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의 한 초소에서 우리 군 초소의 병사가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때 북측에서 무장군인이 두리번거리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이런저런 시험을 해보더니 반응이 없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래도 이쪽에서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놈이 와도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초소의 병사는 지금 숨을 죽이고 정확히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와라. 조금만 더 와라… 사정거리 안까지 들어오면 정확하게 사격해 줄 테니 조금만 더 와라….”
죄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가 죄를 범하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성상 죄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죄를 그대로 두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죄의 문제를 처리해야 합니다.
슬쩍슬쩍 죄를 저지르는데도 당장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내가 주님을 위해 헌신했으니,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그냥 넘어가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통해서 돌이킬 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용서받은 죄인은 갈 수 있지만 죄는 천국에 못갑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주님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해주셨다.”라며 완전 속죄 교리를 입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속죄를 믿기 때문에 더욱 죄에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그러나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습니다(로마서 6:2).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떻게 그 죄 안에 더 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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