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대화관계를 수립한지 25년을 맞는 해이다.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3개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중동 지역 못지않게 미전도종족이 많은 곳이다. 최근 선교전문지 「중국을 주께로」는 ‘동남아 중국인선교’ 특집기사를 통해 동남아 개신교 선교의 현황과 각국별 상황을 조명했다. 이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동남아, 인도차이나 반도 중심의 10개국
동남아시아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중심으로 인접한 10개 나라를 가리킨다. 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서구의 식민지를 경험한 공통의 아픔이 있으며, 불교와 전통종교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지역이다.
개신교의 동남아 선교는 1599년경 네덜란드 기독교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교는 식민주의 기운이 한참 아시아로 팽창하던 19세기부터 진행됐다. 이같은 식민지 체제는 선교사들에게 종교적 권위를 높이는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같은 장점은 선교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식민지 체제에서 교육 영역은 가장 활발하게 사역이 이뤄진 분야이다. 또 교육 영역을 섬기는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해 식민지정부가 호의적이고 협조적이었다. 기독교 미션 스쿨은 식민지 체제와 교회 양자에게 필요했다. 선교사는 학교교육을 통해 복음을 제도적으로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으며, 식민지 정부는 제도권 교육을 받은 하급 공무원 등 필요한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은 또 미전도종족의 복음화를 위해 부족들을 찾아갔는데, 정부도 이같은 선교사들의 활동을 막지는 않았다. 원시부족들이 외부와 교류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이들을 정부의 행정 체제 안으로 편입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동남아에서 선교사들의 활동은 영국령 버마, 화란령 동인도(인도네시아), 미국령 필리핀 등에서 활발했다. 그러나 선교사의 활동을 부정적으로 봤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와 태국에서는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이런 원인은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복음화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1985년 태국의 기독교인들은 1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중 2만 명에 불과한 개신교 신자 비율은 전체인구의 0.1%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비해 인도네시아에서는 1930년경 개신교 신자들의 숫자가 이미 150만 명(유럽인을 제외하면 140만 명)에 달해 총 인구의 2.5%를 차지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오늘날 기독교 인구의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태국은 2010년 현재 75만 명의 기독교 인구 중 절반 조금 안되는 33만 명이 개신교이다. 이 나라 전체 인구의 0.5%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인도네시아는 총인구의 15.8%에 해당하는 3685만 명이 기독교인이며 그중 2365만 명이 개신교인으로 총인구 대비율 10.2%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태국 사회는 정치적 불만, 사회적 불안, 경제적 위기의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태국인들은 대부분 불교와 주술 신앙 등 전통적인 종교에 의지하고 있지만, 일부는 개신교에서 해결의 길을 찾기도 한다.
이에 따라 1980년대와 1990년대 중엽까지의 교회 성장은 방콕 등 도시에 사는 태국인들과 중국계 태국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는 과거 산악 지대 소수종족들 중심으로 개종 사례가 나타났다고 보는 현상과는 달라진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복음주의적이거나 은사주의 경향의 교회들이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는 것은 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1980-1988년 사이에 기독교 인구의 비율이 10.3%에서 한때 18.7%까지 치솟았다가 2010년 16.0%로 조금 떨어졌다.
베트남에서는 1975년 이후 개신교건 가톨릭이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 공산주의 국가의 이해관계에 적대적인 행위로 간주됐다. 그러나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의 숫자는 1974년 14만 명에서 2010년 114만 명으로 무려 8배 이상 증가했다.[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