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고갱은 서양 문명에 대한 환멸로 미지의 섬 타히티로 떠났다.
그가 이 섬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타히티의 원시 자연과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원주민들과의 생활에 흠뻑 빠져 그렸던 그림이 바로 이 작품이다.
오른쪽에 그려진 건강한 피부의 엄마와 아들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을 타히티 원주민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불과 두 해 전, 십자가의 그리스도 모습을 그렸던 일로 미루어볼 때, 이작품에도 고갱의 신앙적 질문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고갱의 질문은 어떤 것이었을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고갱은 서양의 문명을 탈피하고자 타히티로 향했다.
이 그림에 나타난 열대 과일, 식물의 화려한 원색과 구릿빛 피부색의 원주민의 모습에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표현되었고, 그것은 또한 고갱의 환희였다.
자연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서양,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떠나온 유럽 뿐 아니라, 열등해보였던 원시 섬 타히티에게까지 동일하게 부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당시 유럽은 비문명권의 나라들을 착취하고, 식민지로 삼았기에, 고갱의 눈에 기독교 국가의 제국주의적 정책은 모순 중의 모순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럽의 기독교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단지 형식적인 문화로 전락했음을 개탄했고 이를 그림을 통해 비판하고자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이 신앙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신성모독을 하지 않으면서 유럽의 ‘형식화된 기독교’를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나 그리스도의 모습 대신 성모자상을 원주민 모습으로 그렸다.
그러나 고갱은 해답을 타히티가 아닌, 말씀에서 찾았어야 했다.
비록 타히티에서 하나님 사랑의 흔적은 찾을 수 있을지언정, 그것은 뿌리 없는 막연한 감정일 뿐 완전한 진리에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진정한 신앙을 찾아 고갱은 그토록 먼 길을 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는 타히티에서조차 어둡고 음울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그곳에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작품을 그리고는 생을 마감했다.
그림설명: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1891년, 유화, 114x84cm
이상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