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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칼럼] 거짓말쟁이 걸인들 식사 대접하기

오늘은 걸어가는 도중에, 평소에 얼굴을 알던 걸인들을 만났습니다. 마침 걸어서 오 분 거리에 노천 서민 식당이 있어서 다들 따라오라고 했지요. 약 스무 명 정도가 신나게 저를 따라와서, 식당 밑 계단에 줄줄이 앉았습니다.

무엇이 먹고 싶냐고 하니 ‘프랭키’를 원하더군요. 프랭키는 얇은 전병 사이에 커리와 야채, 고기, 치즈 등을 넣어 말아서 구운 음식입니다. 서구적인 이름이 말해주듯, 인도인들에게는 어딘가 외국 음식으로서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타코 같은 데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만, 실제로 인도 바깥에서는 볼 수 없는 퓨전 음식입니다. 중국에 한국식 짜장면이 없고, 이탈리아에 한국식 피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걸인들이 계단 위의 식당 근처에 앉으면 손님이나 점원, 혹은 경비들이 소리 지르고, 간혹 때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밑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는데 조금 미안하더군요. 같은 사람인데.. 그러나 워낙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식당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치즈 프랭키 20개를 주문했더니, 나오는데 30분 이상 걸리더군요. 걸인들은 기대와 행복으로 그 긴 시간을 계단 아래 땅바닥에 앉아있는데, 저도 같이 가서 앉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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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식당에서 프랭키를 만들고 있다. 사진: 원정하.

그러면서 아이들, 애 엄마들과도 조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 아이(다섯살 정도)는 바로 오늘, 제가 차량으로 이동할 때 차창 밖에서 구걸을 하던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럴 때 보통 20루피(320원) 지폐 한 장과 만화 전도 책자를 주곤 합니다. 그러면 열 명 가까운 걸인들이 제 차량 곁에 모여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돈과 만화 전도 책자를 받아 가지요.

그런데 이 아이는 오른손으로 받은 후, 몇 초 후 다른 걸인들 틈에서 다시 왼손을 내밀더군요. 아주 초보적인 속임입니다. 저는 그런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거짓말하는 한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안 준다고 선언하고 차창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거짓말을 잡고자 노력합니다. 이제 저를 아는 걸인들은, 최소한 저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는 바로 오늘, 제가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저를 속이려던 아이였고, 그래서 그 아이 때문에 열 명 가까운 다른 걸인들이 돈을 받지 못했습니다.(다른 걸인들에게 조금 혼나기는 했겠지만, 본인들도 기회 있으면 그렇게 해 오고, 자기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쳐 왔으니 도긴개긴이지요.) 그 아이와 부모를, 같은 날 노천 식당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가족을 비롯한 20여 명과 30분을 거리에 같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난할 때 구걸은 할 수 있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죄다.’, ‘절대로 자기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들을 속이려 하지 말라.’ 등등.. 그 여자아이는 엄마 때문에 반 강제로 사과를 했지만, 저는 그 아이의 엄마(라고 해봤자 20대 초반)야말로 사과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누구에게 거짓말하고 속이는 스킬을 배웠는지 뻔하기에.. 엄마도 눈물이 글썽해서 울컥했지만, 역시 주변의 분위기에 밀려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프랭키가 나왔습니다. 하나씩 나누어주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한 아이가 같은 짓을 하더군요. 오른손으로 음식 받고, 숨긴 후 왼손 내밀며 연기하기..

바로 급식을 중단하고, 엄격한 목소리로 혼을 냈습니다.(방금까지 뭘 들은 건지..) 그 아이의 엄마 역시 회피하듯, 자기 아이를 혼내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바로, 이 어린 아이(너댓 살)짜리가 누구에게 배웠겠냐. 당신 잘못이다! 라며, 그 아기 엄마를 꾸짖었습니다. 아이를 도둑으로 키울 것이냐고, 정말로 눈물을 글썽거리더군요. 저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까짓거 미소 지으며 ‘그러면 안 돼.’ 하고 지나가거나, 못 본 척 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더 이들을 ‘평등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거짓말 해서 성공하면 두개 받는데, 실패해도 리스크가 없다면 곧 ‘거짓말 잘하는 법’이 걸인 사이에 돌게 되고, 거짓말 안하는 걸인 아이는 불성실하고 능력 없는 아이로 구박을 받게 됩니다.

능숙한 속임과 거짓말이 잠시는 돈을 더 벌게 하겠지만, 결국 이런 일에 학을 띈 행인들의 적선은 줄어들고, 이들은 더 가난해지며.. 혹여 다른 직업의 기회가 생겨도 이때의 습성을 못 버리게 돼서 곧 신용을 잃게 됩니다. 이 걸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인도 전체의 축소판인듯 싶습니다.

저는 이 지역(나비 뭄바이) 걸인들에게 아주 유명 인물입니다. 지난 십여 년간, 차창을 통해 저에게 돈과 만화 전도 책자를 받지 않은 걸인이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빈민식사 사역은 주로 다른 지역(봄베이)에서 하기에, 정작 우리 지역 걸인들에게 밥을 먹일 기회, 심지어 대화를 나눌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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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들이 거리에 앉아 프랭키를 먹고 있다. 사진: 원정하.

식당까지 갈 때도 제 팔에 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음식 기다리는 시간도 거의 축제나 팬 미팅 같은 시간이었고, 프랭키도 너무 맛있게 먹고, 축제처럼 행복했지만, 그래도 혼내고 꾸짖는 시간이 있었다는 게 슬픕니다.

사역에 낭만은 없나 봅니다. 그래도 정직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깊이 박혔으리라 믿습니다.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제 영향력으로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이 이것입니다. 적은 돈, 짧은 만화 전도 책자, 기회 되는 대로 주는 음식, 그리고 ‘거짓말에는 리스크가 있다.’는 경험… 언젠가는 열매 맺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은 많이 들지 않았지만, 들인 시간과 노력, 감정 소모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제 사역인 걸 어쩌겠습니까? 기회 되는 데까지 해 나가려 합니다.

계속 정진 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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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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