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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칼럼] 현수막 공화국

ⓒ 복음기도신문

요즘은 어떤 도시를 가든지 현수막이 빼곡히 걸려있다. 여야 할 것 없이 현역이나 국회에 뜻을 가진 후보자들은 앞다투어 현수막을 내걸고, 매주 이슈가 있을 때마다 신속하게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현수막을 걸고 있다. 또 서로가 더 높은 자리에 걸려고 아우성이고, 좀 더 튀는 색깔, 좀 더 자극적인 구호를 써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고 있다. 왜냐하면 당사자들로서는 자신의 정견과 의지를 표현하는 데는 현수막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리고, 자기가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정확히 표현하는 데는 현수막이 제격이다.

하지만 서울, 경기도, 지방 할 것 없이 현수막 내용 가운데는 낯뜨거운 구호도 많고, 아예 욕설에 가까운 구호도 걸려있는 것도 보게 된다. 어느 지방을 갔더니 아예 선동 선전에 가까운 글귀도 있었다. 아직 선거철도 아닌데, 이미 선거 캠페인이 벌어진 셈이다. 그래서 참모진들은 마구잡이식으로 상대방을 폭로도 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여론을 선점하여 주도권을 쥐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낯뜨거운 말 폭탄을 현수막으로 도배하고 있으니 사실 보기 흉할 뿐 아니라, 거리가 지저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있고, 또 그 글귀를 읽는 시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들은 자기들의 의견이나 당의 의견을 쏟아내고 있고, 그것을 읽어봐도 사실 별 내용도 없고 부도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현수막의 내용은 시민들의 생각을 좌우하고 있고, 세계관을 결정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사실 역사는 말 한마디 때문에 바뀌기도 하고 세상이 뒤집어지기도 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당 정문에 이른바 <95개 조>라는 방을 붙였다. 당시 면죄부(Indulgence)에 대한 반발로 토의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로 치면 <대자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자보는 뜯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당시 독일의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의 발견으로 인쇄되어 전 유럽에 뿌려지게 되었다. 사실 당시 유럽 사람들 80%가 라틴어를 할 줄 모르는 문맹이었고, 20%만이 라틴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 20%는 오늘로 치면 여론을 주도하는 자들(Opinion Leader)이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고, 제네바의 칼빈에 의해서 교리 체계를 완성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대자보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을 부여한 셈이다. 그런데 그것을 확산시킨 것은 인쇄 매체였다. 오늘로 치면 언론이었다. 언론은 두 얼굴을 가졌다. 하나는 순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역기능이다. 언론은 보도의 중립을 유지하면서도 국가의 안위와 유익을 위해서도 할 수 있지만, 대자보의 내용을 확대 재생산해서 사회와 국가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언론은 사명도 있고 소명(Calli-ng)도 있다. 본래 대자보는 1950년대 중국 사람들이 공산정권하에 자기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벽보>인 셈이었다. 이 대자보를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리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깨어 있는 사람들이 민초들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 대자보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80년부터다. 5공이 시작되자 이른바 민주화 운동이 학원에서 일어나고 대학교 게시판에는 이른바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다. 나는 1980년부터 대학 총장을 했는데,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를 직원들을 시켜서 철거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자보를 뜯으면 몇 시간 후에 똑같은 내용의 대자보가 또 붙어 있는 것이다.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당시 모든 대학의 대자보는 똑같았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배후에 모종의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했고, 후일 그 당시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지도급 인사가 되어있다. 특히 1986년 10월 10일, 서울대학교에 붙어 있던 대자보는 북한의 <인민일보> 내용을 그대로 붙였기에 이미 북의 세력들이 대학에 침투되어 있었음을 증명한 것이다. 오늘의 종북 세력들은 그때 민주화 운동을 타고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현수막>이 그 대자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현수막에 쓰여진 내용은 여야의 입장에 따라서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서로 다른 의견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문제 제기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구호와 메시지들이 시민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도 문제이고, 지나치게 자기선전을 하면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했다는 식으로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볼썽사납다. 필자가 여러 지방 도시를 돌아보았더니 지방마다 현수막은 아주 독특했다. 어느 지방은 욕설이 많았고, 어느 지역은 자화자찬도 많았다.

아직도 총선이 많이 남았는데 길거리가 너무 지저분하도록 경쟁적으로 도배 되는 것을 제재할 방법이 없는지?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로 지방 장관의 지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쓸데없이 주민들을 격동시켜 불안하게 만드는 현수막을 자제했으면 한다. 선거 한 달 앞두고 현수막을 허용하도록 국회가 법으로 만들 수는 없는지? 또 거짓 선동과 선전을 하면 재재할 법은 없는지?

※<현수막>은 위에서 아래로 느려 뜨리는 것이고, <현횡막>은 좌우로 길게 하는 것인데, 이미 현수막은 가로로 하는 것으로 고정 관념이 되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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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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