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호 / 인터뷰
복음을 만나고 삶을 정리해 성경을 가르치는 한 교육기관을 섬기는 자로 세워주셨다. 그리고 학교에서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을 준비하는 그 모든 과정 가운데, 결국 주님은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를 이끄셨다. 유명해지고 싶고 세상 가운데서 드러나고 싶었던 사람을, 가장 평범하고 가장 연약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이 만드셨다. 오로지 살아계시는 주님의 강함과 능력만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신 그 은혜를 나누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침묵하시는 주님
2011년 3월, 총체적인 복음을 만난 후, 주님이 말씀하셔서 직업과 삶의 모든 걸 정리하면서 “그럼 어디로 보내실까? 어디로 나를 드려야 하나?” 물었다.
주님께 나를 드리는 것은 맞는데, ‘어디로’가 포인트였다. 은연중에 내가 했던 무대에 서는 자리로 보내실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주님은 잠잠하셨다. “주님이 나를 특별하게 사명자로 쓰지 않으시는구나.” 절망이었다. “어떤 선교사요? 어디로요?” 주님은 결국은 내가 뭔가 찾으려고 했던 나를 보게 하셨다. 내 원함의 외침에 주님께서 침묵하시는 그 시간들 가운데 절망을 찍게 하셨고, 절망이 찍혀지니까 주님은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를 불러주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위인’이 되고 싶었다. 그랬기에 특별한 사명자가 되지 못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절망이었다. 복음 앞에서 가장 부딪쳤던 것도 ‘무명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사실 성경에는 몇몇 빼고는 모두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마음이 어려웠다. 그래도 유명해지고 싶은데! 내가 하고 싶은 사역, 그곳에서 이름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나는 유명한 개그맨이 될 줄 알았다. 당시에는 ‘하나님은 내가 좋아하는 일로 영광받기를 원하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말 큰 꿈을 꾸었다. 연예인 선교단체도 만들고, 연예인들 전도도 하고, 집회도 하고. 내 나름대로 선한 상상들을 하며, 대한민국에서 주님을 전하는 자로 서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로에서 개그공연을 하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출연하던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복음학교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이 나를 만나주셨다.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리를 옮긴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정확한 십자가와의 연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라면 죽겠는데, 내가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뭔지를 몰랐다. 믿음으로 어떻게 연합하는가? 죽었다고 하는데, 죽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이것을 모른다는 것을 감추고 지냈다. 그럴수록 내가 십자가와 연합되지 못한 것에 대해 목마름과 갈망은 점차 깊어져 갔다.
1%의 여지를 제하다
그러던 중 한 신앙훈련과정을 통해 갔던 아웃리치 현장에서 하나님이 내가 개그맨으로 무대에 섰던 그 모든 시간에 한 번도 영광 받으셨던 적이 없다고 알려주셨다. 지금 미디어의 실체는 사탄이 장악하고 있으며, 실제로 내가 돌아보아도 대학로에서 주님의 영광을 짓밟은 자였음을 보게 해주셨다. 그 시기에 나는 복음에 목말라하고 예수쟁이라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술도 먹고 죄에 쉽게 넘어졌던 모순된 모습으로 살았다. 무대는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1% 영역이었다.
주님은 그것을 끊어내고 선교사로 나를 드릴 것들을 결단하게 하신 은혜의 시간을 열방의 땅끝에서 허락해주셨다. 그렇지만 그 뒤의 과정들을 보게 되면, 1%까지는 끊어내도 여전히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내가 주체가 되고자 하는 옛 자아는 계속 남아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에 고백을 받아내셨다. 위인이 되고 싶었던 나에게 주님은 ‘나는 네가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길 원해.’라며,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나에게 그 고백을 하게 하셨다.
신학교로 부르심을 받다
주님께서 불러주신 곳은 복음기도신학교였다.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이곳에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 이전에 대학을 다니며 조금씩 들었던 신학과 수업에서 쌓인 나의 상식과 나의 경험이 이곳에서는 정말 독버섯처럼 작용했다. 특히 개척 단계의 신학교에 합류했기에, 회의를 통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면서 내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학교를 세우시는 그 은혜를 같이 보게 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그 모든 시간 안에 ‘내가 다니던 학교는 안 그랬다. 신학대학은 그렇지 않다.’며 나의 가치와 생각 때문에 많이 부딪혔다. 정말 ‘싸움닭’ 같았다. 건의한 내용들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수업일수와 시수가 적고, 공부하는 과목도 부족한 것 같았다. 이곳에서 배워 실제로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데 ‘이거면 충분한가?’라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수업의 질적인 측면도 이것보다 더 깊이 다뤄야 할 것 같았다. 세상의 기준들로 판단하고 적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건 아니잖아요!” 그것은 결국 리더십을 향한 내 마음이었다.
하루는 주님께 기도하는 중에 이런 마음이 들게 해주셨다. 주님이면 충분하다고. 주님이 원하는 학교라고. 내가 세상에서 봤던 학교와 경험했던 신학이 아니라고. “주님이 원하시는 게 이만큼이라면 충분하냐?” 아멘이었다. 나는 그동안 세상에서 봤던 현실적이고 체계적이고 좋은 것 같은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주님의 허락하심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거라면, 너에게도 다냐고 물어보셨을 때, 그거면 진짜 아멘이었다. 그렇게 주님께 모든 기준과 주권을 올려드린 후, 2년 동안 그런 싸움은 없었다. 주님께서 맞다고 하시는 것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세워주셨다.
공동체에서 드러난 자아
주님은 더욱 나를 깨버리셨다. 신학교에서는 ‘하루에 4가지 순종’을 한다. 묵상-기도-일기-접촉(전도). 이 시간을 통해 신앙생활조차 똘똘 뭉쳐진 내 자아로 사는 나를 드러내 주셨다.
나는 고2 때부터 일기를 썼다. 후대 사람들을 위해서 일기를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일기’의 식양이었다. 내가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식양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손 글씨로 쓰고 싶은데 여기서는 인터넷에 올려야 하는 것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묵상에서도 동일한 어려움이 있었다. 주님의 은혜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묵상을 배웠고 실제로 그렇게 묵상을 해왔다. 묵상했던 내 스타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지만, ‘그때는 난 이렇게 했는데.’라는 나의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나의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았을 내 모든 것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꺾어주셨다.
결혼할 때도, 어려웠던 것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정말 내가 죽기 싫었다. 누군가가 나의 머리가 되는 게 싫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제는 못하는구나. 형제가 주님께 허락받은 사역을 내가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성경 안에서 맞는 모습이었다.
나는 스스로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 줄로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는 로맨스를 꿈꾸지만 주도권을 뺏기기는 싫었다. 세상에서 결혼하는 것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정말 죽어야 하는 자리가 이 자리인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진짜 끝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선하신 주님이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나에게 조치해주신 것이 있었다. 일주일 전에 이사야서의 ‘함께 경배하리라.’라는 말씀을 결혼에 대한 말씀으로 주신 것이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도할 때도, 주님은 계속 말씀으로 약속해주셨다. “고난의 떡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이 나와 대면해 주실 것이다.” 결국은 주님으로 인해 만족케 하실 것을 말씀해주셨다. 기도실에서 주님의 말씀 앞에 엎드렸을 때 머리가 아니라 돕는 배필로, 주님께서 허락하신 결혼을 기쁘게 누리게 되었다.
주님은 남편을 세워가는 게 무엇인지, 내가 돕는 배필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형제가 머리가 되는 가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고 계신다. 결국은 머리를 세우는 돕는 배필의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었다. 주님이 각 사람 안에 부어주신 은혜를 보게 된다.
임신하며 깨달은 하나님의 마음
유산의 위험 때문에 일반적으로 임산부에게는 장거리 여행을 권하지 않는다. 그런 졸업여행을 스스로 믿음으로 결정해서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한 번도 보지 못한 이 아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과 인간이 정말 완벽한 교제 안에 있었는데, 우리를 잃어버리신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이 아이가 태어나면 이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마’의 시간을 지내야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아이 하나만 주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람을 바라봤다. 교회에서 학생 사역을 십수년간 했다. 그렇게 섬겼던 그 시간보다 이 아이 하나를 주님 앞에 세우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터져 나온다. 주님은 나를 그런 시간으로 인도해주셨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주님은 교회를 보게 하셨다. 복음기도신학교에서 주님이 하신 일이라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나를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를 세우는 자로 인도하셨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심령을 일으키는 자로 부르셨다. 존재적으로 교회를 세우는 한 증인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마음이 놓인다. 지금 여기 신학교에 있어도 교회를 세우는 자고, 열방이든 세상이든, 어디에 있든지 교회를 세우는 자로 존재적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원하는 부르심을 잡고 있었으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부르심, 존재적인 부르심인 것을 알게 되면서 주님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다.
우리 가정은 재일교포인 남편으로 인해 자연스레 일본을 바라보고 마음에 품게 됐다. 우리 가정이 한국에 있든, 일본에 있든, 아니면 열방에 있든 상관없이 교회를 세우는 통로로 서기를 기도한다. 더욱이 우리가 교회로 서기를 원한다. 그 모든 것 가운데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한다’는 고백이 매순간 드려지길 구한다. 이것을 놓치면 끝이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주님을 사랑하여 따라가는 제자로 서기를 기도한다. [복음기도신문]
정리=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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