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라는 소망이 생겼다. 내가 하나뿐인 가족인 딸과 사랑하는 공동체와 익숙한 것들을 떠나, 머나먼 땅, 시에라리온에 와서 학교를 짓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소망은 가슴 설렘보다 부담감이었다.
어쩌자고 이런 엄청난 소망이 나에게 왔을까? 나는 그저 복음을 전하며 까지지 않는 사탕 껍질을 까주고, 우는 아이를 ‘오시야’라며 달래주고, 넘어진 아이들 일으켜 주고, 상처 난 아이들에게 약을 발라주는, 예수님 믿는 동네 아줌마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학교건축이라니.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와 받아야 하는 사랑을 이곳 아이들도 당연히 받고 누렸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학교건축을 하는 선교사는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나같이 인간관계도 넓지 않고, 배경도 자원도 재능도 능력도 없는, 무명한 자가 품기에는 학교건축은 너무나 큰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못 할 일이 없으시기에, 이 소망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가실 것을 신뢰하며 일단 기도부터 하기로 했다. 학교를 지어줄 독지가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했다.
가난한 나를 통해서가 아닌, 물질적으로 부유한 독지가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헌신하였으면 했다. 하지만 기도할수록, 연약하고 무명하고 가난하다는 것만 내세워 기도하는 것 외에 어떤 희생도 감내하고 싶지 않으려는 나의 완악함이 드러났다.
행여, 하나님이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의 집 보증금이라도 빼라고 할까 봐 불안했다. 나의 믿음과 사랑 없음을 자책하다가 마치 면책이라도 하는 듯,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팔만한 것이 있을까? 머리를 굴리기도 했다.
적금 통장도, 텔레비전도, 자동차도 없고,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은 너무 오래되어서 살만한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고, 책 말고는 팔 게 없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노트북이 있었다!
“노트북이라도 팔까요? 아니면, 진짜 집이라도 내놓을까요?”
불안한 마음(?)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잘 포장했지만 들켜버린 나의 연약한 믿음과 인색한 사랑이 송구하고 슬펐다.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마사봉이라는 마을에 전도를 갔다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마욜로의 학교가 좋아 보일 정도로 마사봉의 학교는 그야말로 가축우리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가축우리보다 못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햇볕도, 빗줄기도 가려주지 못하는 먼지 가득한 교실의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후벼팠다.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이 소식을 전하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편지를 쓰고 마음을 모으자.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곳의 상황과 하나님의 소망을 전하자.’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비싸고 소중한, 그래서 차마 내놓지 못한 노트북을 열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노트북 하나 남겨두심이 이때를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편지를 썼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시골 마을에서도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고. 복음의 불모지인 땅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한 이들의 사랑이 흘러들어오면, 이곳은 생명이 자라는 땅이 될 것이라고.
수많은 아이가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 시에라리온의 영적 기둥이 되고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흘려보낼 것이라고. 복음을 계승하여 전하는 선한 목자. 국민을 사랑하는 힘 있는 정치인. 어려운 자들을 주의 사랑으로 도울 관리자. 아픈 자들을 위해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다음 세대를 위해 가르치고 훈육할 선생님들. 정의를 위해 일할 재판장과 변호사….
수많은 하나님의 영적 거인들이 이곳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사랑을 흘려보내 달라고. 구구절절, 소망을 담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느껴졌다. 수신인들이 받았을 부담감이. 하긴,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으니까. 시에라리온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한 만큼 모든 이들에게 필요가 있을 테니까. 이해되었다. 아직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학교를 지으라며 거금을 헌금하셨다. 어떤 독지가인가? 했는데, 그는 놀랍게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난한 말기 암 환자였다. 하지만 더 알려진 게 없었다. 그의 이름도, 사는 곳도, 나이도 알 수 없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가 기도 가운데 받은 ‘향유 옥합을 깨트려 시에라리온 시골 아이들을 섬겨라’라는 음성에 그가 ‘네 주님.’ 하며 순종했다는 것 외에는. 그가 무슨 기도를 했길래,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주셨을까? 그의 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실 수 있었을 텐데, 하나님은 그에게 향유 옥합을 깨트려 수술비나 치료비가 아닌 시에라리온 시골 마을 학교건축으로 보내라고 하셨다.
그의 헌금은 그의 목숨이었다. 향유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발을 닦은 여인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깨트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의 깨어진 향유 옥합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졌고, 그 향기를 맡은 몇몇 이들도 자신들의 향유 옥합을 깨트렸다. 그 향유 옥합이 누구의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향유 옥합 안에 담긴 예수님만 드러났다.
달걀을 깨트려야 오믈렛이 만들어지듯 옥합을 깨트릴 때, 향유의 가치가 드러났다. 나의 것을 깨트릴 때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들이 남긴 향유 옥합의 향기는 예수님의 사랑이 되어 아이들에게 전해졌고, 아이들의 꿈과 소망을 담은 학교가 지어졌다.
향유 옥합이 깨어진 그 순간. 가장 낮고 가난한 무명한 시한부 인생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셨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이셨고 무명한 자를 세상 가장 유명한 자로 만드셨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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