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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종교개혁이 복음을 구했다

▲ 사진: TGC 제공

“ 지금까지 어떤 교리적 논쟁도 칭의에 관한 논쟁만큼 더 맹렬하게 진행되거나 오랜 기간 영향을 끼친 적은 없다 ”

스위스, 제네바의 구시가지에는 제네바 대학에 인접해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 그 공원 가까이에는 존 칼빈이 매일 설교하고 가르친 교회도 있다. 그 공원에는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과 관련한 영구적 기념비가 있다. 주요 볼거리는 칼빈, 존 낙스, 울리히 쯔빙글리, 테오도르 베자 등의 조각상으로 꾸며진 장엄한 벽이다. 그 돌벽에는 라틴어로 ‘Post Tenebras lux’(“어두움 뒤에 빛이 있으라”)라고 새겨져 있다.

이 단어들은 종교개혁의 원동력을 잘 포착하고 있다. ‘어두움’이라는 표현은 복음의 암흑기였던 후기 중세시대를 의미한다. 그 당시 어둠은 점진적으로 최악에 이르렀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 교리의 빛은 거의 꺼져 있었다.

논쟁의 쟁점

종교개혁은 교회 역사에서 가장 예민한 사안으로 논쟁의 불길을 불러일으켰다. 교회는 그 이전에, 특히 그리스도의 본성이 쟁점이 되었던 4-5세기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4세기에 일어났던 아리우스파 이단은 니케아 회의와 신조로 결국 종결되었다. 5세기에는 단성론자와 네스토리우스파 이단과 이에 대항하는 교회의 투쟁이 칼케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명히 선언함으로 귀결되었다. 니케아와 칼케돈 이후, 이들 공의회의 결정은 역사적 기독교 정통성에 대한 기준으로서 그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하여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 교리는 거의 보편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여겨지고 있다.

모든 세대는 교회 역사를 통해 교리적 투쟁과 논쟁을 보아왔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단들은 교회를 괴롭혔고 격렬한 논쟁과 심지어 분열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교리적 논쟁도 칭의에 관한 논쟁만큼 더 맹렬하게 진행되거나 오랜 기간 영향을 끼친 적은 없다. 16세기에 논의된 다른 부수적인 쟁점들이 있었지만, 이것만큼 중심적이고 이것만큼 뜨거운 것은 없었다.

역사가들은 종종 칭의를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인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논쟁의 중요한 핵심 문제였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 간에 가장 깊은 불화를 만들고 수많은 종파로 나뉘게 하여 교회를 분열로 이끈 중심에는 바로 이 교리 문제가 있었다.

오직 믿음 아니면 실패

어떻게 하나의 교리에 대한 논란이 그렇게 많은 분파를 만들고 적대감을 초래할 수 있었는가? 사소한 일로 전쟁을 벌이는 경향이 있는, 논쟁하기 좋아하고, 시끄럽고, 호전적인 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단순한 갈등의 한 사례였는가? 별것 아닌 일에 소란을 일으키는 늘 있었던 오해의 한 사례였는가?

우리는 마틴 루터가 그 논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알고 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교회가 서거나 쓰러지는 신념”이라고 불렀다(교회를 세우거나 무너뜨리는 명제). 가장 핵심이 되는 이 주장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오직 믿음)라는 루터의 대표 명제와 연결되었다. 신약 성경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우리를 위한 그의 사역을 공표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사역의 유익들이 어떻게 신자를 위해, 신자에 의해, 신자 안에서 적용되는지에 대한 선언을 담고 있다.

칭의와 구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오직 믿음에 대한 루터의 주장은 칭의의 “방법”은 복음 자체에 필수적이고 본질적이라는 신념에 근거하였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복음과 구원에 필요한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복음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선 이후로,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은 칭의에 대한 논쟁을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두 본성과 같은 기독교의 본질적 진리를 논하는 것처럼 중요하게 여겼다. 복음이 없으면 교회는 무너진다. 복음이 없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개혁자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따랐다:

1.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복음에 필수적이다.
2. 복음은 기독교 신앙과 구원에 필수적이다.
3. 복음은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 필수적이다.
4.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고 교회 건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어둠을 밀어내기

개혁자들은 로마가 오직 믿음을 비난하고 거절하였을 때, 로마는 스스로를 정죄하고 참된 교회가 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성경적 기독교를 계속 이어가고 참된 복음을 가진 진실한 교회가 되기를 추구하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들이나 교파들의 창설을 촉진하였다. 그들은 개기일식의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복음을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일식 비유는 도움이 된다. 일식은 태양을 파괴하지 않는다. 일식은 태양을 모호하게 가린다. 그것은 빛이 있었던 곳에 어둠을 가져온다. 개혁자들은 복음의 빛이 다시 찬란하게 빛나고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일식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16세기 개신교 교회의 삶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온전히 환한 빛에서 보면, 그 시대에 다시 일어난 경건의 움직임은 복음의 힘을 입증한다. [복음기도신문]

“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고 교회 건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

R. C. Sproul | R. C. 스프로울 박사는 Ligonier Ministries를 설립했으며, 플로리다 주 샌포드 시에 위치한 Saint Andrew’s Chapel의 창립목사로, Ro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총장으로 봉직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성’(The Holiness of God)을 비롯하여 백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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