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 140주년 특별기획-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들(3)
국내 취재진 만난 쉴라 필렛 “최근 아펜젤러 미발표 편지 발견…기증 검토”
“증조할아버지는 한국 문화도 모르고, 언어도 몰랐습니다. 1~2년간은 정말 고생했죠. 하지만 한영사전을 편찬할 정도로 한국 언어와 문화를 배워나갔고, 마침내는 한국인들을 깊이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는 무에서 시작해 커다란 성취를 이뤄냈어요.”
선교사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1858∼1902)의 증손녀인 쉴라 플랫(76) 여사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매디슨시에 있는 드류신학교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증조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이다. 연세대학교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함께 국내 기독교 포교에 선구자 역할을 했다.
기독교계 상당수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에 내린 1885년 4월 5일을 한국기독교 창립일로 보고 있다. 다만 그들보다 몇 달 앞선 1884년 9월에 입국한 선교사이자 의사·외교관인 호러스 앨런까지로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때도 있다. 이에 따라 교계는 올해부터 내년까지를 한국 기독교 창립 140주년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다음 달부터 약 1년간 140주년 행사를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아펜젤러는 조선 입국 후부터 정열적으로 포교와 교육 사업을 이어 나갔다. 1885년 근대 교육의 산실인 배재학당을 세운 데 이어 정동제일교회도 설립했다.
플랫 여사는 증조부인 아펜젤러를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아펜젤러가 1902년 배를 타고 가던 중 서해에서 해양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아펜젤러의 아들이자 플랫 여사의 할아버지인 헨리 닷지 아펜젤러(1889~1953)도 아버지로부터 큰 가르침은 받지 못했다.
“증조부가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는 12~13살에 불과했어요. 어머니는 할아버지 밑에서 한국에서 자라셨는데, 역시 증조부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죠. 증조부부터 내려오는 가훈이 특별히 없는 이유입니다.”
아펜젤러의 짧은 생 탓에 증조부에 대해 자손들이 아는 건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희소식이 들려왔다. 플랫 여사의 친척 중 한명이 증조부에 관한 단서를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사촌이 지난 7월 창고에서 증조부가 남긴 편지 더미와 저널들을 찾았어요. 저는 읽어보지 못했고, 아직 사촌도 다 읽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증조부가 드류신학대학 동창에게 보낸 편지들이 많았는데, 당시 한국 상황과 한국에서의 경험담을 적은 내용이라고 합니다. 저도 조만간 읽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편지에는 유머러스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아펜젤러의 유쾌한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근엄한 선교사의 모습, 제가 간직한 증조부의 이미지예요. 하지만 편지에서 증조부는 친구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심지어 놀리기도 하는 유쾌한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다른 초기 선교사들에 견줘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이 비교적 짧았던 탓에 아펜젤러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국내 교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혼란스러웠던 구한말 상황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역사학계의 관심도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학생으로, 독립신문을 만들었던 서재필과 윤치호가 교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플랫 여사는 “증조부에 관한 문서를 발견한 건 (가문에서) 이번이 처음”이라며 “검토가 끝나면, 그리고 나중에 적절한 시점이 오면 아마 기부할 것 같다”고 했다.
앞서 2022년 아펜젤러 후손들은 아펜젤러가 고종에게 하사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나전흑칠삼층장’을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높이가 180㎝가 넘는 대형 삼층장의 규모와 섬세하고 유려한 문양 표현의 품격을 볼 때 19세기말의 대표 유물로 간주되는 중요한 자료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음악 교사로 일했고, 변호사 사무실에도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플랫 여사는 한국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저는 집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관대한 사람들이라고 배웠어요. 제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 중 하나도 한국과 관련된 것입니다. 2008년 친척들과 함께 정동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할 때였죠. 아울러 증조부, 조부, 엄마가 헌신했던 정동제일교회를 방문했을 때도 깊이 감동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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