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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의 두 얼굴

▲ 릭 워렌 목사. 사진: 유튜브 채널 Saddleback Church 캡처

눈먼 기독교(38)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과[1] 『새들백 교회 이야기』 같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미국 기독교계의 리더다. 백인 중산층을 타겟으로 세워진 새들백 교회는 이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교회들을 선도하는 영향력 있는 메가처치가 됐으며, 담임 릭 워렌 목사는 미국 대통령의 자문으로 일할 정도로 최고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현재 국제적으로 수백만 명의 개인과 40만 개의 교회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런데 워렌 목사의 왕성한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신앙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주로 그가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는 신문 기사들 때문이다.

일간지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2006년 1월 8일자 ‘목적이 이끄는 목회자’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릭 워렌의 말을 보도했다.

모든 종류의 근본주의는 21세기의 대적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무슬림 근본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유대 근본주의, 세속 근본주의 같은 것들은 모두 공포심에 의해 작용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공포심 말이다.

공포심에 의한 종교성에 대해서 버트런드 러셀 같은 반 기독교 인사가 말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복음주의 진영의 리더인 릭 워렌이 그렇게 말한 것은 뜻밖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원리주의라고도 불리는 근본주의 성향의 종교는 시대적으로 뒤떨어지고 타 종파에 비해 과격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타 종교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근본주의라는 공통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를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고 세속주의와 하나로 싸잡아서 비판해도 되는 것인가?

‘릭 워렌이 기독교 근본주의는 다른 종교의 근본주의에 비해서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속으로는 생각하지 않을까?’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2005년 5월 23일, 릭 워렌 목사가 플로리다 키웨스트에서 열린 퓨종교포럼의[2] 초청 연사로 나왔다. 전국에서 모인 언론인들 앞에서 워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근본주의자란 말은 사실 1920년대의 “신앙의 5대 기초”라는 문서에서 나왔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매우 율법적이고 편협한 견해죠.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소수에 불과하죠. 미국에서 근본주의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들은 모두 매우 작습니다. 큰 교회가 없어요.

릭 워렌은 지금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이 소수인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현재 근본주의자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근본주의가 잘못됐음을 증명한 것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는 4만 명 가까운 신자들이 출석하는 교회의 수장(首長)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어조로 매우 작은 교회들을 언급한다. 그는 근본주의 교회들이 한결같이 매우 작다는 것을 슬쩍 비웃으며 강조한다.

그러면 릭 워렌이 비판한 기독교 근본주의는 무엇인가? 기독교 근본주의는 성경의 무오성,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의 대속적 죽음, 예수 이적의 역사성, 예수의 육체적 부활, 이 다섯 개의 교리를 인정하는 신앙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것을 믿는 것이 도대체 왜 비웃음과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한 것 아닌가?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릭 워렌은 이 근본주의 신앙을 폄하(貶下)하고 있다.

물론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좋은 쪽으로 생각해 줄 수도 있다. ‘근본주의(5대 교리)를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 삶의 모습이 전혀 거룩하지 않은 기독교인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가 이런 취지로 언급을 한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기독교인 중에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자칭 ‘근본주의자’라 하면서도 삶이 엉망인 자들과 구별되기 위해 ‘개혁주의’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개혁주의는 ‘근본주의 신앙을 믿으며, 그 믿음을 삶 가운데 적용하며 살아가는 신앙’을 말한다. 그러나 릭 워렌의 말이 과연 그런 의미의 말이었을까?

릭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버트런드 러셀, 알버트 아인슈타인, 버나드 쇼,[3] 테레사 수녀, 헨리 나우웬, 알버트 슈바이처 같은 이들을 선의적으로(즉, 좋은 의미로) 인용하였다. 이들은 모두 성경적 가르침을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거부한 인물들이다. 또한, 워렌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목회자로서 노만 빈센트 필, 로버트 슐러, 피터 와그너[4] 등을 뽑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들이다. 릭 워렌의 신앙과 사상이 불안하지 않은가?

최근에 그는 소위 크리슬람[5] 운동과 관련해 의혹을 받은 바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평화와 공존을 내세운 이 혼합 종교는 나이지리아에서 시작돼 중동을 거쳐 현재 북미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릭 워렌과 새들백 교회는 그 의혹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으나, 여전히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릭 워렌이 이렇게 불신을 받게 된 것은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1] 『목적이 이끄는 삶』은 영어로 2400만 부, 다른 언어로 수백만 부가 팔린 초베스트 셀러다.

[2] The Pew Forum on Religion

[3] 영국의 극작가, 소설가, 비평가로서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든 성적 도착(倒錯) 가운데 순결은 가장 위험한 것이다’, ‘돈의 부재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 같은 독설로 유명하며,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 또한 잘 알려져 있다.

[4] 풀러 신학교 선교학 교수로 재직 당시 교회성장학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으나, 성령운동에 과도하게 심취하여 결국 신학적 갈등으로 학교를 떠났다. 현재는 소위 신사도운동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단체의 지도자들은 사도 혹은 선지자로 자처하며, 직통계시와 예언, 기적을 강조함으로써 신학적으로 균형을 잃고 있다.

[5] Chrislam, 기독교(Christianity)와 이슬람교(Islam)의 혼합어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Park Sun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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