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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사회정의(3): 복음을 지키기 위한 기나긴 고투

사진: Yvette de Wit on Unsplash

지난 블로그에서는 설교와 글을 쓰게 만든 지난 십 수년간 복음주의 운동 안에서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길고 지루한 목록은 아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이 간단하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불필요하게 타협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다.

예를 들어 디모데 전서 2:12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급 복음주의자들은 여자 장로와 여자 목사의 자격 문제에 대해서 수년간 논쟁을 거듭해 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다른 문제에서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기보다 세상 문화에 굴복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우려고 노력해 왔다. 또 다른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이혼과 재혼을 없애버리거나 아예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미국의 성혁명을 계기로 도덕적인 합리화를 세속 문화로부터 빌려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혼외 성관계를 가볍게 취급하는 복음주의자들의 태도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들어 더욱더 위협적인 것은 몇몇 지도자급에 속한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들이 소리 높여 성별 구분, 성적 성향, 성전환, 동성 결혼에 관해 새로운 견해를 고려 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것들은 여태껏 성도들이 교회 내에서 논쟁이나 재정립의 대상이 되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문제들이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사회정의”라는 깃발 아래 성 소수자 문제를 다시 고려해서 역사적으로 취해왔던 교회의 입장을 버리려는 움직임이 급증하고 있다.

수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공개적으로 이러한 타협을 수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이것은 세상을 쫓아가려고 노력하는 교회가 완전하게 걸려드는 논리적인 다음 단계다. 교회가 문화 속으로 파고 들어가려면 맨 처음 방식과 체계에서 세속의 팝 문화나 학계의 유행과 연결될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수십 년 동안 인기 있는 개념이 되어 왔다. 교회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역사적으로 소중한 예배의 의례를 포기하고 록 콘서트 형식으로 바꾸고 나머지 모두도 연애 프로그램의 흥행을 흉내 내어 전통적인 예배를 이루던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보다 더 폭넓은 문화에 받아들여지기를 갈망하며 교회는 경솔하게도 세상이 선호하는 방식과 덧없는 유행을 흉내 내었다.

나의 저서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생명의 말씀사)에서 나는 세상이 그저 그들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교회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본질적인 중요한 영향을 끼쳐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타협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복음주의의 끝없이 줄잇는 타협이 그 증거다. 많은 성도들은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서 먼저 세상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미 복음주의 스타일을 코치하는 사람들은 경솔하게 세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세상의 방법을 완전하게 받아들인 교회들은 세상이 주장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타협은 실용주의다. 이 타협은 실용적인 수단으로 세상의 지지와 존경을 얻으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복음주의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죄에 병적으로 중독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거의 모두 복음을 떠난 길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것이야말로 지난번 메시지에서 말한 내가 염려하는 실용주의의 좌표이다. 오늘날 이러한 실용주의가 교회 문화에 깊게 침투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하다.

건전한 복음 교리로부터의 벗어난 모든 탈선은 모든 세상 문화에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오도되어 왔고 추진되어 왔다. 내가 꼽은 몇 가지 오류(구도자의 욕구에 따르는 것과 은사주의 운동의 폭발적인 성장)는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올바른 교리나 전략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복음주의자들에 의해서 추진되어 왔다.

다른 오류들(심리 치료, 기독교 원리에서 탈선한 세계 교회주의의 수용, 그리고 근간에 사용되는 미사여구, “사회정의” 또한 마찬가지다.)은 촌스러우며 현시대의 “지혜”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다.

“사회정의“(세상이 자기들의 행위를 미화해서 사용하는 말)는 세련되게 여겨지는 정치적 사상을 수반한다. 즉 정체성, 정치, 비판적 인종 이론, 부의 재분배, 급진적 또는 사회주의적 정치를 말한다. 그러한 사상은 현재 사회적 통념으로 간주되어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세상의 학교에서 맨 처음 알려졌고 선전되었다. 이러한 문화를 추구하는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집단의 후발주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압도적인 동기는 실용주의임을 나는 확신한다.

목회의 성공은 숫자나 여론으로 측정할 수 없다. “명성”, “유행”, “엄청난 부”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 4:2)”이다. 만일 출석자 수가 그 사람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어 그를 반기는 군중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책략을 성공으로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책략들을 끝없이 정당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여러 해 동안 복음주의의 주류들에게 독약을 직접 주입해 왔다.

선교와 교회 성장의 거장들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불신자들을 관찰해서 무엇이 그들에게 교회에 흥미를 가지도록 하는 것인지 알아서 그것을 제공하라고 말하고, 여론 조사를 통해서 어떻게 설교하고 무엇을 가르치며 또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혹은 해서는 안 되는지를 알아 그것을 교회의 지침으로 삼으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믿지 않는 세상이 교회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떻게 놀라운 일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수십 년의 복음적 실용주의 속에서 자라나서 이제 교회의 지도자가 된 사람들이 세상이 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흉내를 내는 것이야말로 크리스천의 본질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일까?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실용주의란 진실성이나 어떤 전략, 견해 또는 실증되지 않은 가설의 가치는 현실적인 성과에 의해 결정된다는 개념이다. 만일 어떠한 책략이 원하는 효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좋은 것으로 간주한다. 교회 성장의 영역과 복음 사역에서 실용주의는 지도이념으로서 심각한 결함이 있다. 아주 분명한 두 가지 이유에서 위험할 정도로 해롭다.

첫째, 실용주의로는 무엇이 “원하던 효과”인지 정의할 수 없다. 만약 목표는 잘못되었지만 전략이 성공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전략이다. 사실, 원하던 결과가 해를 끼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사용된 전략도 당연히 해롭다.

둘째로 더 중요한 것은, 그냥 그대로의 실용주의는 비성경적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금석이다. [복음기도신문]

출처: https://www.gty.org/library/blog/B180822

존 맥아더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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