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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칼럼] 초라한 밥상에서 경험하는 하늘의 신비

▲ 산족 출신 무카 목사가 엘리트 청년 찐차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 오영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같이 앉아서 같이 기도한다. 한 명은 태국 엘리트 가문에 속한 태국인이고 한 명은 산지 소수부족민이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이와 기도를 받는 이가 상식을 깬다. 왜냐하면 산지 소수부족 목회자가 태국 엘리트 가문의 한 젊은이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카렌족 목회자 무카 목사가 방콕에서 올라온 찐차나라는 젊은이를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다.

찐차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태국에서도 드문 엘리트 청년이다. 그녀는 태국의 최고 명문법대인 탐마삿대학교(Thammasat University)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 학과는 2020년 태국 대학생들에 의해 최고의 법학과로 선정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쭈라롱꼰 대학교가 1위이지만 법학과는 탐마삿 대학교가 1위였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녀의 동기 가운데 이미 두 명이 검사이고, 판사로도 몇 명이 근무하고 있다. 학교 배경이 엘리트이다.

그녀는 졸업 후 진로를 바꾸어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영어가 능숙한 이유는 외국인들과 같이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 장학금을 받고 헝가리에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서 뇌신경 심리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근무환경과 언어 능력 그리고 연구한 분야가 뛰어나다.

그의 부모는 매우 드물게 태국육군의 부부 장군이다. 그의 가족이 태국에서 유력한 군가문이라는 의미이다. 군의 역할이 여전히 막강한 태국 사회에서 엘리트에 속한 가정배경이다.

반면 무카 목사는 내세울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사는 마을은 태국의 가장 높은 산인 도이인타논 산의 한 자락에 위치해 있다. 그 마을에 전기가 들어 온지 4년밖에 안된다. 포장 도로도 2년 전에야 공사를 마무리했다. 주민들은 대부분 논농사와 야채를 재배하며 일부가 꽃을 재배한다. 그는 태국 사회에서 주변부이다. 태국인들은 그들을 ‘산족’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의 학력은 찐차나와 비교할 바가 못된다. 정식 학교로는 깊은 산골 분교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마쳤을 뿐이다. 이후에 통신과정으로 중학교를 마쳤다. 신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아니다. 단기 6개월 과정의 성경공부를 했을 뿐이다. 그의 태국어 발음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의 집안은 그저 가난한 농사꾼일 뿐이다. 그도 농사를 짓고 있는 목회자이다. ‘찐차나’와 사회적으로 비교할 내용이 없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카렌족은 엘리트 가문의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한다. 나이가 많아도 열등감과 부정적 자존감 그리고 언어적 한계 등으로 접근조차 어려워한다. 그런데 오늘 자리는 전혀 다른 상호간의 역동이 일어난다. ‘무카’ 목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영적인 권위로 ‘찐차나’를 격려하고 강건하게 한다.

2021년 12월 26일 마지막 주일 예배는 매쁘이키 마을에서 예배를 드렸다. 성탄의 의미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오랜만에 산속의 카렌교회의 따뜻한 환대를 경험한다. 예배 후 식사는 자연스럽게 담임목회자인 무카 목사 댁에서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큰 딸 예인이의 친구인 찐차나도 같이 참여하였다.

찐차나는 지금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초신자이다. 그녀는 예인이와 헝가리에서 같이 공부한 태국 친구이다. 예기치 않은 통로를 통하여 그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태국에서도 천주교 배경의 친구들을 따라서 성탄절에 교회를 간 적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하여 열린 마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신앙적으로 큰 도움을 준 친구는 중국에서 온 학생에 의해서이다. 그런 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제가 헝가리에서 하나님을 믿은 것은 우연한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의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너무 순수하였다.

식사를 준비해 준 무카 목사의 장모와 가족들과 이야기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린다. 동네에서 준비한 부식물로 준비한 식사도 너무 맛나게 먹는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그녀의 자세에서 소위 엘리트 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친한 이모집을 방문한 조카처럼 살갑게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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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무카 목사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태국 청년과 한국인 친구

떠나가 전에 무카 목사에게 딸 예인과 친구인 찐차나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무카 목사는 부자연스럽지만 태국어로 기도를 한다. 찐차나와 예인이의 미래, 지혜, 건강 그리고 집안을 위해서도 기도를 한다. 그 기도 시간에 찐차나는 목자 앞에 선 순수한 양처럼 기도를 받는다. 무카 목사의 영적인 권위에 겸손한 자세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또는 학력과 외모로 판단하고 구분한다. 엘리트 집안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평범한 집안은 그 자리에 오르려고 애쓴다. 일부 소외된 주변부는 신분 상승이 안 될 것을 직감하고 포기한다. 주변부의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저 다음 생애라도 그런 신분으로 태어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복음이란 이런 세상 신분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 땅의 신분은 제한적이며 임시적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나라 앞에 다 상대적이며 유한함을 밝힌다. 그리고 완전히 새롭게 할 나라를 밝힌다. 신분상승을 할 필요도 없고, 눈물도 아픔도 없다. 구원자 되신 예수님이 이루실 영원한 나라이다. 구약은 그 분이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잉태될 것을 예언하셨다. 성탄절은 그 분이 태어나심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오늘 나눈 설교도 바로 그 내용이었다.

오늘 태국의 깊은 산속 카렌 마을에서 그 영원한 나라의 맛을 느낀다. 초라한 밥상에서 오히려 하늘의 신비를 경험한다. 그 자리는 이 세상의 신분의 차이로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서 있다.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찐차나를 같은 식구로 대하고 기도와 격려로 힘을 더해준다. 찐차나에게 오늘 방문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다.

“오늘 방문 일정은 너무 좋았고 음식도 맛이 있었습니다.”
행복한 미소로 대답을 하면서 더 깊은 의미를 나누었다.
“오늘 만남과 방문과 그리고 예배와 나눔이 우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세례도 받지 않은 초신자이지만 그녀의 고백은 무디어진 나의 영적 민감성을 자극하고 도전을 준다. 주변인인 소수부족목회자와 엘리트 집안 찐차나의 깊은 영적 교감의 자리는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얻는다. 나를 깨닫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길은 참 다양함을 다시 느낀다. 이런 자리에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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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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