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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헌신 40년 만에 선교지로 출정합니다”

순회전도자에서 열방 선교사로 윤용현 전도사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모든 인생의 처음과 끝을 알고 계시며 행하시는 일에 실수가 없으시다. 누구를 언제 어떻게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실 지도 이미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붙들린 자들은 결국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복음의 은혜를 체험하고 선교를 결단한 이후에 40여 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경험하며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다가 주님의 때에 선교지로 나아가는 윤용현 전도사를 만났다.

– 늦깎이 선교사로 발걸음을 떼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실례지만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48년생이니 올해 67세네요. 아직 건강은 좋습니다. 최근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아웃리치로 아프리카에 다녀오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짧게 몇 주 이렇게 왔다 갔다 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 1년이라도 함께 선교사님과 더불어 살면서 예수생명으로 교제하면 정말 좋겠다. 그런 생각을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바로 저였더군요.”

60대 후반에 선교지로

– 실제로 발걸음을 옮기기는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아웃리치를 다녀온 이후 한국교회를 더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교회들을 순회하며 연합해서 기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온전한 기도자로 서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단기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단체인 ‘요셉의창고미니스트리’에서 ‘L국 현지 선교사님이 기도의 부담과 갈망을 가지고 있는데, 동역자를 필요로 한다. 그곳에서 기도자로 서면 어떻겠냐?’로 물어보셨어요.

이미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기도하라시면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사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지만 장소만 바뀌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은 동일하다는 마음을 받았어요. 그냥 어린 아이처럼 ‘아멘!’한 거죠.”

– 선교에 대해 이전부터 관심이 있으셨나요?

“73년 빌리 그래함 집회가 여의도광장에서 열렸을 때, 참석했어요. 그때 멀리 외국은 못가더라도 북한은 갈 수 있겠다 싶어 그 자리에서 선교헌신을 했죠.”

– 40년 전 이야기네요. 그동안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70년대에 죄에 빠져 고통 당하고 있던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이 살려주셨다는 사실이 믿어졌어요. 음란의 죄에 무너져 죄 값으로 지옥 가는 줄로 알았는데 구원의 은혜가 임한 거죠. 그 무렵 복음전도자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 은혜의 발걸음을 한 걸음씩 걸어가게 되셨군요.

“27살 정도에 당시 고향 서산을 떠나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섬기게 되었어요.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산기도와 철야기도를 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8살 때에 신학교에 들어갔고, 그리고 졸업하면서 전도사로 교회를 계속 섬겼죠.”

–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전도사 생활 중에 다시 죄에 넘어졌어요. 음란의 죄가 끊어진 줄 알았는데, 동성애의 죄까지 저를 흔들었죠. 죄가 너무 무서웠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몸부림을 쳤어요. 정말, 절망이었죠. 내게는 정말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은혜를 배우게 되었죠.”

– 그 은혜를 누리는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었던 저의 은밀한 죄 때문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없었어요. 그래서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기도원을 많이 다녔어요. 정말 거룩해지고 싶고, 주님 닮고 싶었죠. 하루는 기도원에서 전도자들의 삶의 간증이 기록된 책자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그들의 변화된 이야기를 보고 큰 도전을 받았어요.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위선자처럼 살 수 없다.’라고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된 회개의 기도를 드렸어요. 그 후로는 다른 사람에게 제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말하고, 이런 큰 죄인을 구원해 주신 십자가의 복음을 나누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죄에 대해 자유롭게 되는 은혜가 임했죠.”

죄된 존재를 인정하자 자유함 누려

– 은혜 받은 이후의 삶에 대해서 좀 더 나눠주세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동안 순회전도자로 살았어요. 정처 없이 주님이 보내시는 곳에 머물기도 하고 떠돌아다니기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어요. 연락이 닿거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제 삶에 실제가 된 복음을 나눴죠.

제가 도둑질 했던 것, 간음했던 것 등 저의 죄를 고백하고 복음을 전하면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채를 잡히고 발로 밟히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 함께 전도하던 청년 중에 나중에 목사님이 된 사람도 있고요.”

– 어떤 계기로 그런 순회전도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을 하셨나요?

“영혼들을 향한 구령의 열정이 있어서라기보다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시작했어요. 저의 영적인 체질이 바뀌어야 한다는 도전이 있었어요. 그저 종교인의 삶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사람, 삶의 목적과 소망이 오직 복음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 순회전도자의 삶에 이어서 믿음의 삶을 계속해서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진정한 부흥을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순회전도는 그만두었지만 지역교회를 섬기면서 전도는 계속하고 있었어요. 그런 중에 조카사위가 네팔 선교사인데 그 선교사님을 통해 복음학교라는 곳을 소개받았어요. 그곳에서 확실하고 명확하게 선포되는 복음을 들으면서 제가 체험했던 그 복음을 확인하는 더 없는 시간이었죠. 너무 감사했어요.

그 과정에 제 안에 하나님의 긍휼이 부어지게 되었어요.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적 죄 덩어리’인 나 자신에 대해서 직면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전에는 타인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더군요.”

–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예전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떼를 쓰면서 ‘저 이렇게 안 살고 싶어요. 오늘 교통사고 나서라도 저를 데려가세요.’ 이렇게 기도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을 당해서 제 안에 구정물이 올라오면 ‘주님 감사해요. 이제 그런 저는 죽었잖아요.’ 이렇게 기도해요. 정말 달라졌죠.”

– 40년만에 드디어 선교지로 나가게 되시는데?

“주님이 결국 매사에 예수님이 결론이 되게 해 주셨어요. 예수님이 복음이시니까, 복음이면 다죠. 충분하죠. 예수님만 있으면 다 있는 거고,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거에요. 이것이 제 고백이 되니깐 생활의 염려나 대책에 대한 걱정이 없어요. 주님과 살다가 주님 앞에 가면 되는 거잖아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사는 것. 그것이 복음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복음의 삶이 기도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매사에 주님, 주님을 부르는 기도가 꼭 필요하더라고요. 정해진 기도시간 외에도 주님을 의식하면서 말하고, 기도하면서 길을 걷고, 복음을 전하는 시간 외에는 말씀을 보면서 주님과 교제해요. 외로울 수가 없어요. 외로움을 몰라요. 전혀.”

40년 전의 서원했던 선교사로

– 최근 기도의 삶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제가 매일 1시간씩 열방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24·365에 참여하고 있어요. 새벽기도는 평생 동안 했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새벽 3시를 기도24·365 기도시간으로 정했죠. 처음에는 은혜로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리듬이 깨지면서 새벽 3시 기도가 잘 안 지켜져서 절망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기도의 자리가 행복하고 축복이라고 고백을 했었는데 기도가 무너지고 나니깐 ‘나는 정말 기도의 자리에 못나가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요.

선교지에 기도사역 하러 가는 사람이 기도에 대한 절망을 하게 되면서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최근 말씀기도 시간을 통해서 ‘내가 기도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 저를 참된 기도자로 세워주시려고 그곳으로 보내시는 구나. 기도 잘 못하는 나를 그렇게 해서라도 기도자를 세우기 원하시는 주님의 열정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기도의 용사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기도의 용사를 만드실 것을 기대하게 되었어요. 절망을 통해서 소망을 갖고 L국을 향해서 가요.”

– 끝으로 더 나누고 싶은 말씀이나 기도제목을 소개해 주세요.

“처음부터 원했던 것이지만, 지금도 저의 소원은 정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정말 거룩한 부흥을 원해요. 하나님 나라가 부흥하고 선교가 완성이 되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이 제가 바라는 소망이에요. 그래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교회와 모든 목회자들이 예수 생명을 흘려보내는 자로, 보석 같은 증인으로 세워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선교 헌신을 하고 나서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후에 선교사로서 해외 선교지로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예요. 제가 제일 약하고 부족하니깐 저를 보내시는 것 같아요. 주님이 약한 자를 사용하시잖아요. 또 현장에서 선교사님과 서로 조건 없이 연합을 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범사에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필요에 따라 영육 간에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세요.

선교를 준비하면서 고전 1장 30절 말씀을 마음에 받았어요. 저는 아무 것도 없지만, 주님이 저의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거룩함이 되시고, 구속함이 되시니까 저를 주목하기보다는 주님의 약속을 아멘으로 붙잡고 편안한 마음으로 달려나갑니다.”

[GNPNEWS]

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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