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고통에 관한 내 모든 생각을 바꾼 한 문장

ⓒ 안호성

“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악마와 손을 잡지 않고도 혐오스러운 일을 허용하는지 알고 싶었다 ”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싫어하는 일까지도 허락하신다.

그날을 나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병원에서 퇴원한 나는 막 십 대 티를 벗은 때였고, 친구 스티브 에스테스(Steve Estes)와 함께 성경과 탄산음료를 앞에 놓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스티브와 나는 내가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후 하나님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중에 알게 된 사이였다. 무엇보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알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것을 스티브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는 나와 거래를 했다. 나는 탄산음료와 어머니의 특기인 BLT 샌드위치를 주는 조건으로 그는 내게 최선을 다해 성경에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주는 것으로 말이다. 비록 그날 나눴던 말을 문장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지만, 그로부터 무려 오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대화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날의 대화는 내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나는 항상 하나님은 선한 분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날 봐, 난 휠체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지 마비 환자야. 지금 느끼는 감정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적인 것 같다니까. 하나님은 왜 사고를 막지 않으신 거지?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니야? 아니, 하나님이 그 현장에 계시기는 했나? 아니야, 그날 거기 있었던 건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일 거야.”

그날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후, 스티브는 그날을 기억하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조니, 그날 밤 너와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정말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어. 사실 나는 휠체어에 의지하는 내 또래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거든. 네가 던지는 질문을 들을 때 사실 교회에서 배운 성경 구절 열 개 정도가 생각났지. 그러나 그날 맞은편에 앉은 너를 보면서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그 구절이 말하는 진리를 삶속에서 확인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 사실 나한테는 수학에서 D학점 받는 것 보다 나쁜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널 바라보며 계속 이렇게 생각했어. 성경이 지금 온몸이 마비된 이 소녀의 삶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면, 성경은 사실 아무 소용이 없는 거다. 그래서 조니, 난 사실 그날 목소리를 가다듬었고, 말씀을 가지고 그냥 모험을 한 거야.”

하나님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허락하신다

그날 밤, 스티브는 식탁에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조니, 너를 그 휠체어에 앉게 하신 건 하나님이야. 그리고 나는 그 이유는 몰라. 하지만 하나님과 싸우는 대신 그분을 믿고 의지한다면, 너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게 비록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이 아니라고 해도 천국에서라도 알게 될 거야. 하나님은 네 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도록 허락했어. 그리고 아마 내가 오늘 여기 있는 건 그 이유에 관해 몇 가지 이유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야.”

잠시 말을 멈췄던 스티브는 곧이어 그날 이후 내 인생을 바꾼 한 문장을 말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싫어하는 일까지도 허락하신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진부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문장은 마치 신비로운 수수께끼처럼 나를 유혹했다. 거기에는 내 속에서 매혹을 불러일으킬 어떤 깊고 신비한 진실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그 얘기를 좀 더 듣고 싶어.” 그리고 이내 나는 그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 여름 내내 나는 스티브와 함께 성경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구절을 탐구했다.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악마와 손을 잡지 않고도 혐오스러운 일을 허용하는지 알고 싶었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은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아니, 내 목을 부러뜨려서 이뤄야 할 만큼 가치있는 게 하나님에게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고통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그해 여름 스티브가 나에게 준 조언을 앵무새처럼 옮겨보면 이렇다. 그는 예레미아애가 3장 32-33절로 시작했다.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한 구절에 걸쳐 성경은 하나님께서 “근심하게 하시나”,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단언한다. 그 구절을 근거로 스티브는 하나님이 내게 사고를 허용한 건 맞지만, 그 사고 때문에 하나님이 재미있어 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내게 일어난 끔찍한 사고가 하나님에게 아무런 기쁨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게 참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내 사고가 누구의 책임이냐는 질문은 어떤가? 비극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게 하나님이건 또는 악마이건 간에, 예레미야애가 3장은 그 비극을 하나님이 가져온 것이라는 점에 관해서 분명하게 하고 있다. 모든 비극 뒤에는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은 사탄이 운전하는 버스에 탄 밀항자이시며, 악마의 분노 주위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세우고 사탄의 사악함에서조차 궁극적인 선을 가져오신다.

모든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이 주관자야, 모든 책임은 하나님이 지시는 거야, 조니.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너를 실제로 뗏목에서 밀어내 물에 빠뜨렸다는 뜻은 아니야.” 스티브가 말했다. “민수기 35장 11절은 ‘사고’로 죽은 사람을 묘사하면서 그 일을 ‘의도하지 않은’이라고 말해. 그러나 같은 사건에 대해 성경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거든.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출 21:13). 그러니까 사고지만, 하나님이 낸 사고라는 거지. 하나님은 명령을 내려서 고난이 일어나도록 허용은 하지만, 결코 그 고난을 직접 ‘행하지는’ 않으셔.”

이것은 너무 깊은 차원의 이야기다. 하나님이 명령은 하시는데, 그렇다고 반드시 직접 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내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고 말했을 때 스티브는 미소를 지었다. “조니,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한 유한한 사람들의 모임에 온 것을 환영해.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기꺼이 승인하지 않는 모든 일까지도 허락하신다는 거야. 하나님은 자신이 결코 하지 않을 일을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을 허용하셔. 하나님은 욥의 낙타를 훔치지도 않았고, 갈대아인을 유혹해서 욥의 재산을 빼앗지도 않았어. 그러나 그 모든 비극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단 일 초도 욥의 인생에서 손을 뗀 적이 없으시지.”

이어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조니, 모든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거야. 비록 사람들이 하나님이 네 사고와 아무 상관이 없고, 모든 비극은 다 얕은 물에 부주의하게 다이빙을 한 네 책임이라고 말해도 말이야.”

오케이, 이제 알겠어. 하나님은 당신이 싫어하는 일까지도 허락하신다. 그러나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가 사랑하는 역사를 성취하기 위해 끔찍한 일을 허용하는 부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아직도 내가 겪는 이 고통과 사지 마비라는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할 정도로 하나님이 이루고 싶은 그 선하고 사랑스러운 역사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비용 대 수익 문제와 관련해서, 하나님은 가장 먼저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렸다. 그는 독생자의 죽음을 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겪은 고통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계획은 하나님이 했지만, 그 모든 일을 선동한 것은 사탄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초래한 반역과 고문 그리고 죽음과 살인을 생각해보라.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가룟 유다는 물론이고 예수를 나무에 못 박은 로마인을 포함한 온 무리도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행 4:28)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오케이, 너희들이 그렇게까지 죄를 짓고 싶다는 거지?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너희가 죄책감을 느끼면서, 그럼에도 내 뜻을 이루는 방식으로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하겠다.” 요컨대, 하나님은 자신의 놀라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의 사악한 계략을 조종하셨다. 그의 백성에게 선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하나님 자신에게는 최대의 영광을 가져다줄 신성한 계획을 이루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끔찍한 대가까지 치러야 했던 영광스러운 계획은 다름 아니라 죄인들로 가득한 이 세상을 구원하는 거야.” 스티브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나는 곧 고통과 죄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악으로 악을 물리치기

“조니, 하나님은 네 고통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지만, 네 고통은 단지 더 심각한 문제의 징후일 뿐이야. 하나님에게는 네가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 바로 네가 죄를 미워하고 그럼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네가 천로역정의 길을 걷는 동안 고통을 통해 죄의 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느끼도록 하시고 있어.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너는 네가 얼마나 끔찍한 죄로부터 구원받았는지를 계속해서 상기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래서 사실상 악의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한 너의 고통과 마비는 도리어 무기가 되어서 다른 형태의 악을 물리칠 수 있어. 바로 쓴뿌리, 분노, 불안, 두려움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이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기 위함이야.”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갈보리 언덕에서 미워하셨던 십자가 죽음을 허락하심으로 그가 사랑하시는 것, 곧 나의 구원과 그 구원을 통한 그의 영광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사실상 자기 목을 베었다. 세상 최악의 살인이 세상의 유일한 구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그들을 위한 고통

“조니, 이건 정말로 네 인생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 스티브가 말했다.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싫어하는 일, 지금 경우에는 바로 네 척추에 생긴 사고지, 바로 그 일을 허락하셔.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니라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이 말씀을 이루시는 거야.”

“하지만 그 일이 너에게서 끝나는 건 아니야.” 스티브가 말을 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셔야 했던 것처럼, 너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난 받는 법을 배워야 해. 이건 비밀이 아니야. 하나님은 네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올 수 있도록, 네 고통을 하나의 불쏘시개로 쓰기를 원하셔.”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요셉과 그의 사악한 형제들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요셉은 창세기 50장 20절에서 형제들에게 노골적으로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렇다. 하나님은 내게 증오스럽고 끔찍한 전신 마비를 허락하셨지만 그의 사랑은 단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통해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을 경험하기를 원하신다! 할렐루야!

오십 년이 지나고

스티브와 대화를 나눈 그해 여름 이후 벌써 오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현재 펜실베니아주 브릭레인 커뮤니티 교회(Brick Lane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나는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단체 ‘조니와 친구들(Joni and Friends)’을 통해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요셉”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나의 기쁨에 의아해한다. 특히 요즘 들어 나는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방식으로 그의 기쁨을 내게 나눠주고 있으며, 그 조건은 내게 어느 정도는 그의 소중한 아들, 예수처럼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다 괜찮다.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만 굳게 붙들면 그가 주시는 기쁨이 모든 고통보다도 더 낫다. 그렇기에 내가 증오하는 전신 마비로 인해서 나는 지금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쁨도 내가 천국에서 누릴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하나님은 끔찍한 일을 허용하시지만, 도로시 세이어스(Dorothy Sayers)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나 웅장하고 영광스러운 역사가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지구 행성에서 경험한 모든 고통은 그날의 영광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날 이 땅에서 흘리는 모든 눈물에 관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보상하실 것이며(시 56:8), 모든 상처에 대해서도 실로 풍성하게 보상하실 것이다(롬 8:18).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고통 속에 숨은 신비스런 당신의 모든 뜻을 그날 환히 밝혀 주실 것이다.

끔찍한 일이 생겼는가?

나는 당신에게도 이 문장을 전하고 싶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싫어하는 일까지도 허락하신다.” 만약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선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도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자, 나도 스티브처럼 말씀에 의지해서 모험을 하겠다.

하나님이 명령하셨기에 당신에게 고난이 닥쳤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하나님과 싸우는 대신 그를 신뢰한다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분은 당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셨고, 아마도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이 자신의 삶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며, 구주께 최대의 영광을 돌리고, 그렇게 함으로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하늘의 재산을 통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 아름다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돕도록 하기 위해서다.

“ 하나님은 그날 이 땅에서 흘리는 모든 눈물에 관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보상하실 것이며(시 56:8), 모든 상처에 대해서도 실로 풍성하게 보상하실 것이다(롬 8:18) ”

Joni Eareckson Tada | 조니 이렉슨 타다는 캘리포니아 아구라 힐스에 위치한 Joni and Friends의 설립자 및 CEO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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