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권적인 은혜의 복음 (4)
마음껏 죄를 저지르고 그 결과를 맞이할 때, ‘에이! 죽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죽음은 맘대로 오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러운 정욕과 맞바꾼 음탕하고 소망 없는 탕자에게 육적인 향연을 가져다준 모든 것들은 그를 비웃고 떠나갔다. 그는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 돼지 치는 집에 갔다. 유대인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지만, 먹고 살 게 없으니 돼지 치는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에게서 그저 밥이라도 얻어먹어야 했다. 마침 흉년까지 닥쳤다. 음식은커녕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도 먹고자 하지만 그것조차 먹을 수 없었다. 죽어지진 않고 비참한 지경에 이른 그에 대해 성경은 말한다. “비로소 궁핍한지라”(눅 15:14b)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 15:17~19)
이 말씀은 ‘나는 진짜 죽어 마땅한 놈이구나, 용서와 개선의 여지가 없는 놈이구나, 쓰레기 같은 놈이구나! 난 끝이구나!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은 죄인이구나!’라는 말이다. 부흥회나 회개 집회에 참석한 수준이 아니었다. 더 갈 데가 없을 정도의 바닥,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진 심령,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목숨을 붙들고 있던 마지막, 그에게 떠오른 것은 아버지였다. ‘내가 한 짓으로는 용서가 불가능하지만 가서 부탁이라도 해봐야겠다. 원래 아들은 없어졌다고 생각하시고 그 많은 품꾼들 일 시키고 밥 먹이듯이 저를 그렇게라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얘기나 하러 가야지.’ 그러나 선뜻 나설 수도 없었다. 너무 멀리 왔기 때문에 돌아가기에는 장애가 너무 많았다. ‘아버지를 만나면 뭐라고 얘기하지? 잘못했다고 할까? 잠깐 미쳤다고 할까?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 내가 뭐라고 해야 아버지 앞에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그에게는 근거가 없었다. 그가 택한 것은 ‘그저 불쌍한 품꾼의 하나로 보아주십시오.’였다.
드디어 그곳을 박차고 일어난다. 발작을 일으키도록 열광하던 광란의 터, 육신, 병든 자아의 정욕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본성적으로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먹고 마시며, 죄 중에 끌려 다니면서도 죽을 때까지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없던 죄인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누가 여기에서 돌이켜 본성을 거슬러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 심령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2018년 4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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