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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대화와 협력 이상의 혼합과 타락

▲ 2012년 석가탄신일 봉축법회에서 축하 법문을 하는 인명진 목사. 사진: 유튜브채널 newscj 캡처

눈먼 기독교(13)

2008년 10월과 12월 미국 최대 장로교단인 PCUSA가 5천 명 이상의 소속 목회자 및 평신도를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했다.[1] 그 결과, 전체 응답자 중 39퍼센트의 응답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라는 항목에 동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자의 경우는 35퍼센트만이 동의했다.[2] 보수적인 교파인 PCUSA 소속 기독교인 가운데 ‘예수만이 구원자’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충격적이지만, 목회자가 일반 신도보다도 더 믿음이 없다는 보고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이 시대 기독교 신앙의 변질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배교(背敎)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이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그럼, 목회자들은 왜 절대 진리로서의 기독교 복음과 예수 신앙을 저버리고, 타 종교와의 혼합과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것일까? 그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태도 때문이다. 즉, 인기영합주의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을 다음의 주간지 기사가 잘 보여준다.

“종교다원주의 복직 판결”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변태적 ‘종교 재판’은 결국 상식의 승리로 끝났다. 대법원은 지난 10월 23일 강남대의 상고를 기각하고 학교 쪽이 지난 2006년 이찬수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하급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이 교수는 10월 31일 전화 통화에서 “기독교적 정의에 어울리는 판결이 내려져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목사이기도 한 이 교수는 종교다원주의를 설파하고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이뤄진 기독교 재단 쪽의 재임용 거부 이후 2년 하고도 아홉 달 동안 많은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3]

이 사건의 당사자인 이찬수 교수는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목사다. 이 목사는 주일에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동네 불교 사찰을 찾아가 부처 앞에서 절을 하고 예불을 드렸다. 그것도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신도들과 함께 말이다. 이런 모습이 이 시대의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이라는 취지로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됐다. 그 후 대학 측이 이 교수의 신학을 문제 삼아 교수 재임용을 거부했는데, 세상 재판에서는 그것이 불법이라고 판결을 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기사를 쓴 기자는 ‘종교 재판’, ‘상식의 승리’라고 표현했고, 당사자인 이 목사는 ‘기독교적 정의’라고 말한 것이다.

보수신학을 견지하는 대학 측으로서는 그런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목사가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들어왔으니 두통거리로 여길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 측이 처음에 교수 임용을 할 때 철저하게 이 목사의 신학을 점검하지 않은 탓이다. 세상은 보수 교회가 기대하는 것처럼 성경적 가치관대로만 판결하지 않는다. 세상의 판결 기준은 상식적 가치와 보편적 관념이다. 지금 이 시대는 진리의 혼합이 상식적 가치이고 다원주의가 보편적 관념이다. 세상에서는 종교다원주의를 따르는 사람이 인기를 얻고 인정을 받는다.

집권 여당의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4] 2011년 성탄절에 요즘 인기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법륜 스님을 초빙해 설교단에 세웠다. 그 예배에는 정토회 불자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법륜 스님은 특유의 설득력 있는 담화로 한 공간에 모인 기독교도와 불교도를 감화시켰다. 당연히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이 일이 매우 바람직하게 여겨졌고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에 법륜 스님이 화답했다. 2012년 석가탄신일을 맞이해서 인 목사를 봉축법회에 초대해서 축하 법문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날에는 인 목사를 비롯해서 천주교 신부, 성공회 사제 그리고 동학 대표 등 100여 명의 종교계와 사회 인사들이 참여해서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했다.

천주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타 종교와 손잡는 데 인색하지 않았지만, 개신교 목사가 도대체 언제부터 타 종교 지도자와 대화와 협력 이상의 혼합을 추구하게 된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기 그지없다. 2012년 성탄절에는 법륜 스님이 경동교회와 갈릴리교회에서 연이어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경동교회와 박종화 목사가 우리나라 교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꽤 크고 지금까지 이바지한 바도 역시 크다.[5] 그러나 아무리 공(功)이 커도 과(過)는 과다. 지킬 것을 지키지 않는 신학은 혼탁한 영성의 세속주의며 인본주의일 뿐이다.

함석헌, 자기만의 기독교 신앙을 창조한 사람

함석헌은 일제하에서는 독립운동가로, 근대 민주화 시절에는 재야 민주인사로 역사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그는 생애 초기에 기독교에 입문하였으나 후에 다른 사상들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기독교를 만들어서 믿었다. 함석헌은 평생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며 그것을 대외적으로도 밝혔다. 88세 생일상을 받은 자리에서 함석헌은 “내 주님이라면 예수님밖에 더 있나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6] 그가 말하는 ‘주 예수’ 신앙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가 지은 대표적인 저서 『뜻으로 읽는 한국역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것을 말하면 그것이 사랑의 원리인 줄 믿듯이, 나는 내 믿는 바를 말하면 그것이 보편적 종교적인 것인 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비교적 나와 관계가 깊은 기독교의 성경에 나타나 있는 사관을 간단히 말해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홀로 참 종교라는 생각에서도 아니요, 기독교에만 참 사관이 있다 해서도 아니다. 전날에는 내가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와서 보면 역시 종파심을 면치 못한 생각이었다. 기독교가 결코 유일의 진리도 아니요, 참 사관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진리가 기독교에서는 기독교식으로 나타났을 뿐이다.[7]

함석헌은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믿음이 곧 보편적인 종교성과 다름이 아니라는 전제를 달고서 말을 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틀린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일반화의 오류다. 그는 기독교가 홀로 참 종교도 아니고 유일의 진리도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기독교식 진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때의 기독교란, 자기 나름대로의 기독교를 지칭하는 것이다. 상대주의적 가치관으로 말하고 있는 함석헌은 다분히 종교다원주의적 사고를 가진 자다. 그는 또한 불교와 기독교를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말하는 바 ‘나’로부터 ‘전체’에 이르는 진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이지 결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아니다. 기독교는 그 출발점이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간디라고도 불렸던 함석헌이 진짜 간디를 존경하고 따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간디의 신앙과 영성을 어떻게 파악했을까?

그(간디)는 확실히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읽는 사람은 곳곳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라는 구절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로 하면 그의 그 파란 많은 일생은 하나님의 경륜이라 할 수 있습니다.[8]

간디는 평생 기독교인이었던 적이 없다. 유학시절 유럽의 기독교를 접하고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국가들의 악행을 보고 “나는 예수는 존경하지만 기독교는 싫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평생 힌두교도로서 살았으므로 당연히 그에게는 유일신 관념이 없다. 그런데 함석헌은 간디가 자기의 신이라고 언급한 것을 모두 하나님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간디는 절대로 하나님을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힌두 신들 가운데 하나를 말한 것이었다. 함석헌에게 간디의 신은 곧 자신의 하나님과 동일한 것이었다. 간디가 암살을 당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한 말도 함석헌은 “오! 하나님”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간디가 죽으면서 찾았던 신은 하나님(God)이 아니라 자신의 힌두 신(god)이었다. 함석헌의 이런 신앙이 어찌 진짜 기독교 신앙이란 말인가?

물론 어떤 이들은 함석헌이 평생 약자들과 함께하고 사회 운동에 앞장섰으므로 그의 삶의 족적을 통해 그를 기독교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삶과 더불어 성경적 신앙고백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삶이 숭고했어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기독교 신앙이 없었다는 증거다. 간디가 아무리 존경받아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듯이 함석헌 역시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는 단지 위대한 재야 민주 인사이며 탁월한 종교 사상가일 뿐이다.


[1] 설문조사 제목은 ‘장로교의 종교성과 민주성 프로파일’이다.

[2] 「기독신문」 2010년 1월 20일

[3] 「한겨레 21」, 2008년 11월 7일, 95쪽

[4] 서울 구로동 소재 갈릴리교회 담임

[5] 경동교회는 전임(前任) 강원용 목사 시절부터 우리나라 민주화운동과 종교간 소통에 앞장선 교회다.

[6] 『함석헌 평전』을 지은 김성수의 말

[7] 함석헌, 『뜻으로본한국역사』, 한길사, 50쪽

[8] 함석헌, 『영원히 사는 길』, 대경출판사, 141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Park Sun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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