전히 하나인, 존재적 죄인 된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 이 존재의 문제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만 씻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거죠.”

– 존재적 죄인 됨을 깨닫게 된 이후,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나요?

“그동안 신앙생활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실 그게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복음을 알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선교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서 한 선교단체에서 주관하는 6개월 과정의 복음선교관학교에 등록했어요. 훈련을 받으면서 말씀이 저에게 실제 되어가고, 말씀이 저를 이끌어 가는 은혜를 누리게 됐어요.

또한 훈련받는 동안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존재인지, 그런 내가 어떤 은혜를 입은 자인지를 알게 됐어요. 선교 아웃리치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정말 티끌과 같더군요. 정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티끌과도 같은 저를 주님이 복음 앞에 부르셨음을 알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었어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적 존재임을 깨달아

–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셨군요.

“하지만 주님은 믿음이 견고해지도록 또 한 번의 과정을 허락하셨어요.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선교회 간사로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셨어요. 그당시 상대적으로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장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하셨죠. 아무리 큰돈을 벌어도 채울 수 없었던 영혼의 만족을 주셨어요. 그런데 그 간사의 자리에서 주님은 저를 혹독하게 다뤄주셨어요.”

– 어떤 훈련을 겪게 하셨나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외롭게 혼자 싸워야 하는 시간이었어요.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씀밖에 없었어요. 매일 불쑥불쑥 일어나는 자아와의 싸움과 내 힘으로는 어느 누구도 섬길 수 없는 사랑 없는 자임을 확인해야 했던 3년이었어요. 그리고 사역의 열매가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의 시간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도 오직 주님만 남는 시간들이었죠. 그 시간 동안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함을 알게 해 주셨어요. 수많은 비방과 모욕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복음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게 하셨어요. 그렇게 주님만 남게 하시고는 간사의 자리도 주님이 내려놓게 하시더군요.”

– 그 시간 동안 믿음의 고비와 진보를 경험하기도 했겠군요.

“그렇죠. 복음선교관학교에서 훈련받을 때였어요. 시아버지께서 폐암으로 투병중이셨어요. 해외 아웃리치를 나갈 시기가 다가오면서 아버님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됐어요. 아웃리치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받았지만 계속 상황을 보게 되더군요. 기도하면서 시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받았어요. 어머님은 가라고 허락해 주셨는데 아버님은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주님이 믿음을 주시더군요. 생명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이 믿어지게 하시고, 아버님께 제가 아웃리치에서 돌아올 때까지 주님이 아버님의 생명을 붙들어 주실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주님이 아버님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마침내 허락해 주셨어요.

그렇게 떠난 아웃리치에서도 계속 걱정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주님이 그 모든 걱정을 내려놓게 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셨어요. 온 가족들 안에서도 주님이 일하셨고, 그때부터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는지 알게 하셨어요.”

– 주님이 기도의 능력을 경험케 해 주셨네요.

“네. 예전에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머뭇거렸는데, 이제는 약속의 말씀을 구하는 자리로 이끌어주시고 계세요. 아들의 핏 값으로 산 생명이기에 이제는 더 뚜렷하게 구해야할 것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어요.

교회에서 열방을 위한 화요중보기도를 2년째 인도하고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주님은 기도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순종을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어요. 끝까지 반역하는 저를 사랑하셔서 기도의 자리에 앉게 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중보의 자리에 저를 드리게 되었죠.”

다음세대가 이끌어가는 열방기도센터 소망

– 사무실 한 켠에 위치한 기도실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비참하고 저주받아 마땅한 저희 부부를 복음으로 회복하시고는, 우리 부부에게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주셨어요. 그동안의 터를 허무시고 새로운 사업장으로 이끄시면서 새 일을 행하실 거라고 약속해 주셨구요. 5년 전 주님께 24시간 기도를 올려드리는 열방기도센터를 소망하며 구했던 것을 기억나게 해 주시며, 주님은 제가 바로 열방을 구하는 센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이 사업장을 열방기도센터로 일으키라고 하셨죠. 지금은 비록 저희 부부만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4시간 주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열방기도센터로 세우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기도제목을 나눠주시겠어요?

“그동안 내 자녀만 보다가 열방의 다음세대를 보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둘째 아들이 청소년복음캠프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사라진 적이 있었어요. 당시 섬김이로 참여했던 저에게 주님이 아들을 기다리는 저의 마음보다 더욱, 제 아들과 열방의 다음세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 열방의 다음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주셨어요. 이곳이 다음세대가 이끌어가는 열방기도센터가 되는 것이 소망이에요. 다음세대와 우리세대가 함께 그날의 영광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GNPNEWS]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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