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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칼럼] 희망과 소원

사진: Jorge Vasconez on Unsplash

새해가 밝았다. 그래서 2022년의 새 캘린더를 걸어놓고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특별히 금년은 대선의 해이고, 기초 자치 단체의 선거가 있다. 신년 하례를 하면서 모두 덕담을 나누고 ‘복 받으라!’고 서로를 축복한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묵은해를 청산하고 새해는 희망의 해가 되기를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소원과 희망은 서로 엇비슷하게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소원이 있다. 누구든지 소원과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소원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서 소원은 때로는 야망으로 변질되기 쉽다. 야망과 야심은 이룰 수 없는 목적임에도 자기의 소원과 야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금년은 선거의 해이고 정치의 해이다. 후보자들은 소원 성취를 이룰 수만 있다면 희한한 술수를 쓸 것이고, 그 밑에 참모진들은 후보가 당선되어야 자기들도 한몫을 챙길 수 있고, 그 밑에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받으려는 소원 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원을 이루려는 탐심과 탐욕이 동반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기의 소원과 야심을 위해 온통 탐욕의 덩어리로 되어 가고 있고,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희한한 공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소원 성취를 이룰 수만 있다면 양잿물이라도 마실 듯이 덤빈다. 소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소원 성취에 몰입하면, 체면과 체통도 상관없고, 양심도, 정의도, 진리도 없는 거의 미친 사람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룰 수 없는 소원에 몰입하다가 빈손 들고 낙망의 벼랑 끝에 살다가 허망하게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새해는 제발 너무 많고 지나친 소원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소원이 커지면 그것은 야망이 되고, 야망은 야심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은 결국 탐심과 탐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윤리고 도덕이고 양심을 아예 무시하게 된다.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거짓을 밥 먹듯 하고, 그러한 생각을 가진 패거리들을 한데 모아서 감언이설로 쇠뇌시키고 정당을 이끌어 간다. 그렇게 되면 나라의 앞날은 없어지게 되어 있다.

한국교회에서도 미국의 어느 설교자가 말한 뒤로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에 홀딱 반해서, 목적이 좋으면 반드시 일이 성취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은 자기의 소원과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사상이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지배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진리도 복음도 아니고, 프로이드의 심리학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런 사상이 한국교회를 뒤덮어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사도 바울의 진리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세상도 교회도 모두가 자신의 소원과 야망에서 놀아나다 보니, 기독교회는 어느덧 소원 성취의 수준 낮은 종교로 변질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정부가 죄 클릭 정책을 쓰고, 대통령이 종북주의가 되어도 입도 뻥긋 못하고, 자기 소원만 이룰 수 있고, 자신들이 품었던 야망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기독교가 소원 성취의 종교가 되면 빛 노릇 소금 노릇도 못하고, 어느덧 지도자들은 선지자적 사명도 잃어버리고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소원과 희망을 구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소원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욕망의 내용이다. 소원은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지금은 소원이 꿈과 비전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의 믿음에서 생겨난다. 희망은 항상 역사의 배후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지향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희망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소원은 미래에 투사된 우리의 의지라면, 희망은 미래로부터 출현 된 하나님의 의지이다. 예컨대 ‘소원은 마치 끈이 달린 화살처럼 나에게서 나와서 미래를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희망은 반대로 미래로부터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나를 향해 날아온다.’ 그러므로 희망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가진다. 희망은 능력이다. 희망은 적극적이고 자극적이다.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예기치 못한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학수고대하게 하고 우리를 생동력 있게 만든다.

우리의 희망 곧 소망은 믿음에 기초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망원경으로 저 멀리 산에 있는 것을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보듯이 분명하게 본다. 일찍이 칼빈은 고린도전서 주석에서 말하기를 ‘희망은 바로 믿음으로 안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새해 첫발을 디뎌놓은 우리가 탐욕과 탐심의 세계에 빠지지 말고, 지나친 소원 성취에만 올인하지 말고, 더 큰 하나님 나라 건설과 공평과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될 것을 희망하면서 한해를 후회 없이 멋지게 살자!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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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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