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요? 흔히 우리는 죄를 ‘열매’로만 봅니다. 나무로 비유해 보면 그 나무에 죄의 열매가 많이 맺혔으면 아주 흉악하고 나쁜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간음, 음란, 불순종, 도둑질, 살인, 폭력 등 죄를 무수히 지은 사람들은 죄의 열매를 풍성히 맺은 흉악한 죄인이라고 합니다. 모태신앙들이 여기서 혼돈에 빠집니다. 죄가 단지 열매뿐이라면 모태신앙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지을 기회가 훨씬 제한적이기 때문에 죄의 열매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그리 큰 죄인임을 절감할 이유가 없고, 십자가가 절박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교회에서 봉사도 많이 하고, 몇 대째 믿는 집안이라고 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죄를 ‘열매’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죄를 이해합니다.
죄가 단지 열매뿐이면 회개해서 죄를 따버리면 될까요? 열매를 다 땄다고 해도, 그 다음에 죄의 열매가 또 안 맺힐까요? 그 다음에는 더 충만하게 맺힙니다. 그러면 또 따고 버리고, 또 따고 버립니다. 그러나 죄는 이렇게 눈가림만 한다고 해결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5:28). 간음이라는 행위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음욕이 있습니다. 두 가지의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굳이 따진다면 음욕이 없는데 간음이라는 행위의 열매가 있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주님은 이 음욕 자체를 간음이라는 열매와 분리해서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열매가 잠깐 맺히거나 조금 맺히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는 상황과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충분히 열매 맺을 가능성을 가진 이 ‘나무 자체’인 것입니다. 그 열매를 가능하게 한 ‘존재로서의 죄’, 바로 ‘죄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진리를 모른 채 죄의 열매만 안 맺으면 깨끗하고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적 죄인’인 나의 생명 자체를 해결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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