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의례적인 인사가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세월이 바뀌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새해에 으레 주고받는 이 인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복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가치관이나 생각에 따라 복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것, 또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는 것, 자식이 잘되는 것 등등 현세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성도는 이미 영생을 얻어 영원히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할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이 복은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이미 다 이루어진 확실한 일이지만, 아직 실제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역으로 우리는 법적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었지만, 아직 이 세상에 남겨져 있기에 우리들의 실제 상황은 완전함과는 아직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남기신 이유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법적 지위와 동일한 천국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히 4: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을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시편 1편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시편 기자는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세 개의 하지 말아야 할 행위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들입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는 것, 죄인들의 길에 서는 것,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것. 우리는 너무나 쉽게 현세적인 복을 위해서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생각 없이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야’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만일 온전하게 하나님의 기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자기를 내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시편, 마음의 전쟁>이란 책의 저자 최종혁 목사는 “1편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말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복의 가치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가치관은 너무나 다르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의 가치관을 거절하고 그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과 같이 이미 받은 복을 누리는 우리는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버리고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계속되는 말씀에서 ‘복 있는 자’가 하는 일을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여호와의 율법”은 참 신자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다윗 시대에는 모세 오경 외에는 영감 받은 책이 얼마나 적었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성경을 집에 두고 읽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우리는 얼마나 더 성경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까!”라 말한 스펄전 목사님이 만일 상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방법(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온갖 편리함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우리는 이어지는 그의 말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모두 성경을 탐구하는 베뢰아 사람들이 아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복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얼마나 될까? 어쩌면,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나는 경건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기에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기쁨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오는 기쁨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합니까? 당신은 성경을 당신의 가장 좋은 동반자로 매시간 당신의 인도자로 삼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복은 당신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챨스 스펄전)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신분에 걸맞는 자로 자라나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엡 1:3-14). 그러기에 하나님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시편 기자는 말씀을 사모하는 경건한 자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시냇가의 심은 나무는 마르지 않는 시냇물로 인하여 무성하게 자라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는 그 나무를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고 열매를 따 먹는 사람에게 이익을 끼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열매는 자기만족을 위해 열린 열매가 아닙니다. 이 열매를 따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기 위한 것입니다.”(‘앨런 피 로스’의 글을 요약함)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미 의롭게 된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 땅에 형통할 것입니다. 이 형통함은 세상의 성공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주님 안에서 항상 평안하고 복된 삶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그날을 즐겁게 기다리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4-6)
세상의 가치에 따라 세상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리에 앉는 자들은 악인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방법대로 원하는 것들을 다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만족하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복을 결코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 아래 지옥 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들의 이유를 들어 보면, 직장 생활이 바빠서, 가정일이 너무나 많아서… 등등의 이유를 댑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고 주님이 인정하시는 길로 나아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아무리 바쁘다고 할지라도 성경을 위한 하루에 한 시간, 혹은 반 시간의 시간이라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능력이나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참된 신자로 열매 맺는 삶을 통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원하는 마음과 준비된 마음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4, 5, 6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가슴에 새겨 하나님께로 돌이켜 주님의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신 독자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악인’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을 믿어 의인이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이 주신 시편의 말씀을 마음이 깊이 새기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 신실하게 주님의 말씀과 함께 하므로 주님께서 주신 복을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복음기도신문]
김상우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리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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