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명으로 시작된 한국 속 난민… NGO 피난처, 난민 공동체 운영
우리나라에서 난민문제는 오랫동안 남의 일이었다. 그러다 2년 전 제주도에 예멘 난민 신청자가 몰리면서 난민입국의 찬반양론과 함께 난민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됐다.
우리나라가 난민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뒤 1993년 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국내에서 난민법이 발효된 19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았고, 첫 난민 인정은 2001년에 1명을 시작으로 매년 조금씩 늘어나다가 2008년 36명, 2012년 60명, 2015년 105명 등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올해 국내에 머물 수 있는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가 처음으로 3000명을 넘어섰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난민 집계를 시작한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난민 인정과 인도적 체류허가 건수가 모두 3373건이었다. 누적 난민신청 건수는 6만 4357건이었다. 그러나 난민신청 건수와 체류허가 건수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체류허가를 받지 못한 난민이 국내에 누적 6만 명 이상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6만 명의 난민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내전과 정치, 경제 난민으로 고향을 떠나 어렵게 도착한 이곳에서도 그들을 돌봐주고 받아줄 곳이 넉넉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난민을 위해 공동체 시설을 운영하며 섬기는 비영리 NGO 사단법인 피난처가 있다. 1999년에 시작된 피난처는 북한 난민, 쿠르드 난민을 비롯해 국내에 입국한 난민들이 한국에서의 난민신청 문제와 생활, 의료 지원 등 다양한 영역으로 난민들을 섬기고 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난민들을 섬겨주는 것이 필요하다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난민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게토화(폐쇄적인 공동체)가 되지 않고 크리스천 공동체로 흡수되어 복음을 만나게 하는 모태역할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이에 교회들이 부분적으로 헌금도 하고 가끔 봉사활동도 하지만 공동체로 가족이 되어서 섬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난민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환영을 못 받고 있다.”면서 “그러나 난민들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가장 환영 받을 수 있는 곳이 농촌이다. 농촌에 있는 교회 커뮤니티 안에 난민들이 들어가서 농촌에서 정착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난민 사역에 교회와 함께 하는 연합의 일환으로 현재 충신감리교회(배철희 목사) 선교팀이 매주 수요일마다 NGO 피난처를 방문해 난민들과 사역자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섬기고 있다. 또한 난민들과 교제하며 그들과 함께 기도 모임을 갖고 있다. 이호택 대표는 피난처 센터에서 식사를 섬겨주는 팀은 처음이라며 이 교회 선교팀에게 매우 감사해했다. 선교팀이 식사를 섬기게 된 과정 또한 놀라웠다. 이 대표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난민들을 섬겨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미 선교팀은 기도를 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왔다. 억지로 더 부탁할 게 없었다.”고 말했다. 식사 섬김을 마친 선교팀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복음기도신문]
<저작권자 ⓒ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문의:
[관련기사]
“이웃으로 다가온 땅끝… 우리도 한때 난민이었음을 기억하자”
“난민 사역, 닫혀있던 무슬림 선교의 새 길을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