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복음은 미움을 사랑으로 바꿔주는 능력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에 순종하는 조명숙 권사(두암중앙교회)

조명숙 권사의 집에 들어서자 조 권사와 동생 조귀례 집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조 집사는 모야모야병과 치매를 앓고 있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기저귀를 차는 ‘아이’가 된 동생을 조 권사가 돌보고 있었다. 매일 병원에 가야 하는 동생이 기도모임에 가는 것을 좋아해 일주일에 두 번은 병원 대신 기도모임으로 향한다. 비록 치매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동생이지만 10남매 중 유일하게 복음을 만난 조 집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동생이다. 조 권사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 얼굴이 매우 밝으시네요. 주님이 힘을 많이 주시나 봐요. 주님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렸을 때 우리 가정은 늘 불화가 끊이지 않았어요. 제가 10남매 중 장녀에요. 아버지가 작은 엄마까지 얻어서 자식을 얻었어요. 할머니는 아들을 못 낳는다고 엄마를 구박했어요. 엄마의 우는 모습을 늘 봤어요. 그런데 엄마가 불쌍하지 않았죠. 엄마가 할머니한테 구박을 받다가 못 참고 대들면 분명 할머니가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저는 할머니 편을 들었어요. 어른한테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다음에 결혼하면 시할머니까지 있어도 정말 잘 해야지 마음을 먹었어요.”

– 어린 나이인데도 그런 생각을 하셨군요.

“그때는 아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시대였기 때문에 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갔어요. 부품공장이었는데, 거기서 손가락 한 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어요. 너무 절망이 되고 살고 싶지도 않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울고 있는데 엄마가 하신 말씀이 기억났어요. “너는 큰 딸이다. 네가 행동을 잘못하면 동생이 따라하니까 책임이 무겁다.” 그래서 죽지도 못했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교회에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동료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됐는데 말씀이 꿀맛 같았어요.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까 하며 놀라웠어요. 저는 그때 저 자신을 귀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배운 것도 없지, 가족들은 매일 싸우지, 손은 다쳤지. 그런데 한 교회 청년이 나를 너무 사랑해주고 섬겨주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나같이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느껴질 만큼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 나이가 18살이었어요.”

불우한 환경에서 주님 만나 행복한 신앙생활 시작

– 절망 중에 주님이 교회로 인도하셨네요. 은혜네요.

“공장에 다니면서도 새벽 예배에 안 빠졌어요. 그렇게 6개월을 다녔더니 주일학교 선생님을 시켜줬어요. 과자 봉지 사가지고 다니면서 토요일 늦게까지 전도했어요. 아이들이 나 같은 어린 시절을 안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저는 어렸을 때 풀 한 포기만 봐도 도대체 어떻게 이게 났을까 늘 궁금했어요. 사람은 어디서 났을까. 이 세상은 어디서 났을까. 어른들한테 계속 물어본다고 머리도 많이 맞았어요. 그런데 교회에 와서 그 모든 궁금증이 해결됐어요.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이 믿어졌고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됐어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요. 주님을 위해서 뭔가 은혜를 갚아야 된다는 마음으로 교회 청소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했어요.”

–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매우 크게 느껴지셨군요.

“하루는 훗날 저의 시어머니가 된 권사님이 목사님을 통해서 아들을 소개시켜줬어요. 그 권사님과 저는 늘 함께 새벽 예배를 드리는 사이였어요. 그때는 권사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나 같다고 생각했어요. 교회에서는 실력도 있고 훌륭한 청년도 많았는데 권사님은 저에게 아들을 소개시켜주고 싶어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제가 마음먹었던 게 있잖아요. 나는 결혼하면 시어머니를 정말 부모처럼 모시고, 복을 받고 싶었어요. 어버이 주일에 설교하시는 것도 룻 이야기잖아요. 시어머니 잘 섬겨서 그 집안에서 왕이 나왔다는 거요. 그렇게 나도 복을 받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 청년은 형님이 계시지만 자기가 부모를 모셔야 된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게 기도응답인 줄 알고 그와 결혼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어머니가 교회에서 알던 분이 아니었어요. 남편도 교회에서 알던 청년이 아니었죠.”

기도응답으로 여긴 결혼생활,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 어떤 모습이었죠?

“남편은 결혼 한 달 후부터 술을 많이 마셨어요. 직장이 서울이었던 남편이 서울에 가고 나면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고된 시집살이를 했어요. 그래도 불평이 안됐죠. 시댁 식구들에게 잘해서 복 받으려고요. 물론 어려움이 있었죠. 그 어려움을 신앙의 도움을 받던 분에게 나눴어요. 어머니와 힘든 일이 있을 땐 그분에게 나눴어요. 말씀으로 권면해주시면 그대로 순종했죠. 그런데 그분 때문에도 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저는 친정에서도 반대하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어디에도 제 사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었어요. 그런 저의 사정을 알면서도 저를 힘들게 했어요. 게다가 어머니는 갈수록 강퍅해지셨죠. 남편을 여의고 일찍 홀로 되셔서 아들이 결혼한 게 마치 아들을 빼앗기는 기분이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와 많이 어려웠어요.”

– 안팎으로 고난을 당하셨네요. 그 후에 어떻게 됐죠?

“그러다 2006년에 갑상선암에 걸렸어요. 근데 암이 무서운 게 아니라 이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세상 사는 것을 놓고 싶었어요. 막내도 대학에 들어갔으니 내 손이 없어도 되고, 남편도 젊으니까 재혼하면 될 것 같았어요. 주님이 수술할 때 데려가셨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고난이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지금은 선교사로 나가있는 딸에게 정신이상이 왔어요. 딸은 엄마가 그동안 힘들게 살면서 고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는데 그것 때문에 결국은 죽을 병에 걸린 것 같다며 힘들어했어요. 제가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앉혀 놓고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한 힘든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하루는 아들이 얘기해 주더군요. 우리 딸도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다 알았던 거죠. 그 고통을 함께 겪어서 그런지 나중에는 바보가 되어 버렸어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어요. 버스도 탈 줄 모르고, 엄마 떨어지면 불안해했어요. 그때가 대학 다닐 때인데요. 그때 절망이 찾아왔어요.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그 결과가 고작 딸이 미치는 건가? 생각이 들었어요.”

암으로 고통하던 중 자녀까지 정신 이상

– 너무 힘드셨겠네요. 따님은 어떻게 됐나요?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요. 먼저 저부터 치료를 받았어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의사한테 쭉 이야기하는데 의사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냐면서 도리어 화를 내더라고요. 남편과 아들을 데려오라고 했죠. 의사가 “엄마는 지금 수술한 상태이고 이대로 할머니와 계속 같이 살면 엄마 금방 죽는다.”고 얘기해 주더군요. 그래서 분가하라고요. 그러나 분가는 못했죠. 교회만 옮겼어요. 딸도 항상 교회가면 울기만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 가정에 어려움이 너무 컸네요.

“병원도 다녔지만 저는 내적치유도 3년 동안 받았어요. 저를 힘들게 한 사람들이 용서가 안 돼서요. 한번은 이불 속에 들어가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몽둥이로 이불을 두들겨 팼어요. 차라리 내 생명 거둬 달라고 밤마다 기도했어요. 하나님은 사랑을 하라고 하시는데, 시어머니나 내게 못된 짓을 했던 사람에게 사랑은 커녕 분노만 일어나니까요. 사랑을 주시던지, 아니면 내 생명 거둬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그때 갈라디아서 5장 13절 말씀을 주셨어요.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요.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라고요. 그런데 순종을 못 하겠더군요. 오히려 나를 곤경에 빠뜨린 사람은 세상에서 승승장구를 하니 더 기가 막혔죠. 물론 복음을 만나고 나서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됐지만 그때는 어려웠어요.”

–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주님이 나를 붙들지 않았으면 절대로 예수를 믿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때, 한 권사님이 중보기도학교를 해보라고 권유해 주셨어요. 우리 딸은 바보가 됐지, 남편 퇴직했지. 안타까운 마음에 뭔지도 모르고 좋다고 하니까 신청했어요. 그런데 우리 딸을 그냥 둘 수가 없었어요. 딸은 훈련을 받을 상태도 아니었는데 혼자 둘 수도 없었죠. 여러 과정 끝에 학교 측의 배려로 강의실에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정신이 없는 아이가 강의 시간도 되기 전에 항상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어요. 강의를 들을 때는 완전히 집중하고요. 자기는 훈련생도 아니면서요. 아이는 강의를 들으면서 계속 울었어요. 이후에 복음학교에도 저와 남편, 딸이 함께 갔어요. 딸은 일주일 동안 머리도 안 감으면서 늘 가장 먼저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로 갔어요. 감사하게도 그 복음이 우리 딸을 회복시켰어요. 이후에는 해외로 선교아웃리치도 다니면서 신학을 하고 선교사로 헌신했어요.”

<이상 227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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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조명숙 권사(오른쪽)와 동생 조귀례 집사. 제공: 조명숙 권사

복음은 용서를 가져왔어요

– 너무 감사한 이야기네요. 복음이 그런 능력이 있지요.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요.

“네. 맞아요. 저도 복음을 만나면서 그동안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게 됐어요. 지금은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을 회개시키셔서 살려달라고 기도해요. 정말 지옥 가는 건 못 보겠더군요. 저는 제가 열심히 하면 우리 가족들이 복을 받고 예수를 믿을 줄 알았어요. 저는 명절 때도 예수 믿는 본을 보여야 되니까 3일 전부터 약을 먹었어요. 몸이 힘들어서 얼굴에 구김살이 있으면 안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 용서도 안 되고 노력해도 사랑도 안됐어요. 그런데 복음을 듣고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한순간에 그들이 품어졌어요. 오히려 긍휼해졌어요. 내가 열심히 살았던 게 나를 사랑했던 것이구나. 내가 하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악독한 죄였는지를 알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는데 말이에요.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면 충분했어요. 그렇게 화해하려고 해도 안됐는데 지금은 주님이 화해도 시켜주셨어요. 그렇게 미웠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사랑으로 바꿔주셔서 살 것 같아요.”

– 노력이 아닌 은혜로 회복이 된 거군요.

“조카 하나가 지금은 주님을 열심히 믿고 있어요. 저의 친정 식구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염려하고 있으면 딸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요. 반드시 열매 맺힌다고요. 우리 친정 식구들은 병으로 예수를 믿게 됐어요. 저는 다른 사람은 다 믿어도 우리 부모님은 안 믿을 줄 알았는데 친정엄마 쓰러지셔서 제가 간병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 아버지도 간병하다가 예수 믿고 가게 하시고요. 지금은 그런 동생 한 명이 제 옆에 있네요.”

– 귀례 집사님 말씀인가요?

“젊을 때는 그렇게 믿으라고 해도 거절했는데, 2014년도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어요. 그 이후에 회복되고 복음학교도 하고 예쁘게 신앙생활을 했는데, 2017년도에 다시 쓰려졌어요. 지금은 모야모야병과 치매도 함께 왔어요. 우리 동생은 항상 누가복음에 나오는 세리처럼 기도를 해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줘서 감사합니다. 이제 선교사로 살겠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가 되어버려서 기저귀를 하고 있지만, 기저귀를 떼면 헤브론원형학교 교육선교사로 가고 싶다고 해요.”

– 동생을 돌보시면서 힘들진 않으세요?

“10남매 중에 정신질환을 앓았던 두 동생이 있었어요. 저도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 둘이 아프면 꼭 나만 찾는 거예요. 나도 우리 동생들을 피하고 싶은데 주님이 제 옆에 그 둘을 딱 붙여 놓으셨죠. 감사하게도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먹으면서 둘 다 괜찮아졌어요. 지금 셋째 동생은 많이 연약하지만 일을 다니면서 돈을 벌어요. 넷째는 치매가 있으니까 어쩔 때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마음이 지칠 때도 있죠. 그러나 주님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과정이 없었으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제게 허락된 모든 상황들이 감사해요.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 모두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면 선교도 가는데, 더 한 것도 해야죠. 동생이 하도 엉뚱한 짓을 많이 하니까 화도 냈다가, 다시 말씀 앞에 엎어졌다가를 반복해요. 내가 사랑하고 섬길 날도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잖아요. ‘주님 나는 사랑이 없어요. 사랑하는 마음 부어주세요.’ 기도하면 주님이 사랑을 부어주세요. 동생을 재울 때면, ‘우리 귀례는 존귀한 사람. 예수님 핏 값 주고 샀으니까 존귀한 사람이야.’라고 고백해줘요. 주님은 존귀하게 여기는데 난 안 그럴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도 감사한 건 우리 10남매 중에 6명이 교회에 나가요. 모두 구원해달라고 기도만 올려드리죠. 때가 되면 주님이 일하실 것을 믿어요.”

–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우리 아들, 며느리와 남편이 복음을 누리게 되길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 교회가 죄에서 떠나 거룩하게 되길 기도하고 있어요. 제가 신앙의 도움을 받던 사람이 죄에 넘어진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커요. 그것을 놓고 홀로 골방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을 믿어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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