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나눔선교회서 중독 치료 받는 한인 2세들 인터뷰
“마약하는 게 ‘쿨’해? 죽을 고비 넘겨 단약한 내가 더 멋져”
“오늘 5개비 맞지? 이번 주부터는 조금 줄었어. 굿(good).”
10여명의 청년이 줄을 서서 담배를 배급받았다. 이름이 적힌 종이 위에 올려진 5∼10개비 담배가 금세 주인을 찾아갔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LA나눔선교회의 아침 풍경이다. 허시관 전도사는 “마약도 그렇고 담배도 한 번에 끊기 힘드니까 양을 정한 뒤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LA 한인타운 근처에 위치한 교회이자 약물 재활센터인 이곳에는 한인 120여명이 마약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곱절 이상 늘어났다.
할당된 담배를 받아 든 에릭 유(20)와 데이비드 박(29)도 마약으로 인해 인생의 밑바닥을 찍고 새로운 삶을 찾고 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교회에서 만난 이들은 “단약(斷藥)에 성공해 그동안 망가졌던 친구와 가족 관계 등 내 울타리를 고치고 싶다”며 “학교에 다니고, 취업도 하고 저축해서 평범한 일상을 다시 꾸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인 2세인 유씨는 뉴욕에서 왔다. 헤로인을 비롯해 다양한 약물에 손을 대며 우울증을 앓았고, 여러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일상이 망가진 그를 보다 못한 유씨의 부모는 올해 1월 아들을 이곳으로 보냈다.
“가족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마약에 의존하게 됐어요. 여기 와서 그게 틀렸다는 걸 알았죠. 조금씩 나아지고, 삶의 목표도 생긴 저를 보고 친형이 응원해줬어요. 이제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텍사스주 댈러스 출신인 박씨는 펜타닐과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등 웬만한 약물은 다 접해봤다고 했다.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로 정신적으로 불안해졌고, 마약에 의존하게 된 게 그때부터였다.
응급실과 감옥에 오가던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2년 전 이곳을 찾았다”며 “얼마 전에도 병원 신세를 졌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을 비롯해 중독 치료자들과 수년째 동고동락하는 정근택 전도사는 “한인 사회 특성상 자녀가 마약을 했을 경우, 숨기고 쉬쉬하다가 손 쓸 수 없는 상황에서야 도움을 요청하는 경향이 크다”며 “가족마저도 짐짝 취급하다 보니 중독자는 외롭다. 결국 가장 필요한 건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곁에 있어 주는 게 아닌가 싶다”고 돌아봤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죽음 직전까지 내몰려서야, 살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박씨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약물을 과다 복용한 적이 있었다”며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보다도 살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유씨도 “‘너 이러다 죽을 거야’라고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까지 접어들었지만, 마약을 끊을 수 없었다”며 “결국 친구도, 가족도, 건강도, 돈도 모두 잃은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에도 청소년 마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아 길거리에 나앉고 싶다면 해라”고 경고했다.
박씨도 “아무리 경고해봤자 (마약을) 해보려고 맘먹은 사람은 결국 하게 된다”라며 “밑바닥까지 찍은 후에야 내 선택이 잘못됐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마약에서 벗어나는 일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들다고 강조했다.
유씨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방치하지 말고 잘 선도해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말했고, 박씨는 “주저하지 말고 친구와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청소년의 올바른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두 청년은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 무리에 속하고 싶어서, 멋져 보이고 싶어 마약을 한다는 청소년들에게 따끔한 경고도 내놨다.
“어린 친구들은 마약을 하는 급우를 따라서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아요. 멋져 보이니까. 제가 단약을 했다고 하니까 마약 딜러나 과거 친구들이 ‘왜? 쿨(cool)하지 않잖아?’라고 반응했어요. 그럼 전 이렇게 말해요. 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약을 끊었어. 그래서 내가 너희보다 훨씬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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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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