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정교회 지도자 사무엘 램 목사 88세로 소천
오랫동안 중국 가정교회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사무엘 램 목사(사진)가 지난 8월 3일, 88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침례교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램 목사는 19세 때 중국 동부지역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전파 사역에 헌신했다. 마오쩌뚱(毛澤東)의 공산혁명 이후 그는 반혁명분자로 내몰려 1955년부터 1957년까지 투옥됐다가 석방됐으나 1958년에 다시 체포돼 20
년 동안 노동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램 목사는 복역기간 대부분을 탄광의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보냈지만, 그곳에서도 계속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수용소 간부들의 횡포와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에도 램 목사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얼마 후에 광저우에서 가정교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광저우의 공안당국은 그 교회의 모든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처럼 끊이지 않는 고난 속에서 그는 ‘박해가 심할수록 교회는 성장한다’라는 고백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성장 요인을 자신의 박해에 대한 소식이 서방국가들에 널리 알려진 것과 공안당국이 점점 거세게 교회에 핍박을 가한 사실 이 두
가지를 꼽았다.
램 목사가 섬겼던 교회 성도는 현재 4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그 숫자가 늘고 있다.
2012년 초 국제 기독인권단체ICC(Int’l Christian Concern)와 인터뷰에서 램 목사는 “광저우의 공안당국이 교회의 새로운 신자들에 대한 지침을 비공식적으로 제안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램 목사는 그러나 이러한 성장을 배경으로 중국가정교회가 안전하다고 과도하게 자신감을 내비치는 전망들에 대해서 항상 조심스럽게 반응했다.
램 목사와 인터뷰를 가졌던 ICC의 리안 모건은 “그가 거센 박해를 이겨냈을 당시를 증언하면서 그의 얼굴에 나타났던 기쁨과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친절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삶과 사역은 우리 중국 형제 자매들의 꺾이지 않는 신앙과 한때 흑암 가운데 갇힌 것 같았던 중국의 상황 속에서 일어난 기적적인 부흥에 대한 생생한 증거임에 틀림이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ICC는 또 램 목사가 오픈도어선교회측 관계자와 만나 남긴 고백을 전했다.
“우리는 고난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며, ‘언제든지 체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항상 몇 벌의 옷과 신발 그리고 칫솔이 들어 있는 가방을 준비해 두었다.
그래서 경찰서로 불려갈 때 그것을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늘 공안당국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