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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독립운동의 최전선이라고 생각한 이승만…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해 못해

▲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위치한 상해에 도착한 이승만 환영식. 왼쪽부터 손정도.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박은식. 신규식. 장붕.

사진: Wikimedia Commons, “Rhee Syngman and Yi Donghwi”, Public Domain.

이승만을 둘러싼 논란의 진실(3)- 임시정부와 이승만의 역할

현재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1948년의 초기의 건국헌법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같이 헌법 전문이 바뀐 것은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때의 일이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 1919년 9월 상해에서 성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이승만의 입장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국내의 13도 대표들은 국민회의를 열고 한성 임시정부를 성립시켰다. 이때 한성 임시정부는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추대했다. 이후 이승만은 한성 임시정부가 그에게 부여한 집정관 총재라는 독립운동의 최고지도자 자격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상해에서 성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 한성정부가 옮겨간 것으로 간주했다. 집정관 총재로 추대된 이승만은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 한국이 독립했다는 국서를 전달함과 동시에 미국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최전선이 미국에 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승만의 철학과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해나 북경의 독립운동가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승만과 대립한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서북파와 최창식 등 공산주의자들이 장기간의 유고라는 명분을 내세워 임시 대통령 이승만을 1925년에 탄핵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승만은 그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뒤로 임시정부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임시정부가 활력을 되찾은 것은 1932년 윤봉길 의거를 일으킨 김구에 의해서이다. 김구가 이끈 임시정부가 1945년 해방 이후 환국한 다음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려졌다. 이시영, 신익희 등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임시정부를 이탈하여 이승만의 노선에 참여했으며, 임시정부를 고수한 김구나 조소앙 등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하거나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든가 이승만이 임시정부에서 탄핵되어 결코 그 법통을 이을 수 없다는 주장은 이같은 과정을 이해한다면 불가능한 주장이다. 그런 견해는 임시정부와 이승만과의 관계, 탄핵 이후 전개된 임시정부의 역사, 특히 1945년 이후의 건국 과정에서 김구의 임시 정부가 행한 역할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1945년 10월, 33년 만에 환국한 이승만은 수많은 한국인에 의해 국부로 추앙되기 시작했다. 1946년 4~6월, 이승만은 남한 전체를 순차로 방문했다. 그때 가는 곳마다 그를 국부로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승만이 1948년 대한민국을 수립할 때 헌법 전문에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기록한 취지는 다음과 같다.

‘1919년 3·1 운동으로 세워진 한성 임시정부와 그것이 중국으로 옮겨간 대한 민국 임시정부가 건립되어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당시에는 세계정세에 구애되어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에 굴복하지 않고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투쟁하여 결국 대한민국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당시에 이러한 취지의 헌법 전문을 왜곡하여 김구가 중심이 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것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 헌법개정에 참여한 정치가와 역사가들의 잘못된 판단이 이처럼 엉터리 역사관을 남겼다. <자료제공: 월드뷰> [복음기도신문]

[관련기사]

이승만을 둘러싼 논란의 진실(2)- 청년 이승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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