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할을 살펴봅시다. 영적 삶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있으며, 그 터는 단단하고 굳건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터입니다. 믿음은 하늘에 오르신 주님의 생명을 이 땅의 믿는 자와 이어주고, 믿는 자에게 전달해 주시는 동아줄입니다.
믿음을 이 터 위에 두지 않겠습니까? 이 터가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실 때, 사탄이 전력투구 한다고 우리 주님을 이긴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주려 하셨고, 그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대적을 이기는 이김임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날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주님은 이기는 자가 되시고, 또한 생명이 되어 주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승리의 주님, 전능의 주님, 생명의 주님, 오늘 함께 하시는 주님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믿음에 파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들추어내신 진리라는 반석의 터 대신에, 사람의 뜻이나 추정이라는 모래 위에 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관련된 어떤 것을 믿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아닙니다.
주님이 바로 구원의 길이십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이 다른 것들의 인도와 다스림을 받도록 진리의 원리를 가르치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 안에 사시는 진리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삶의 방법을 보여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친히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우리 삶의 실상이 되어 주십니다.
영적 삶은 하나님의 터이신, 영광의 주님을 근거로 세워집니다. 영적 삶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영광 받으신 아들께서 이루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주님께 구원과 거룩함의 근거를 둔 자들은 분명 신령한 자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축복과 연관 짓는다면 축복이 사라질 때, 우리는 불신과 의심과 실망에 매몰됩니다. 믿음을 경험적인 것과 연관 짓는다면 그 경험이 사라질 때, 그리고 사람과 연관 짓는다면 사람이 실족할 때, 우리는 불신과 의심과 실망에 매몰됩니다.
아무리 큰 축복이라도 참된 믿음은 축복을 근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깊은 경험이라도, 참된 믿음은 경험을 근거하지 않습니다. 참된 축복은 오직 축복과 경험의 근원이신 주님을 근거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승리자가 있더라도, 믿음은 그 사람을 표상으로 근거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오직 이김을 주시는 주님을 근거합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믿음은 하나님의 위대한 실상에 뿌리를 내립니다
스위스 산에서 울창한 숲길을 걷다가 재미난 나무를 보았습니다.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 키가 크고 우람한 소나무였습니다. 소나무의 덩치는 땅에서 5〜6피트 정도 올라와 있는데, 나무 바로 밑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었습니다. 나무는 분명 바위 위에 앉아 있는데, 50피트 이상 위로 쭉 뻗어 있었습니다. 겨울바람이 몰아쳤을 텐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습니다. 그 험한 곳에서 어떻게 나무가 곧고 높이 자랄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나무의 뿌리가 바위를 넘어서, 주변의 기름진 토양에 깊이 내려간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나무의 중심에 바위가 있어도, 나무는 넘어지거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정말 놀라운 교훈이 있습니다! 그 의미가 놀랍지 않습니까! 고난, 역경, 곤란, 슬픔, 유혹, 시험, 의심, 실망은 항상 우리의 나그넷길에 갈마들고, 우리의 심령에 자리 잡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평강과 인내와 능력과 기쁨과 이김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런 것들이 우리를 짓누를 힘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믿음이 그것들을 넘어서 하나님의 참된 실상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무너집니다. 그러면 믿음의 뿌리를 지켜줄 기름진 토양을 공급하는 영원한 실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버리고 잊으신 것 같을 때도 있고, 연단의 손길이 너무 과중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눈을 닫으시고 귀를 막으신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짐과 우리의 아픔에 대해 하나님은 무관심하신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과 같아서, 우리가 햇살 아래의 따뜻함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힘을 새롭게 하든 하지 못하든, 변함없이 빛을 발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충족합니다
시험이 오는데, 하나님은 빠져나갈 길을 주시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시험이 몰아치는데, 벗어나게 하신다는 약속을 어디에서도 주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약함이 더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온전합니다.
그리스도는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의심의 바위가 굴러 와서 믿음의 뿌리를 짓누릅니까?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뿌리내린 기름진 토양을 바라봅시다. 그리스도의 연고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죄를 잊으십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제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의식만 제하신 것이 아니라, 죄의 권능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대제사장,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주님, 우리의 대언자,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주님은 하늘에 사시며,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하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지키십니다. 그러니 믿음의 뿌리를 뻗어, 모든 의심을 넘어, 이 위대한 구원의 실상에 더 깊이 자리 잡읍시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주님은 잠시 들르시는 손님이거나,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 오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무심히 대하기도 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잊기도 하고, 주님을 뒷방에 밀쳐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주님께 문을 열어드렸다면,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이 소중한 사실에 부리를 내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후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나 후사라기보다 고아나 거지와 같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모든 부요는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뿌리를 뻗어, 실패의 모든 참담함을 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의 부요라는 토양에 이르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합니다
우리의 삶은 경험적으로 미숙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다고 보십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우리는 주님과 하나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온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낙심의 바위가 우리를 짓누릅니까?
차가운 마음으로 무심하게 보낸 시간을 두고, 낙심의 바위가 짓누릅니까? 그러면 믿음의 부리를 뻗어 그것을 넘어 가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온전하다는 놀랍고 영광스러운 사실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습니다
한 번도 하늘에 앉은 특권과 부요와 권능을 누려본 적이 없다 하더라도,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있습니다. 죄의 권능이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뿌리를 뻗어 죄의 권능을 넘어, 비할 바 없이 소중한 이 진리의 토양에 자리 잡는다면, 죄의 권능은 우리를 무너뜨리거나 짓누르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믿음의 삶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책무감이 바위처럼 무겁게 가슴을 짓누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닙니다. 승천하신 주님과 마찬가지로, 다른 보혜사께서 우리 안에 사십니다. 믿음의 뿌리를 뻗어 이 두려움과 불신을 넘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이 사실에 깊이 자리 잡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 놀랍고 영원한 사실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믿음은 잠잠히 이 사실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상으로 여기고 행동합니다. 어떤 일이 닥쳐서 삶을 덮치고 무너뜨리려 할지라도, 믿음은 견고하고 참되며,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거듭거듭 치고 들어온 바위들을 보십시오. 그 바위들은 바울의 생명까지 마구 짓눌러 놓을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그 모든 위험과 핍박과 시험과 고난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놀라운 영원한 사실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엄청난 영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삶이 예외라고 말할 것입니다. 바울은 숲의 거대한 나무였습니다.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 내륙에 약혼한 젊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가까웠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혼자가 아프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약혼자와는 사흘 길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 소식에 선교사는 가슴에 커다란 슬픔의 바위가 짓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온전히 혼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약혼자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손으로 장사를 준비하고, 관을 만들고, 묻으며,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의 포도원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기 위해, 돌아와 혼자서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나 쓴 뿌리가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더 절절하게, 주님께 사랑과 헌신을 바쳤고,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믿음의 뿌리가 끔찍한 슬픔을 지나 뻗어 내렸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쇠하지 않는 선하심과 다함이 없는 은혜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배반했습니다. 너무나 슬프게도,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자신의 약속을 잊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어겨서 자신을 부인하는 일을 못하십니다.
우리는 쉽게 포기하고 패배를 선포하거나, 심히 절망하여 사명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우리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낙담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마귀의 편에 있는 자에게 승리를 주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과의 사귐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기 소유로 삼으시고, 친히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주님은 이 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 때문에 일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 때문에 일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 때문에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당신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서 보기를 원하십니다.
두 소녀가 빙판을 건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길이 뚜렷하게 있는 곳이 아니었고 곳곳에 커다란 얼음 구덩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에 힘을 주어야 했는데, 막상 그들은 미끄럼 방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겁내지 않고 안전하게 경쾌하게 걸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몸이 가이드와 줄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이드는 위험을 피하는 방법과 얼음길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고, 소녀들은 가이드의 성실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도자이신 주님의 신실하심은 더욱더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앞길을 아십니다. 모든 위험과 난관을 지나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우리의 인도자이신 주님은 우리가 다른 의지나 다른 도움을 내던지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이외의 것을 온전히 벗어나서, 주님의 변함없는 성실하심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게 하십니다.
<Ruth Paxon – 룻선교회 제공>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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