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신앙고백은 (현재 벨기에가 자리한) 네덜란드 남부 저지대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뿌리내린 개혁교회에서 유래하여 ‘벨직’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지게 되었다. 또 역사적으로는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대표하는 세 가지 신조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 ”
벨직 신앙고백은 개혁주의 신앙고백 가운데서도 매우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고백서에 속한다. 위대한 교회사가이자 신앙고백 연구가인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벨직 신앙고백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제외한다면 칼빈주의 교리 체계를 가장 잘 표현해 낸 신조”라고 평가했다. 이 신앙고백은 (현재 벨기에가 자리한) 네덜란드 남부 저지대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뿌리내린 개혁교회에서 유래하여 ‘벨직’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지게 되었다. 또 역사적으로는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대표하는 세 가지 신조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벨직 신앙고백은 개혁신앙에 관한 풍부한 진술만이 아니라, 그 최초의 작성자와 지지자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상황 때문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바로 그 신앙고백을 간략히 살펴보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고백서가 작성된 당시의 배경과 상황이고, 두 번째는 개혁신앙을 고전적으로 진술한 고백서의 독특한 내용이다.
배경과 상황
벨직 신앙고백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개혁 교회 목사인 귀도 드 브레(Guido de Brès)에 의해 최초로 작성되었다. 그는 제네바에서 사역한 칼빈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드 브레가 이 신앙고백의 주요 작성자이긴 하지만, 개혁 교회에 속한 다른 목사나 신학자들도 고백서의 최종적인 형태를 확정하는 데 기여했다. 그 가운데는 이후 라이덴대학교에서 저명한 개혁파 교수로 활약하게 될 프란시스 유니우스(Francis Junius)도 포함되었다.
벨직 신앙고백은 1561년에 처음으로 작성되었고, 승인을 위해 제네바와 다른 지역에 있는 개혁 교회들 앞으로 그 사본이 보내졌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는 1618-1619년에 개최된 도르트 총회 기간에 확립된 것이다. 그 당시 이 고백서는 개정을 거쳤을 뿐 아니라 공식적으로 네 개의 언어(원어인 프랑스어를 포함하여 라틴어와 네덜란드어 및 독일어)로 진술되었다. 또한 이 신앙고백은 작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페인의 펠리페 2세에게 헌정되었는데, 이는 네덜란드 전역에 통치권을 행사하던 그에게 개혁 신앙에 대한 관용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던 의도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출판된 벨직 신앙고백은 초기부터 네덜란드 개혁 교회 안으로 깊이 수용되었다.
이 신앙고백의 주요 작성자인 귀도 드 브레는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기 전, 자신의 아내 카타리나(Catherine)에게 다음과 같은 옥중 편지를 남겼다. “당신의 슬픔과 고뇌를 생각하니, 나는 기쁨과 즐거움 중에서도 근심하지 않을 수 없어 편지를 쓰게 되었소. 당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구려. [중략] 만일 우리가 더 오랫동안 함께 살기를 주님이 원하셨다면, 그분은 그리하도록 상황을 주장하셨을 거요. 그러나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은 그게 아닌가 보오. 그러니 우리는 이제 그분의 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그것만으로 만족하도록 합시다. 나는 당신이 주님 안에서 위로를 얻기를 기도하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당신이 겪는 모든 일도 오직 그분께 맡기기를 기도하고 있소. 그분은 과부의 남편이자 고아의 아비시니, 결코 당신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실 거요. [중략] 잘 있어요, 사랑하는 나의 카타리나! 하나님이 당신을 위로하시고 그분의 거룩한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하며, 당신의 충실한 남편, 귀도 드 브레.”
이 감동적인 글은 드 브레가 순교를 앞두고 기록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네덜란드에 있던 복음적인 개혁 교회 신자들이 당하던 고난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불굴의 신자들은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드 브레와 같이 ‘기쁨과 즐거움’을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부인하느니 차라리 “그들의 등을 채찍에, 그들의 혀를 칼에, 그들의 입을 재갈에, 그들의 전신을 불길에 내주는” 편이 낫다고 벨직 신앙고백의 서문을 통해 선언했다. 이러한 표현은 무의미한 공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네덜란드 종교개혁 당시에 일어난 투쟁으로 약 십만 명으로 추산되는 개혁파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벨직 신앙고백의 작성 목적과 그 고백서가 펠리프 2세에게 헌정된 일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 귀도 드 브레와 네덜란드 개혁파 신자들은 로마가톨릭의 통치권과 그 아래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관료들의 거센 박해에 직면했는데, 그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성경의 가르침과 거룩한 공회에서 초기에 합의한 교회의 신조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 결과, 벨직 신앙고백은 전체적으로 화합을 도모하는 어조를 띠게 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뿐 아니라 삼위일체에 관한 성경의 위대한 교리에 개혁 신앙이 얼마나 충실한 입장을 견지하는지를 주의 깊게 입증하는 데서 그러한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물론 핵심적인 조항에서 로마가톨릭 교리를 거절하고 있지만, 이 신앙고백은 개혁 신앙이 기독교회의 역사적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 주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벨직 신앙고백은 1559년에 출판된 프랑스 갈리아 신앙고백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갖추고 있지만, 그 작성 목적에서 독특한 차이를 드러낸다. 즉 벨직 신앙고백은 개혁 신앙이 ‘재세례파’ 신앙과 다르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작성되었다. 종교개혁 초기에 네덜란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재세례파 중에는 단순히 유아세례 관습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통치를 구현하는 도구로서 시민 정부의 관료들도 자신의 종으로 삼으신다는 사상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재세례파는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인 교회를 시민 사회의 질서와 날카롭게 구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역 수행이나 계약 체결 또는 세금 납부 등도 거절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세상과의 엄격한 단절도 주장했다. 벨직 신앙고백은 개혁 신앙이 그처럼 극단적인 종교개혁 분파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되었고, 그러한 목적이 이 신앙고백의 또 다른 특징적인 면모를 잘 보여 주게 되었다.
독특한 내용
벨직 신앙고백은 특정한 교리 문제를 다루기 위해 작성된 도르트 신조와는 성격이 다른 문서다. 오히려 그에 앞서 제작된 칼빈의 제네바 신앙고백이나 갈리아 신앙고백과 유사하게 개혁 신앙을 포괄적으로 진술하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넓게 살펴보면, 벨직 신앙고백을 구성하는 37개 조항의 내용은 사도신경의 세 가지 항목을 따라 배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서론에서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종교개혁의 관점을 제시한 후(1-7항), 삼위일체와 더불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사역에 관한 진리를 선언한다(8-13항). 다음으로 본론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진술되는데, 여기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종교개혁의 이해가 중세 로마가톨릭의 그릇된 가르침과 대조를 이루게 된다(14-23항). 끝으로 결론에서는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진술이 요약적으로 제시되며, 여기에는 교회와 성례에 관한 몇 개의 조항과 하나님이 지명하신 시민 정부의 공적 사역에 관한 하나의 조항이 첨가된다(24-37항).
이러한 벨직 신앙고백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는 차원에서, 개혁신앙을 증언하는 진술 가운데 눈에 띄게 나타나는 두 가지 특징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벨직 신앙고백은 이후 작성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같이 계시 특히 성경에 관한 개혁 신학의 교리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진술하는 특징을 가진다. 예를 들어 2항에서 하나님은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라는 두 가지 수단을 통해 ‘알려지신다’고 설명된다. 이에 따르면, 창조 세계 및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아래 진행되는 역사는 그분의 영원한 권능과 신성을 증언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담고 있는 일종의 ‘격조 높은 책’으로서 죄인으로 하여금 그분에 대한 무지와 반역에 어떠한 핑계도 댈 수 없게끔 만든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목적,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자신의 구속 사역을 ‘더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교회에 성경을 제공하셨다. 바로 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신적 저자의 완전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독교 신앙의 질서와 토대를 확립하기 위한 유일한 규범이 된다.
두 번째로 벨직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내용을 진술할 때 단지 교회 역사의 초기에 합의된 신조들을 반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에 따른 선택 및 자기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이해하는 개혁 신학만의 독특한 관점도 함께 강조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를테면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이신칭의 교리가 여기서도 분명히 진술되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22항인데, 이 내용은 신자의 칭의를 위해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의 본질에 관한 논쟁이 일어난 도르트 총회에서 약간 수정되었다. 그 조항은 분명하게도 그리스도의 의가 “그분의 모든 공로와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그 수많은 거룩한 행위”를 포함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신자에게 전가되는 그분의 의란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고 일컫는 부분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24항에서는, 신자의 칭의가 성화의 은혜와는 분명히 구별되지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서 두 가지 혜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공존하기에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 진술된다.
이러한 벨직 신앙고백은 기록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흔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당대만이 아닌 현재까지도 개혁교회의 신앙을 대변하는 최고의 역사적 진술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따라서 복음적인 신자라면 이 고백서를 가까이하고 그 진술이 작성될 당시에 얼마나 험난한 박해가 주어졌는지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수많은 순교자의 피로 승인된 벨직 신앙고백은 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베푸시는 주권적인 은혜를 확고하게 증언하며, 지금도 수많은 이들에게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을 보여 주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 넓게 살펴보면, 벨직 신앙고백을 구성하는 37개 조항의 내용은 사도신경의 세 가지 항목을 따라 배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
Cornelis Venema | 코넬리스 베네마 박사는 Mid-America Reformed Seminary의 학장이자 교리학 교수이며, 인디애나주 다이어에 있는 Redeemer URC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The Promise of the Future’를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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