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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교회의 문제를 보며 떠나는 이들에게

사진: unsplash

“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상처를 다름 아닌 교회를 통해 치유 받도록 계획하셨다. 물론 세상에는 건강하지 않은 교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 역시도 존재한다 ”

가끔씩 교회가 병원 응급실처럼 느껴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눈가에 고통이 서린 방문객이 보인다. 이전에 다니던 교회가 복음을 변질시키고 더럽혀서 격한 슬픔을 느꼈던 사람이다. 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앞서 출석하던 대형 교회를 빠져나와 우리 교회에 함께 등록하게 된 몇몇 교인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어처구니 없는 행실로 부도덕한 모습을 보인 나머지 실망해서 교회를 떠났고, 지금은 그 문제를 알게 된 또 다른 부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다시 새로운 얼굴을 찾아 인사하려고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이전 교회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기로 한 세 명의 성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교회 리더들이 너무 타락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세 명 중 한 사람은 그 타락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약간이나마 나눠 보려 했으나 결국에는 형언하기 힘들어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마치 그 실상을 몇 마디라도 입에 담으면 비통한 기분이 가실 것 같지 않은지 몸짓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대신 표현하려고 했다.

나도 이러한 상황이 그저 생소하게 여겨진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는 이와 같은 사례가 넘쳐 난다. 어떤 부부는 지나치게 돈을 밝히면서 언사가 거친 목사로 인해 교회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목사는 교회를 떠난 부부 가족을 피하라며 전체 회중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에 그 부부는 많은 친구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 한 자매는 앞선 교회에서 번영복음을 선전하는 모습을 보고는 발길을 끊게 되었다. 그러자 가족처럼 지내던 이전의 지체들은 그녀가 우리 교회로 나오게 되면서 광신도로 바뀌었다고 조롱했다. 그리고 교회의 요청을 따라 직장을 그만두게 된 형제도 있다. 그 교회가 추진하는 개척 운동의 일환으로 그 형제에게 사직을 권하며 새로운 예배 인도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형제는 직장을 그만두고 이삿짐도 다 싸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교회가 그를 밀어내고 말았다. 나이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이처럼 엄청난 자원과 능력을 갖춘 교회들이 결국에는 삼손과 같이 곁길로 나가거나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야말로 깊은 번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교회들이 그릇된 길을 가는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피를 흘리며 주저앉고 만다. 그렇게 탈선한 교회들로 인해 상처 받은 신자들을 회복시키는 일 또한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니다.

어쩌면 당신 역시 사랑하는 교회를 떠나야 했던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교회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규모가 더 큰 다른 교회에 병합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교회의 지도층이 전반적으로 제 기능을 못해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기조차 어려울 수도 있다. 심지어는 교회의 치리 구조상 고집불통인 리더십을 교체하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어떠한 상황을 만났든 간에, 당신은 깨닫는다. 한때는 가정처럼 편히 여겨지던 교회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다가 어딘가에 버려진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상태에 처한 당신이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섯 가지 지침을 한번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교회를 떠나려거든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떠나라

당신은 앙심을 품고 교회를 떠나거나 단순히 어려운 상황을 견뎌 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공동체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 나는 실제로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는 원래 다니던 교회로 다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면한다. 물론 우리 교회도 마음이 깨지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원하지만, 그들이 단지 교회에서 말다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공동체를 떠나게 되기를 원하진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을 비방한다면, 그 사람과 화목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필요한 대화를 해야 한다(롬 12:16-18). 그러나 혹 교리적인 또는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 교회의 사명이 돌이키기 힘든 상태에 빠졌다면, 당신 자신과 가족 모두를 지키기 위해 그 교회를 떠나는 게 상책일 수 있다. 물론 그때도 성도 간의 연합을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몫을 감당했는지는 분명히 점검해야 한다(엡 4:2-3).

2. 한 교회를 떠나기로 한 일은 올바른 결정이 될 수 있어도, 교회 자체를 떠나기로 한 일은 언제나 잘못된 결정임을 명심하라

특정 교회를 떠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교회 자체를 떠나는 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상처를 다름 아닌 교회를 통해 치유 받도록 계획하셨다. 물론 세상에는 건강하지 않은 교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 역시 존재한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예수님이 여러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칭찬과 책망을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령 사데 교회를 향해서는 사실상 죽은 자와 같다고 하시며 엄중하게 질책하시는 반면,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칭찬만 하신다. 또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가 있으나 그 문제를 잘 극복해 내라고 요구하신다. 여기서 사명이 완전히 사라진 교회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제도화된 교회를 거부하는 일은, 제도화된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이 된다(엡 4:11-16). 우리는 오히려 예수님이 친히 정하신 질서를 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마 18:17). 결국 신자들의 모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격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는 교회에 가야 한다(히 10:25). 따라서 믿음과 행실에서 본이 되어 기억에 담아둘 만한 리더가 많은 교회를 찾아야 한다(히 13:7). 내가 알기로는, 그런 교회가 많이 있다.

3. 교회에서 당한 아픔을 이야기하되 지혜롭게 이야기하라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고통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그 아픔을 싸매거나 경감시키려 한다. 혹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결국에는 험담이나 비방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또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모든 대화 때마다 과거에 당한 고통을 화제로 꺼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한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런다지만, 대개는 적의나 원한 또는 분노가 이면의 동기로 자리하고 있을 때가 많다.

위의 두 경우 모두 건강하지 못한 태도다. 그보다는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절제된 말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지체와 더불어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편이 좋다.

4. 슬픔도 하나의 과정임을 기억하라

혹 당신이 선호하는, 복음중심적 가치가 실현되는 교회를 찾았다 하더라도, 다시 공동체에 깊이 참여하려면 당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상처가 아물고 심장이 다시 뛰도록 스스로에게 시간을 내줘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새로운 교회에 참여하는 부담이 클수록 서서히 익숙해지도록 행동하는 게 지혜롭다. 때로는 치유와 적응의 기간을 두는 것이 공동체를 다시 섬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5. 당신이 떠난 교회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한 지체들을 이해하라

분명 어떤 친구들은 당신이 다니던 교회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당신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당신이 얼마나 부드러운 자세로 교회를 나왔든지 간에, 당신으로부터 판단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자동적으로 품게 될 수도 있다. 혹은 아예 당신을 못 본 체하거나 당신이 교회 리더십에 불순종하고 나갔다며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그들을 이해하려고 힘써야지, 그들에게 앙갚음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교회를 떠난 일을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바라보도록 모든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사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수많은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는다. 또 안타깝게도 목사의 부적격한 모습이 더 심하게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설득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설득이 불가능한 경우와 진리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는 경우를 서로 구분하여 상대를 이해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다니던 교회에 남아 있는 어떤 교인에게는 당신이 떠난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교인은 당신과의 교제를 박탈당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 반응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기를 바란다. 오히려 인내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6. 슬픔 속에서 성장을 꾀하며 앞을 향해 나아가라

당신은 교회를 옮길 때 수반되는 정서적인 부담을 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예측할 수 없이 분노가 치민다거나 그 감정이 가라앉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이전의 친구들이 당신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으면 버림받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가족을 잃어버린 것처럼 슬플 수도 있다. 아마 새로운 교회에도 당신의 마음을 공감해 줄 신실한 교인들이 있겠지만, 그들이라고 당신이 처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당신이 겪는 슬픔은 이처럼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자들을 먼저 보낼 때 느끼는 슬픔과 같이, 우리는 소망을 가진 자로서 현재의 슬픔을 겪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악한 의도까지도 우리를 위해 선한 결과를 내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배후에서 역사하신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사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신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러므로 적절한 때에 슬픔의 재 가운데서 일어나, 다시 한번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를 찾길 바란다. [복음기도신문]

루카스 오닐 Lucas O’Neill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를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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