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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이단적 만인구원론에 물든 세상

▲ 사진: unsplash

“유니테리언 사상과 만인구원론 사상은 서로 융합되어 하나의 종교로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 핵심에는 우리의 믿음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무엇이든 믿을 자유가 있다는 신조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유니테리언 만인구원론을 신봉하는 자(Unitarian Universalist)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그들 스스로가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오직 0.3퍼센트 인구만이 유니테리언 만인구원론을 종교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로 확인되지만, 그들의 신앙관은 우리를 둘러싼 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객관적으로 옳고 그른 신념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는 게 유니테리언 만인구원론이 내세우는 핵심적인 메시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현대 사회에 그런 메시지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상위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창조주 없이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이 땅의 어느 농작물이나 나무처럼, 인간 역시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창조되었다. 만일 우리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반드시 주어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이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 5장에 소개되는 포도원 비유를 잠시 생각해 보겠다.

포도나무와 권리

이사야는 유다를 침공한 앗수르 군대가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심판할 때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는지를 처음 네 장에 걸쳐 설명한다. 그 침공에는 영적인 의미가 깔려 있었다. 즉 유다 백성이 그들의 창조주를 버리고 그분의 계명을 무시했기에 바로 그 반역에 대해 심판받게 된 것이다. 이는 처음에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부터 하나님이 경고하셨던 심판이다.

이 심판은 매우 엄중했다. 이에 이사야는 그 백성에게 들이닥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어떠한지를 일깨워 주고자 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는 포도원 비유를 소개하게 된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이사야도 좀 더 친숙한 이야기를 들어 새로운 맥락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 백성이 더욱 선명하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사 5:1-2).

이사야가 설명하는 대로라면, 유다 백성은 포도원이고 약속의 땅은 기름진 산에 비유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기에 포도나무를 심으신 분이다. 또한 이 맥락에서 좋은 포도 열매는 공의를, 나쁜 포도 열매는 죄악을 나타낸다. 이 비유는 하나님이 심으신 포도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어 이제 그분이 열매를 제하고 땅을 갈아엎고자 하시는 계획을 보여 준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사 5:5).

우리는 포도나무의 관점으로 이 비유를 바라보아야 그에 함축된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왜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가?’ ‘포도나무가 스스로 원하는 열매를 맺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나쁜 열매고 무엇이 좋은 열매인지를 포도나무에게 알려 주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미국에 만연한 종교

이러한 물음에 답변하는 일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의 과제다. 즉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진 세계관에 대항하여 답변을 찾아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문화는 독립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누구도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든가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우리 스스로 인생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연방대법원 대법관직에서 은퇴한 앤서니 케네디(Anthony Kennedy)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표현했다. “자유의 중심부에는 바로 존재의 개념과 이 세상과 인생의 신비에 함축된 의미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자리한다.”

이와 같은 케네디의 발언처럼, 하나님도 그러한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으신다. 우리는 이 세상에 관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믿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아무 답변이나 하도록 하나님이 침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만일 이 세상이 우연의 산물이고 인간이란 자의식을 가졌을 뿐 지구상의 여타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라면, 이 짧은 인생에 어떤 의미도 있을 수 없다. 그저 인생을 즐기는 일 외에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혹 반대로,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가 계시며 인간은 바로 그분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라면, 우리의 존재 목적은 그분을 알고 경험하는 데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이러한 믿음을 갖는 이상, 선악은 더 이상 우리 스스로 규정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이사야는 후반부에 가서, 지음 받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에게 의문을 품는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이렇게 설명한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사 45:9-12).

유니테리언 만인구원론을 따르던 어린 시절

나의 경우는 부모님이 유니테리언 만인구원론을 주창하는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유니테리언 사상과 만인구원론 사상을 함께 받아들이며 성장하게 되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사상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유니테리언 사상은 삼위일체론이 아니라 일신론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예수님에 대해서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견해다. 또한 만인구원론 사상은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이 결국에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고 믿는 견해다. 이 두 가지 사상은 서로 융합되어 하나의 종교로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 핵심에는 우리의 믿음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무엇이든 믿을 자유가 있다는 신조가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종교는, 진정한 신앙이 필요 없는 교회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교회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그런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배웠다. 당시 우리에게 성경은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였고, 주기도문은 다음과 같은 버전으로 대체되었다.

“사랑이 우리 교회의 교리고, 진리 탐색이 우리 교회의 성례며, 봉사가 우리 교회의 기도다. 평화 가운데 더불어 살고, 자유 가운데 지식을 추구하며, 교제 가운데 인류를 섬기자. 그렇게 우리 모두 선언하노라.”

여기서 ‘진리 탐색’(quest for truth)이란 독립선언문에 언급된 ‘행복 추구’(pursuit of happiness)와 유사한 표현이다. 무엇인가를 탐색한다는 말은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함축한다.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이 새로운 나라에 살게 된 시민들에게 행복을 보장하지 못했듯이, 유니테리언 만인구원론을 세운 자들도 그 교인들에게 진리를 보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객관적으로 좋은 (혹은 나쁜) 열매

나는 어른이 되면서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실제로 그 교단에서 자란 아이들 중 12.5퍼센트 정도만이 끝까지 남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국인의 삶 자체에 그러한 사상이 기본적으로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늘상 경험하는 그 사상을 쫓으려고 굳이 일요일에 교회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로 그 사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러한 교단에서 탈퇴하는 데서 나아가 전혀 다른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이 세상과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신앙, 우리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우리 자신에 관한 타인의 생각을 초월하는 진리에 근거한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기독교인이 될 때 일어나는 가장 강력한 변화가 바로 거기에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에게도 그럴 듯하게 보일 필요가 없다.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든, 나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를 결정하는 이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나는 그 모든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어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삶에서 모든 이에게 주어진 선택 사항은 바로 그 객관적인 진리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주관적인 답변을 찾아 헤맬 것인가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선악의 개념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선악이 실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이사야는 하나님 백성에게 바로 그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했다. 이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좋고 객관적으로 나쁜 열매가 존재한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과일가게에 한번 가 보라. 제정신이라면 누구라도 포도원에 나무를 심고 계속해서 나쁜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쁜 열매만 맺는 포도나무를 땅에서 뽑아내는 일이 혹 가혹해 보일지라도, 그게 실은 유익한 일이다. 포도나무는 특정 열매를 맺기 위한 목적으로 거기에 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진리만이 유니테리언 만인구원론에 물든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인생의 어려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만들어 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또 그렇게 애써 찾아낸 답변이 왜 그리 시원찮은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열매를 맺는 인생의 답변은 따로 있다. 그 답변은 이천 년 전에 우리에게 주어졌다. [복음기도신문]

“이 세상과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신앙, 우리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우리 자신에 관한 타인의 생각을 초월하는 진리에 근거한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

조나단 작스 Jonathan Tjarks | 미국 스포츠와 대중 문화 웹 사이트 및 팟 캐스트 네트워크 The Ringer의 작가. 자신의 블로그에 기독교와 성경에 관해 글을 올리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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