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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결혼은 지옥의 절망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과정이다

사진: pixabay.com

“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되면 행복하지 못한 날들이 많아진다. 그러나 결혼의 목적이 거룩이 되면, 행복은 따라오는 것이다 ”

팀 켈러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하면서 “결혼이란 지옥의 절망 가운데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이라 말했다. 한눈에 반해 사랑하고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은 ‘지옥의 절망’이라고 표현할 만큼 어려운 현실이다. 무엇이 그토록 아름답던 결혼을 지옥의 절망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 절망 가운데 하늘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결혼을 지옥의 절망으로 몰아가는 자기중심성

우리는 문화의 아들딸로 살고 있어서 문화라는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문화를 평가하고 도전하는 방식의 성경적 세계관이 형성되지 않으면, 분별없이 문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게 된다. 오늘날 문화 내러티브 중의 하나는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으로 결혼을 보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도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고 결혼의 목적 또한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었다.

뉴욕 타임즈 칼럼리스트인 타라 패커 포프는 현대인들이 제 각각의 인생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결혼을 통해 오직 자신의 목표를 도와줄 동반자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날의 결혼은 공익에 이바지하는 공적인 제도였지만, 이제는 개인의 만족을 위한 사사로운 계약이 되었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결국 결혼을 ‘지옥의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이다. 지독한 자기중심성이 서로를 연합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의 주장만 하게 하는 것이다.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결혼을 해서 깨닫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팀 켈러는 자신에게 찾아와서 “사랑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애정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하지 않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만 그럴까요?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는 이들은 빠른 공을 쳐내기가 이토록 힘든 줄 몰랐다고 푸념하지 않을까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위대한 작품을 쓰고 싶은 소설가가 있다면 소설을 쓰고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고 말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딱 맞는 상대방을 원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사람은 결혼을 하기 전에는 상대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에게 딱 맞는 짝을 찾는 것은 헛된 꿈이라 말하면서, 결혼이 시작되면 더 이상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살게 된 낯선 상대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법을 배우는 것이 결혼이라고 말한다.

결국 결혼이란, 지독한 자기중심성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를 지옥이라는 절망으로 몰아가는 자기중심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지옥의 절망 가운데 하늘나라를 세우는 은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오늘날 문화 내러티브는 남녀평등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이전의 가부장 제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좋아 보이지만, 평등을 강조하는 것으로 세상은 평등해지지 않는다. 평등을 강조하면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완벽한 평등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평등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복종하는 상호복종을 이야기 한다. 연합의 핵심에는 서로 복종하는 것이 있고,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기를 기뻐하는 자기 부인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세상은 사랑에 대해 자기중심적인 감정을 나열하지만, 성경은 사랑을 정의할 때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고전 13:4~5)라고 말한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고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는 일이다.

결국 결혼이라는 지옥의 절망에서 하늘나라를 세워가려면 자기의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를 사랑하는 이타적 지향성을 통해 연합의 행복을 느끼시듯이, 우리의 가정도 서로를 위한 섬김과 희생을 통해 참된 연합이 주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되면 행복하지 못한 날들이 많아진다. 그러나 결혼의 목적이 거룩이 되면, 행복은 따라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섬기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C. S. 루이스는 사랑의 실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신경 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세요. …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그만큼 더 그 사람을 싫어하는 내 모습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싫어도 잘해주면 어느새 싫은 마음이 줄어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친절하게 대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며,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좋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좋아하게 되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사람들까지 말이지요”

이 말은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척하고, 용감하지도 않은데 용감한 척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선해지는 것은 선을 느껴서가 아니라 선을 실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용감한 사람은 실제로 용감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는 사람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넘어서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감정이 행동을 따라간다.

에드먼드 모건이 쓴 ‘미국의 노예제도, 미국의 자유’를 보면 백인들이 처음 흑인을 노예로 삼을 때는 그들에게 전혀 적의를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경제적인 이유로 노예로 부리기 시작하자 점점 흑인들을 경멸하게 됐고, 심한 인종적 멸시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들을 멸시했기 때문에 노예로 삼은 것이 아니라, 노예로 부렸기 때문에 멸시에 이른 것이다. 사랑도 감정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상대방에게 사랑의 행위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란 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대로’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조건 없이 자격 없는 나를 용납하고 사랑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 감정이 더 소중한가 하나님의 말씀이 더 소중한가의 문제일 것이다.

팀 켈러는 목회를 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이 끌리고 정이 가는 사람들을 골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목회자가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늘 친구가 되어주어야 했고, 그들과 대화해야만 했다. 그중에는 다른 일로 왔다면 그다지 사귀고 싶지 않았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회자였기 때문에 누군가 대화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누군가 병원에 있다고 하면 그곳에 갔고, 어느 집 아들이 가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차를 타고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심방도 하고 졸업식도 가고, 그렇게 동네 교회 목회자가 되면서 감정적으로 끌리지 않는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해 보이라는 명령을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그런 실천의 삶이 그를 변화시켰다. 성격이 고약하기로 소문난 부부를 품고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그 성격 때문에 친구들이 없는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어렵게 낸 여름 휴가를 그 집 식구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엔 감정이 생기지 않았지만, 그들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감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거룩하고 신령한 신앙을 가졌기 때문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어쩌다 보니 루이스가 설명한 실제적인 원리들을 실천하게 된 덕분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도 꾸준히 사랑했고 그 결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감정이 행동을 따라잡기에 이른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사랑하면 언젠가는 마침내 사랑스러워진다. 현대 문화는 사랑하는 감정이 사랑의 행위의 토대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행위를 변함없이 계속해 나가면 사랑하는 감정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사랑이지만,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이어주고 지켜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결혼 그 자체가 주는 언약이다. 그 언약이 우리로 하여금 감정을 넘어선 사랑을 실천하게 하고, 지독한 자기중심성을 넘게 한다. 내 감정과 환경에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과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헤세드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자녀가 18세가 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할지라도 부모는 극진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성경적 패턴에 이끌려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느낌과 상관없이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해 온 까닭에 이제는 아낄 만한 구석이 있든 없든 자녀들을 깊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은 언약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감정과 행동에 상관없이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부부의 관계는 사랑이 없으면 감정을 거둬들이는 이익 관계로 변질되었다. 개인의 만족이 없으면 더 이상 결혼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하실 때, “참으로 네가 매력적이고 너무 선하기 때문에 나의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지만,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우리의 무지를 긍휼히 생각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스러워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배우자를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우자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결혼이란, 지옥의 절망 가운데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몇 년 전 결혼식 주례를 맡으면서 결혼 당사자들에게 결혼 서약서를 써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살아가면서 늘 결혼 서약서를 보면서 다시금 결혼의 본질로 돌아가라고 권면했다. 그들이 쓴 서약서는 다음과 같다.

“나는 지옥의 절망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 우리의 결혼이 갖는 의미임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이기심이 우리 둘을 지옥으로 몰고 갈 때, 자격 없는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의지하며 배우자가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결혼은 지옥의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격없는 나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다. 결국 결혼이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가장 어렵지만, 또한 영광스러운 과정이다. [복음기도신문]

“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사랑이지만,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이어주고 지켜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결혼 그 자체가 주는 언약이다 ”

고상섭 | 고상섭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그 사랑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팀 켈러 연구가’로 알려져 있으며 CTC코리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 공저한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를 출간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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