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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바울이 겨울을 보내기를 원했던 니꼬볼리(악티움, 프레베자)를 가다

김수길 제공

그리스 이야기 (10)

그리스 서해안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가장 빠른 항구는 이구메니짜(Ηγουμενίτσα)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90킬로 떨어진 곳에 사도 바울시대에 사용된던 항구가 있다. 니꼬볼리(ΝίκοΠόρυ), 즉 ‘승리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곳의 본래 이름은 악티움(ακτίου)이었다.

격동을 거친 악티움

기원전 32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로마-이집트 연합군은 정적인 옥타비아누스와의 운명을 건 대결을 위해 그리스의 남서쪽의 파트라에서 겨울을 보낸 뒤, 봄이 디자 북쪽으로 진군해 암브라키코스(Αμβρακίχος) 만 서쪽에 있는 악티움으로 사령부를 옮긴다. 암브라키코스 만은 외해(外海)인 이오니아 해에서 보이지 않는 은폐된 지역으로, 마치 거대한 호수와 같은 형태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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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 해군을 이끈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cus Bibsanius Agrippa) 장군은 이곳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해군을 격파했다. 이 승리를 통해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고, 결국 원로원으로부터 ‘신성함과 권위를 가진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는 줄리어스 시저가 그토록 꿈꾸던 공화정의 종말을 의미하며,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악티움 해전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의 몰락과 함께 헬레니즘 시대 국가의 종말을 알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작은 촌락에 성벽을 쌓아 로마 군대의 주둔지로 만들고, 자신의 사령부(head coat)로 사용하던 곳에 포세이돈 신전을 건립했다. 그러나 이 신전은 이후 옥타비아누스를 위한 신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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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헤롯과 니꼬뽈리의 인연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도움으로 유대의 왕이 되었던 헤롯은 안토니우스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군대를 이 해전에 파견했으나, 유대에서 발생한 지진을 핑계로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후 전쟁이 끝난 뒤 로도스에서 만난 옥타비아누스는 헤롯을 단순한 주종(主從)관계가 아닌 자신의 친구로 격상시켜주었다.

헤롯은 이에 감사의 표시로 옥타비아누스가 니꼬볼리를 건설할 때 대규모 금전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가이사라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지중해 패권 쟁탈의 중심에 있던 프레베자 (Πρέβεζα)

현재의 니꼬볼리는 작은 유적지와 촌락에 불과하다. 그 니꼬볼리를 대신한 현대 도시가 프레베자이다. 정확히 언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리스의 대부분의 도시들처럼 지진과 말라리아로 인해 전염병이 발병할 때 사람들이 그 지역을 떠나 가까운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일까, 프레베자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프레베자는 악티움의 중요성을 이어받아 세계 5대 해전 중 하나로 꼽히는 1538년의 프레베자 해전을 통해 역사의 중심에 다시 등장했다. 오스만 제국과 기독교 연합의 양측 함대는 1538년 9월 28일 프레베자 근교에 있는 아르타 만에서 최종적으로 교전을 벌였다. 이 해전에서 오스만 해군의 바르바로스 하이렛딘 파샤(Barbarossa Hayreddin Pasha)가 이끄는 함대가 기독교 연합 함대를 격파하며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후 약 40년 동안 지중해는 오스만 해군과 해적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기독교 세계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주도 아래 1538년 2월 로마 교황령, 스페인, 제노바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과 몰타 기사단이 참가해 “신성 동맹”을 조직하였다.

이처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악티움 그 현장에서 1600여 년이 지난 후 지중해 패권을 놓고 다시 대해전이 일어난 것이다. 결과는 교황권의 패배로 40여년 후 레판토 해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중해는 오스만의 해군과 해적의 놀이터가 되었다. 오늘의 프레베자는 암브라키코스 만(灣)에서 이오니아 해를 잇는 해협에 다리가 아닌 짧은 해저터널을 놓아서 프레베자라는 이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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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초기 기독교와 바울의 주요 활동지였던 니꼬볼리

바울신학의 대학자로 지금은 한국의 C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H 목사님의 요청으로 아주 오래전 나는 처음으로 니꼬볼리에 다녀왔다. 당시는 초행이어서 물어물어 갈 수밖에 없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인은 우리 일행에게 마을 뒤쪽 동산에 올라가보라고 했다. 작은 교회를 지나 아트막한 동산에 오르니 그곳에는 옥타비안의 신전 터가 있었다.

양을 몰고 온 사람은 이곳에 원래 악티움 해전 당시엔 옥타비아누스의 군사령부가 있었다고 했다. H 목사님과 나는 동네 입구에 있는 허물어져 가는 원형 극장과 어쩌면 로마 보다 더 크게 보이는 전차경주장을 들렀다. 그곳에는 어른 키만큼이나 큰 고사리와 잡초들이 경주를 하듯 웃자라 있었다.

그날 , 더 이상 유적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집으로 돌아 왔다. 한 달 뒤에 미국에서 H 목사님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니꼬볼리의 엄청난 성벽과 그리고 많은 유적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비잔틴 시대의 저스티아누스의 대 성벽과 초대 교회 건물들 중 음악당과 연극장, 데메트리우스 성당 그리고 알키소노스 성당 등의 건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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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도 미안했다. 미국에서 그리스로 와서 눈앞의 엄청난 유적을 두고도 그냥 돌아갔으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민망스럽다. 최근 독일에서 그리스 현장 학습을 온 팀들과 다시 니꼬볼리로 갔다. 그날 다행스럽게도 유적지를 복원 작업하던 한 청년이 유창한 독일어로 우리 일행을 유적지 안으로 인도했다. 참으로 감사했다. 감사한 만큼 H 목사님께 미안한 마음도 컸다.

사도 바울에게 니꼬볼리는 어떤 도시였을까? 바울은 겨울을 이곳에서 지내며 소아시아과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선교활동을 이어갔다는 연구 기록들이 있다. 또한 네로의 박해 때 로마가 아닌 니꼬볼리에서 잡혀서 로마로 소환되었다는 논문들도 있다. 그런 기록들을 통해 이곳은 초기 기독교와 바울의 활동에서 중요한 장소였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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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짧은 일정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그리스 동해안 지역을 지나쳐 가기에 서쪽의 니꼬볼리는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이제 이곳이 잡초 속에서 드러나 세상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문제 해결과 겨울나기를 원했던 바울처럼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 (딛 3:12)

[복음기도신문]

kimsookil

김수길 선교사 |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GMS 선교사로 27년간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관련기사]
[김수길 칼럼] 겐그레아(Κεγχρεαίς)에서 만나는 뵈뵈 집사와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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